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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56)화 (15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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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 오늘부터 너의 아빠가 되어 줄 분이란다.”

“…….”

“…….”

엄마가 처음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 또한 그랬다.

한 가족이 되기로 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둘 다 서로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도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고 자신 또한 그를 데면데면했다. 둘 다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있어 그는 가족이라기보다는 그저 ‘엄마 남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아주 살짝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 생겼다.

“라비, 저거 진짜 재수 없지 않아?”

“맞아.”

“잘난 척하는 거 엄청 짜증 나.”

또래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던 자신을 동네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지.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겉돌았고 아이들에게 맞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넘어졌다며 아이들과의 일을 꼭꼭 숨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아이들의 괴롭힘이 싹 사라졌다. 자신을 보면 오히려 겁을 먹고 슬슬 피하기 바빴다.

“너, 너희 아빠 엄청 무섭더라.”

“너 괴롭히면 가만 안 두겠대.”

“웃으면서 말하는 게 더 무서웠어!”

알고 보니 그가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다치고 들어왔을 땐 그저 무심한 눈빛만 보내던 인간이 말이다.

그때 그에 대한 감정이 아주 살짝 바뀌었다. 저 사람과 같이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물론 1년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야.’

그래서 그가 더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주 잠시나마 그에게 마음을 열려고 했던 자신에게 짜증이 나서.

그리고 그 짜증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카밀라에게 향했던 것도 같다. 예전에 카밀라를 보고 있으면 괜히 심기가 뒤틀리고 화가 났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미쳤었나 싶을 정도로.

“뭐 할 말 있습니까?”

당연히 그를 향한 말투가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그의 신분이 공작이라는 게 더 짜증 난다.

그래서 엄마를 버린 거였어? 기억을 찾고 보니 엄마 따윈 아주 하찮게 보였나 보지? 찾고 싶지 않을 만큼?

그가 페이블러 제국에서 지냈던 1년 동안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매우 극소수다. 당연히 라비 역시 그 사실까지는 아직 듣지 못했기에 그의 이런 등장이 뻔뻔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좀 궁금해서.”

“뭐가요?”

“내 따님이 그렇게 혼비백산해 달려가야 했던 이유가 어떤 놈인가 해서.”

“그놈의 딸, 딸! 좀 그만하시죠!”

“너도 원한다면 아들이라 불러 줄 수 있는데.”

“…뭐라고요?”

“내 아들로 받아 주겠다고. 내 따님께선 아무래도 널 버리지는 못할 것 같거든.”

라비는 별 미친놈 다 본다는 눈빛으로 그를 잠시 쳐다보다 빠르게 몸을 돌렸다. 기억을 잃었을 때가 더 멀쩡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오. 성격 좋은데?”

그런 라비를 보며 에스크라 공작은 피식 웃었다.

“저게요?”

“나 같으면 쌍욕을 날렸을 텐데 그냥 가잖아.”

“제가 보기엔 상대할 가치가 없어서 그냥 가는 것 같은데요.”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 저놈한테 잘해 준 게 아닐까?”

“…….”

“뭐지? 그 눈빛은?”

“어떻게 하면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해서요.”

“뭐가 황당해?”

“정말 몰라서 물으세요?”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누가 뭘 해? 다른 이도 아닌 에스크라 공작이 아이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친자식인 다이브에게조차 따스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넬 줄 모르는 인간이다. 기억을 잃었다고 그 성격이 바뀔까?

“어쨌든 저분이 카밀라 님을 데려가는 데 아주 큰 열쇠가 될 것 같네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이미 저 멀리 걸어간 라비를 바라보는 에스크라 공작과 알트온 백작의 눈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번뜩였다.

* * *

달칵.

“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카밀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한동안 잊고 있던 한 인물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왔네?”

“왔네…요? 그게 다예요?”

자신의 말에 부들거리는 이, 바로 도르만이었다. 아직도 자기를 버리고 온 게 무척 서러운가 보다.

‘징한 놈.’

이놈도 뒤끝작렬이라니까.

“절 거기다 버려두시고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하세요!”

“우리가 또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

“너무하세요!”

“됐고. 마침 잘 왔다.”

“…왜요?”

그가 눈을 또르르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최근에 또 뭔가 말을 안 하거나 실수를 한 게 있었나?

“하벨하고 연락돼?”

“하벨이요?”

“응.”

“연락이야 취하면 되긴 하는데…….”

“내가 좀 보잔다고 전해 줘.”

사신 하벨. 그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그는 왜요?”

“내가 또 이상한 걸 봤거든.”

페이블러 황제에게 묶여 있는 귀신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외모. 황실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유의 금발과 금색 눈동자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묘하게 닮은 구석들도 많았다. 모두 남자인 것도 그렇고.

‘마지막으로 나이.’

다들 비슷한 나이대에 몸을 뺏겼다는 것.

‘이게 무엇을 뜻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다.

