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네요.”
늘 덤덤하던 크리스 역시 처음 보는 기계에 놀라움을 표했다.
어떻게 저렇게 실제와 똑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대륙 어떤 화가를 데리고 와도 저 정도로 똑같이는 그리지 못할 것이다.
“마법은 참 대단한 것 같아.”
“라비 님께서 대단하신 거죠.”
“이번에는 정말 인정.”
리오나 킹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핸드폰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혹시나 해서 라비에게 사진기에 대해 설명하고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슬쩍 물어봤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찰나의 장면을 뽑아내는 건 가능할 것 같다는 답을 들려줬다.
다만, 기존에 없던 개념이라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우리 여우 새ㄲ… 오라비, 참 재주도 많아.”
“네? 여우요?”
“아무것도 아냐.”
결국 라비가 해낸 것이다.
우리 라비 오라비, 정말 천잰가? 저쪽 세계에서 쓰던 사진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만 이게 어디야.
“사람들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습니다. 제작과 판매는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설계도는 라비 님께 받으면 되나요?”
“어?”
“네?”
순간 카밀라와 크리스는 서로를 한참 동안 멀뚱히 바라봤다. 뭔가 대화의 핀트가 어긋난 것 같은데?
“팔려고 만드신 거 아닙니까?”
…아닌데. 그냥 소장용으로 만든 건데.
킹이나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좀 더 많이 남기고 싶어서 라비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밀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팔면 잘 팔리겠지?”
“네, 아주 혁신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을까? 여기에 들어가는 마력석이 장난이 아니거든. 아무리 가격을 낮춘다고 해도 가격 단위 자체가 다를걸.”
“아무래도 귀족들을 타깃으로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으음, 인화만 해 주는 건 어때?”
“인화요?”
“일반 시민들에겐 인화만 해 주는 장사도 괜찮지 않을까?”
기계가 비싸서 못 사는 이들을 위해 따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인화에는 그렇게까지 큰돈이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들도 가족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할 거야.”
비싼 화가를 고용할 수 없는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이 기계가 더 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바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응, 부탁해.”
* * *
벌컥!
“저기요!”
“여기 영상석 뽑아 주는 곳 맞죠?”
고스트 상회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마력석을 파는 체인 곳곳에서 영상석을 그림으로 뽑아 주는 획기적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물에 모두 열광했다. 귀족들은 당장 기계를 구입할 의사를 밝혔지만, 제작 기간이 길어 아직까지 물건은 받은 이가 매우 드물었다.
대신 기계를 미리 배치해 놓고 있는 마력석 판매점에서 영상석을 인화해 주고 있었다.
“네, 물론이지요.”
가게 점주는 동시에 안으로 들어선 두 여인을 향해 언제나처럼 영업용 미소를 방긋 지어 줬다.
“…….”
“…….”
반면 두 여성, 라일라와 엘리샤는 서로를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그녀들의 손에는 수많은 영상석이 들려 있었다.
“어떤 장면을 뽑아 드릴까요?”
“전부 다요!!”
점주의 물음에 두 사람의 입에서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에 라일라와 엘리샤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전부 다요?”
“네! 첫 장면부터 끝까지 다!”
“하나도 빼지 마시구요!”
“아, 알겠습니다.”
이글거리는 두 사람의 눈빛에 점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에 배치된 기계 두 대에 영상석을 동시에 집어넣었다.
“어?”
그러다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두 분 다 같은 분을 찍어 오셨네요.”
“네에?”
“같은 분이요?”
엘리샤와 라일라가 급히 점주가 튼 영상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점주의 말대로 같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다.
“카밀라?”
“카밀라 언니?”
바로 카밀라가.
“……,”
“…….”
라일라와 엘리샤의 시선이 다시 부딪쳤다. 하지만 곧바로 두 사람의 시선이 상대방의 영상으로 향했다.
“이거 어디서 찍은 거예요? 맙소사! 언니가 웃어!”
“저, 저거! 침대방인가요? 지금 잠에서 막 깨어나는 모습을 찍은 거예요?”
서로의 영상을 확인한 엘리샤와 라일라는 거기에 찍힌 카밀라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잠시 알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던 그녀들이 동시에 점주에게 외쳤다.
“여기 영상들!”
“다 2장씩 뽑아 주세요!”
* * *
“카밀라 영애,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밀라는 한 귀부인과 인사를 나누며 빙긋이 웃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네, 유네스 부인.”
고스트 상회 VIP 회원이다. 이번에 블루 다이아몬드 팔찌를 주문한 그녀의 집을 카밀라가 직접 방문해 물건을 전달해 주고 가는 길이었다.
어지간해선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일이 드물지만, 유네스 부인은 사교계에 아주 발이 넓으니 친분을 쌓아 둬서 나쁠 게 없었다.
‘돈도 아주 많고.’
또 보자는 말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VIP 포인트를 계속 쌓아 주겠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이번에 새로 판매 중인 비싼 사진기도 다섯 대나 사겠단다.
“저택으로 모실까요?”
“아니. 상회로 가.”
“알겠습니다.”
마차에 오른 카밀라는 굳은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계속 영업용 미소를 짓고 있었더니 생각보다 무척 피곤했다.
