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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63)화 (16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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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 그자가 있는 에스크라 가문이 어떤 곳인지는 아나?”

“내가 알아야 해?”

표정이라고는 전혀 읽히지 않던 세프라 공작의 얼굴에 처음으로 한심함이 묻어났다.

“역시 네 녀석에게 주기에는 그 아이가 너무 아까워.”

“…뭐?”

“성격 좋고 인물 좋고 집안까지 좋은 그 아이가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

기세가 점점 사나워지는 아르시안에게서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다시 쿠션으로 향했다.

“누구는 손재주조차 없는데 말이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네 녀석에게 그 아이는 못 주겠다는 말이다.”

“하!”

누가 들으면 당신이 그 녀석 아빠인 줄 알겠어!

“페트로, 그 녀석에게도 그 아이는 아깝지.”

“그거야 당연하……! 그러니까 당신이 그걸 왜 걱정하냐고!”

“저거라도 잘 만들어 보든가.”

“뭐?”

“능력이 안 되면 정성이라도 보여야지.”

“저건 그 녀석에게 줄 게 아니야! 내 거라고!”

“수고하렴.”

그의 외침을 들은 척도 않은 채 세프라 공작은 리오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안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제대로 열이 받은 듯했다.

“형아 화났어요.”

“그런 것 같구나.”

“아저씨는 형아가 미워요?”

리오의 물음에 세프라 공작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저 자극을 준 것뿐이란다.”

“자극?”

“다른 놈에게 뺏기지 말라고.”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카밀라, 그 아이가 우리 가족이 되면 좋겠지?”

“응! 누나 좋아요!”

그 말은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리오의 머리를 세프라 공작이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제는 이런 행동도 딱히 어색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를 마주 보는 것조차 참 어색했는데 말이다.

“헤헤.”

이 메마른 공간에 다시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 준 건 누가 뭐라 해도 그 아이다. 그러니…….

“내일 또 자극하러 올까?”

“네에!”

자극이라는 게 뭔지 몰라도 그걸 하면 누나랑 같이 살 수 있다는 말에 리오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제대로 자극받은 1인, 아르시안 세프라.

“하아.”

당장 그녀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카밀라의 방이었다.

공작가의 삼엄한 결계를 어떻게 뚫고 들어왔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걸리지 않으려고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다 쓴 것 같은데…….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든 아르시안은 그대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밤중에 허락도 없이 들어서다니! 그녀가 알면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까.

다른 이들 앞에서는 늘 자기 멋대로 굴지만, 카밀라 앞에선 유독 소심해지는 그였다.

‘이게 다 그 망할 인간 때문이잖아!’

네게 주기 아깝다느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로 자신을 열받게 한 세프라 공작을 떠올리자 새삼 분노가 일었다.

“으… 으음…….”

순간 카밀라의 뒤척이는 소리에 움찔한 아르시안은 급히 살기를 지웠다.

혹여 자신으로 인해 그녀가 잠이라도 깰까, 곧장 순간 이동 마법을 쓰려고 했다.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에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카밀라에게 향했다. 그래도 이왕 온 거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가려고.

“……!”

하지만 고개를 돌린 그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왜…….”

카밀라는 울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녀의 눈물에 아르시안은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다.

혹 그녀가 일어났나 싶어 가까이 다가서던 그는 다시 멈칫했다. 그녀는 여전히 잠이 깊이 든 상태였다.

‘악몽이라도 꾸는 건가?’

깨워야 하나?

그녀가 울고 있는 모습에 아르시안은 답지 않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그의 얼굴이 다시 서서히 굳어 갔다.

“왜…….”

그녀의 눈물에는 소리가 없었다. 마치 목소리를 잃은 아이처럼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보통 꿈에서 더 쉽게 울지 않나? 왜 꿈에서조차 흐느끼지 못하는 거지?

“…….”

아르시안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속눈썹이 만져졌다.

손에 묻어나는 물기에 잠시 멈칫한 그는 그녀의 눈가를 살며시 훔쳤다. 물론 금세 다시 눈물이 차올랐지만 말이다.

“무슨 꿈을 꾸길래.”

눈가를 연신 닦아 주던 아르시안은 결국 팔을 뻗어 카밀라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위로받을 곳을 찾듯 그녀가 품을 더욱 파고든다.

자신의 품속에서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아이처럼 훌쩍이는 그녀의 등을 그는 조심스럽게 다독였다.

이런 게 안타깝다는 건가?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갑갑하다. 자신이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먹먹함도 밀려왔다.

저도 모르게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 아르시안은 짧은 한숨을 토해 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여전히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그녀의 눈가를 다시 부드럽게 매만졌다.

“뭐가 널 아프게 하는 건데?”

그녀를 품에 다시 꼭 안은 그는 카밀라의 등을 천천히 다독였다. 전에 그녀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것을 답습하듯.

* * *

아주 어릴 적 꿈을 꿨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일.

‘저런 일도 있었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아버지라는 인간에게 맞고 있었다. 하긴, 이유가 뭐 중요하겠는가. 늘 말도 안 되는 걸로 맞았는걸.