‘역대 페이블러 제국의 황제는 모두 동일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영혼이 계속해서 육체만 바꿔서 황제의 자리를 영위하고 있다는 거다.

“완전 소름.”

그러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의 육체를 뺏어서 생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잖아.

“헐.”

이게 말이 돼? 완전 사이코패스 아니야? 어떻게 자기 자식을 자기 삶을 영위하는 도구로 쓸 수가 있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거 말고는 짐작되는 게 없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가끔 아버지가 아들을 두고 이런 말을 한다. ‘넌 나의 꿈이자 미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말이자 애정의 표시인데 말이지.

페이블러 황제가 에드센 황태자에게 저 말을 한다면? 완전 의미가 달라지겠는데? 정말로 그가 그의 미래이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마도 이번에도 그러겠지?’

에드센 황태자나 2황자 중 한 명의 육체를 뺏을 게 분명하다.

묶여 있는 귀신들의 나이대가 지금의 두 황자와 비슷하던데, 그 말은 육체를 바꿀 시기가 됐다는 거 아닌가?

“이걸 어째야 하나?”

딴 사람들에게 말한다고 이걸 믿어 줄까?

다른 이도 아니고 황제다. 잘못 건드렸다간 목이 날아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증거도 없이 무슨 헛소리냐며 황제 모독죄로 목이 댕강 잘리겠지?

“일단 하벨을 만나 봐야겠어.”

하벨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거든. 라니아 때처럼 명부에 적힌 황제의 진명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를 만나면 좀 더 정확히 페이블러 황제가 가진 비밀에 대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참, 이거요.”

“뭔데?”

“다이브 님이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편지였다. 도르만이 돌아간다고 하니 안부 인사 겸 편지를 썼나 보다. 카밀라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뜯었다.

“파티장이 발칵 뒤집어졌다면서요?”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도르만에게 향했다.

“벌써 소문이 돈 거야?”

“아가씨에 대한 소문이야 늘 빠르게 돌죠.”

“하아.”

카밀라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그렇겠지. 저 인간이 파티장에서 대놓고 폭탄을 던졌는데.

아마 벌써 카밀라 소르펠의 친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수도 전체에 퍼졌을 것이다. 또 얼마나 시끄럽게들 씹어 댈까.

“저 인간은 갑자기 왜 온 거래?”

에스크라 공작이 사신단에 포함된 걸 알았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게 아닌가.

보니까 소르펠 공작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전혀 몰랐던 것 같은데?

“원래 오기로 했던 분이 일이 생겨 갑자기 빠지게 되면서 카이스 님이 대신 오게 되셨거든요.”

“대신?”

다른 이도 아니고 저 인간이 누군가의 대타를 뛸 인간은 아니지 않나?

“그 갑자기 생긴 일이 뭐래?”

“그, 글쎄요.”

도르만은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카밀라의 시선을 피했다.

원래 사신단으로 오기로 했던 이가 에스크라 공작과 만남을 가진 이후 요양이 필요하다며 바로 짐을 싸서 시골로 내려갔다는 소문이 아주 빠르게 돌았다.

아니, 사신단으로 오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자기가 간다고 했음 됐을 텐데?

“굳이 상대방 약점까지 찾아서 지방으로 쫓아 보낼 게 뭐람?”

‘그 녀석이 알면 오지 말라고 할 테니까.’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카밀라 때문이었다는 걸 말을 해 줘야 할까? 도르만은 잠시 고민하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하벨한테 연락해 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르만은 바로 차를 한 잔 끓여 카밀라 앞에 내려놓았다.

“속이 타실 것 같아서.”

“에휴.”

갑자기 이게 다 뭔 일인지 모르겠다. 카밀라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복잡한 머리를 식혔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설마 또 보는 일은 없겠지?’

페이블러 황제 말이다. 에스크라 공작의 등장으로 얼떨결에 파티장을 잘 빠져나오긴 했는데 말이지.

‘그날의 일에 대해 자네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아. 조만간 따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군.’

황제의 그 말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냥 누구에게나 하는 인사말이었겠지?

“그래.”

황제가 그리 한가한 인간도 아니잖아. 카밀라는 애써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차를 다시 홀짝였다.

* * *

“…황제라는 자리. 한가하구나.”

며칠 후, 카밀라는 손에 들린 초대장 한 장을 보며 연신 한숨을 토해 냈다.

황실 시종장이 직접 들고 온 초대장으로 황제가 함께 차를 마시고 싶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굳이 날 왜 만나려고 하는 건데!”

수호의 검이 다시 깨어난 그날의 일에 대해 듣고 싶다는데. 나도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빙의된 상태여서 제대로 인식된 것도 없는데 뭘 말하라는 거야!

그렇다고 제노보고 대신 가라 할 수도 없고.

‘게다가 찜찜해.’

정말 자신을 보려는 이유가 그게 다인가? 굳이 이렇게 초대장까지 보내서 황실로 오라고 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게 뭔데?”

“어, 어!”

휘익!

순간 손에 들린 초대장을 누군가 뺏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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