마차에 몸을 푹 파묻은 카밀라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음?”
그런 그녀의 눈이 순간 살짝 커졌다.
“잠시 멈춰.”
그녀는 급히 마차를 세웠다. 부드럽게 마차가 멈춘 후에도 카밀라는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낯익은 이가 보였다. 앙스와의 죽은 딸, 로라였다. 그녀가 작은 주택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개?’
그녀의 손을 연신 할짝거리고 있는 개 한 마리.
달칵.
카밀라는 결국 마차에서 내려 그곳으로 향했다. 순간 저번에 로라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있잖아요, 카밀라 님. 혹시 강아지 좋아하세요?]
그때 말한 게 저 강아지였나 보네.
‘동물은 귀신이 잘 안 되는데 신기하네.’
딱히 한을 가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동물 귀신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카밀라 님!]
그녀를 발견한 로라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카밀라는 대답 대신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혹 보는 이가 있으면 미친X 소리 듣기 딱 좋으니까.
멀리서 대기 중인 마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카밀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 개는 뭐야?”
[저도 우연히 지나다가 봤는데, 이 집에서 살던 아이인가 봐요. 매번 이 자리에 있더라구요.]
카밀라가 고개를 들어 집을 살폈다. 사람이 사는 것 같진 않았다. 빈집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름이 나나래요.]
“나나? 어떻게 알아? 너도 처음 보는 녀석이라며?”
[주변 분들에게 물어봤죠.]
주변 분들? 아마도 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다른 귀신을 말하는 듯했다.
[원래는 이 집에 홀로 살던 아주머니가 기르던 강아지래요.]
“그런데? 지금은 안 사나 보지?”
[몸이 안 좋아져서 다른 곳에서 살던 아들분이 모시고 갔다네요.]
“얘는?”
[…….]
로라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러는 사이 나나는 새로운 이가 자신을 알아봐 준 게 좋은 듯 연신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버리고 갔대요.]
예상했던 대답이 흘러나오자 카밀라는 짧은 한숨과 함께 나나에게 다시 시선을 줬다. 유독 앙상해 보이는 몸.
‘…굶어 죽은 건가?’
그동안 귀신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도 잊은 채, 카밀라가 무의식중에 손을 뻗었다.
이를 깨달았을 땐 나나가 이미 연신 그녀의 손을 핥는 중이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듯 나나는 카밀라의 손에 제 얼굴을 계속 비벼 댔다.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정말 꾹꾹 지르밟고 밤새도록 쥐어 패고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음에도, 그동안 다른 귀신을 시킬지언정 절대 직접 손을 댄 적은 없다.
자신이 저들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귀신들이 아는 게 싫었으니까.
의외로 사람의 온기를 바라는 귀신들이 무척 많았다.
그러니 알면 또 얼마나 귀찮게 하겠는가. 안아 달라느니, 손을 잡아 달라느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헥헥!]
하지만 사람 온기를 저리도 좋아하고 반기는 녀석에겐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올게.”
[어? 정말요? 강아지 싫어한다면서요?]
“…쟤는 개잖아.”
쟤가 어딜 봐서 강아지니? 딱 봐도 성견이구만.
카밀라는 멍하니 입을 벌리는 로라와 연신 꼬리를 흔드는 나나를 뒤로한 채 빠르게 마차로 다시 향했다.
* * *
“뭘 만드시는 겁니까?”
주방장 젤라드의 물음에 카밀라는 최상급 쇠고기를 썰며 대답했다.
“개밥.”
“예에?”
“개밥 만든다고.”
“개, 개밥이요?”
“어.”
“개밥 만드는 데 지금 그 쇠고기를…….”
일반 귀족가에서조차 비싸서 쉽게 구입해 먹지 못하는 최상급 쇠고기를 고작 개에게 주겠다고?
“왜? 안 돼?”
“아, 아뇨.”
나도 오버인 거 알거든? 그런데 이 집에 있는 식재료들이 하나같이 다 최고급인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런데 개밥에 양념도 하십니까?”
고기에 소금을 치는 카밀라의 모습에 젤라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동물들이 먹는 음식에는 간을 안 하지 않나? 몸에 안 좋다 들었는데.
“그 녀석은 괜찮아.”
이미 죽은 몸이라 몸에 해로울 게 없거든. 오히려 간 좀 맞게 해 주는 게 입맛을 돋우지 않겠어?
“남은 건 자네가 먹어.”
“…개밥을요?”
“싫으면 안 먹어도 되고.”
“그…….”
최고급 재료로 만든 남은 개밥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주방장을 뒤로한 채 도시락을 완성한 카밀라는 다시 나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녀석은 여전히 작은 집 앞마당에 망부석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헥헥!]
그녀를 알아본 나나가 빠르게 다가와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그사이 로라는 집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할짝거리는 나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카밀라는 가지고 온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먹어.”
[커엉!]
오랜만에 음식을 본 나나가 카밀라를 향해 한 번 짖더니 도시락 통에 머리를 박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음식들이 검게 변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찾아볼까?’
이 집 주인, 정보 조직에 의뢰하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긴, 찾으면 뭐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