물을 흘렸다고도 맞았고, 자신을 쳐다봤다는 이유로도 툭하면 맞아야만 했다.

네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그런데 운다고 또 맞았다.

아이는 어느새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웠다. 저 어린 나이에 눈물만 주룩주룩 흘린다.

새삼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저리 때릴까. 뭘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다고 저리 빌어야 하나. 내가 왜? 대체 왜?

그래. 이게 다…….

“도르만, 이 개새……!”

…음?

저도 모르게 소리치며 잠에서 깬 카밀라는 눈을 연신 끔벅였다.

‘…이 벽은 뭐야?’

눈을 떴음에도 앞에 있는 무언가로 인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헉!”

이내 그게 사람의 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카밀라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누, 누구?’

급히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아르시안?’

아니, 얘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데구루루 굴리는데 이상하게 뒤통수가 싸했다.

한여름에 이 서늘한 공기는 대체 뭐지? 창문이라도 열고 잔 건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킨 카밀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몸이 굳어져 버렸다.

“잘 잤나, 딸?”

에스크라 공작이 인사를 건네 왔다. 인사는 자신에게 건네고 있었지만, 그의 형형한 시선은 아르시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놈을 어떻게 침대에서 끌어 내려 죽여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밤새 손님이 와 있었구나.”

더 큰 문제는 지금 방 안에 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에스크라 공작 못지않게 싸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세 사람이 더 있었다.

소르펠 공작과 루드빌, 그리고 라비가 뚫어져라 자신과 아르시안을 보고 있었다.

‘야, 좀 일어나 봐.’

카밀라가 아르시안의 팔을 연신 흔들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잠이 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보라고.

“이게 그러니까요.”

저도 뭔 상황인지 모르겠거든요?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아르시안에게 향했다.

그제야 그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주 꿀잠을 잤다는 듯 기지개까지 켜며 하품도 내뱉는다.

“일어났어?”

지금 한가하게 인사할 때가 아니거든. 네 생사가 오가고 있다고!

“아르시안.”

“어?”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네가 여기에 왜 있는 거냐고.”

“아.”

잠이 덜 깬 듯 눈을 연신 끔벅이던 그가 손을 뻗어 카밀라의 눈가를 가볍게 문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흠칫하며 뒤로 급히 몸을 빼자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베개가 불편해 보여서.”

베개?

“무슨……?!”

그가 자기 팔을 툭툭 가볍게 쳤다. 그제야 방금까지 자신이 그의 팔을 베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 순간 다시 밀려드는 한기에 시선을 돌린 카밀라는 더욱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네 사람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그제야 아르시안 역시 그들에게 시선을 줬다. 당장이라도 무기를 뽑아 들 것 같은 그들을 보던 아르시안은 다시 카밀라를 바라봤다.

“배고픈데, 밥은 먹고 쫓겨나면 안 되나?”

…되겠니?

네 사람 손에 끌려 나가는 아르시안을 카밀라는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살아 있길 바라.’

“…헐.”

네 사람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아르시안을 본 카밀라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꼴이 말이 아니다. 그 네 사람에게 끌려간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긴 한데, 상대는 아르시안 세프라였다.

누군가가 때린다고 얌전히 맞아 줄 녀석이 절대 아닌데, 대체 이 꼴은 뭐냐고!

“죽지는 않았잖아.”

“미쳤니? 널 진짜로 죽이게?”

“진짜로 죽일 기세던데.”

“그렇긴 했… 아니, 그게 아니라! 대체 왜 맞고만 있었던 거야?”

방어라도 좀 하지!

카밀라는 그의 상처를 살피며 미간을 찡그렸다. 저 인간들도 사람을 뭘 이렇게 북어 패듯 팼대!

“네 방에 허락 없이 들어선 건 맞을 만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직 제대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내 방에는 왜 온 건데?”

“너 보려고.”

“왜? 무슨 일 있어?”

급한 일이 있었다면 자신을 깨웠을 텐데?

“그냥 너 보려고.”

“그러니까 왜?”

“보고 싶어서.”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시선에 카밀라는 결국 먼저 눈을 돌렸다.

나 진짜 어디 아픈가? 왜 또 심장이 아릿하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치료나 해.”

치료 마법 정도는 쉽게 쓸 줄 아는 녀석이 계속 상처를 내버려 두는 걸 보고 카밀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으로 치료하지 말래.”

“뭐? 누가?”

“아버님들과 형님들이.”

이 인간들이!

“때린 걸로도 모자라서 치료도 하지 말라 했다고?”

“치료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마법으로 바로 고통을 지우지 말라는 뜻이었을걸?”

“세프라 공작님을 앞으로 어떻게 보려고!”

“글쎄, 별말 안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잘 맞았다고 하지 않을까?

“됐으니까 어서 치료나 해! 저 사람들이 억지 부리는 걸 왜 받아 주고 있어?”

네가 언제부터 남들 말을 그렇게 잘 따랐다고?

“네 가족이잖아.”

“어?”

“네 가족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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