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154)화 (154/215)

16584893045516.jpg 

“들었죠? 수호의 검.”

“저는 너무 놀라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잖아요.”

“카밀라 영애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면서요?”

“저택에 불을 지르려 했던 이들도 카밀라 영애가 잡았대요.”

이미 이번 일에 대한 상세한 얘기가 다 돌았기에 그녀가 화제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둘만 모여도 다들 그녀 얘기뿐이었다.

“저 목걸이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답네요.”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 같은데…….”

이어 카밀라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에 다들 관심을 보였다. 앙스와가 새로 세공해 준 목걸이는 귀부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홍보는 확실히 되겠네.’

소르펠 공작과 루드빌, 라비가 아는 이들에게 이끌려 곁을 떠나는 걸 보면서도 카밀라는 보석 홍보에 열중했다.

보석이 더 잘 보이게 움직이며 환하게 웃었다. 저들이 다 고객들인데 이 정도 서비스쯤이야.

“요즘 어디를 가나 다 영애 얘기뿐이야.”

“헉!”

깜짝이야!

언제 온 것인지 에드센 황태자의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영애.”

“그렇네요.”

고개를 돌리니 하얀 정장을 차려입은 그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카밀라는 가볍게 그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수호의 탑 앞에서 펑펑 울었다던데.”

“그…….”

하여튼 사람 염장 지르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고 많은 말 중에서 하필 그 얘기를 꺼내냐!

‘그렇게 할 말이 없니?’

아… 없긴 하구나. 그래, 너와 나 사이에 뭔 말을 하겠니? 질러라, 질러. 염장.

“자네 오라비는 좋겠어.”

“뭐가요?”

“그대 같은 동생을 둬서 말이야.”

헐, 뭐래? 라비가 들으면 아주 기겁할 소리를 하네.

카밀라가 뜨악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자 에드센 황태자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울어 주는 이가 있다는 거. 생각보다 든든할 것 같거든.”

에드센 황태자가 다시 히죽 웃는다. 그 미소가 묘하게 씁쓸해 보여 카밀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저래? 답지 않게.

“그리고 신기해서.”

신기하다고?

“반쪽만 연결된 핏줄임에도 그리 애틋한가?”

뭐?

“반쪽이요?”

설마 지금 라비와 내가 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야?

“뭐지? 이 반응은?”

표정이 굳어지는 카밀라의 모습에 오히려 에드센 황태자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라 여긴 거야? 내가 가진 정보력을 너무 우습게 여긴 거 아닌가?”

“…그러게요.”

나 뭐 잘못 먹었나? 왜 미처 생각을 못 했지? 그라시아 제국에선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에스크라 공작에게 새로운 자식이 생겼다는 것을.

그게 왜 전혀 알려지지 않을 거라 여긴 거지? 알트온 백작이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걸 최대한 막을 거라고 했지만 그걸 맹신했던 거야?

“이것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에드센 황태자의 표정이 더욱 유쾌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저리 얼이 나간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소르펠 가문의 정보력이 황실 못지않다는 것 역시 잊은 건 아니겠지?”

잊었다. 완전히!

‘진짜 머리가 어디 잘못된 건가? 왜 그 생각을 전혀 못 한 건데!’

그럼 지금 자신에게 친아버지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가 다 알고 있다는 뜻?

“맙소사.”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동안 소르펠 공작과 루드빌, 라비가 자신 앞에서 보인 그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서.

‘왜들 그러나 했더니.’

그라시아 제국 쪽 얘기만 나오면 자신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려 하던 세 사람을 보며 대체 왜 저러나 했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스스로가 너무 멍청해서 할 말이 없었다. 왜 그쪽으로는 전혀 생각을 못 했던 거지?

‘아니, 그런데 나는 그렇다고 쳐.’

왜 다들 말을 안 한 거야? 나야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먼저 말을 안 한 거지만 저 인간들은 왜?

‘…아니지.’

저들도 같은 이유였던 게 아닐까?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소르펠 공작도 그렇고 루드빌도 소란이 이는 걸 딱 질색하는 이들이니까.

아니면…….

‘언급 자체를 할 가치가 없다 여긴 건가?’

친딸도 아닌 자식의 친아빠가 나타난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뜻?

“하아.”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카밀라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걸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하지?

“황제 폐하 드십니다.”

그때 입구에서 오늘 파티의 주인공인 황제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는 걸로.’

황제까지 참석하는 파티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실수라도 하면 곤란하지. 안 그래도 자신의 실수만 눈여겨보는 시선이 한둘이 아닌데 말이다.

저벅.

잠시 후 한 사람이 천천히 홀 안으로 들어섰다. 50대 초반의 남자가 등장하는 순간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카밀라 역시 그러려고 했다. 누구보다 정중히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추려 했다.

‘…와씨.’

하지만 그녀는 황제를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려 잠시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공녀?”

그런 그녀를 에드센 황태자가 조용히 불렀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든 카밀라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뭐야, 저거?’

지금껏 살며 정말 온갖 괴상한 것들을 다 보아 왔다. 하지만 장담컨대 저런 건 진짜 처음이다.

“다들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오.”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수많은 이들의 인사를 받고 있는 페이블러 황제. 하지만 카밀라의 시선은 그의 뒤로 향해 있었다.

‘바글바글하네.’

뭐가?

‘귀신들이.’

그것도 이지를 상실한 귀신들이 말이다. 수십이 넘는 귀신들이 황제의 뒤에 백그라운드처럼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그냥 이것저것이요.”

“아바마마께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그럼 내가 데려다주고.”

“아뇨!”

미쳤나 봐!

에드센 황태자의 물음에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차, 싶어 급히 미소를 지었지만 에드센 황태자는 연신 의아한 눈빛을 보내왔다. 카밀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저놈들, 라니아 때처럼 아무 이지가 없어.]

마침 제노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금 전 카밀라의 눈짓에 페이블러 황제의 곁에 붙어 있는 유령들에게 말을 걸고 오는 길이다.

[대체 저것들 다 뭐야?]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요?’

저것들 대체 뭘까요?

귀신들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들이었다. 라니아 때 만났던 이들처럼 저들 모두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다.

제노가 다가가 말을 걸어도 역시나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게 말이 돼?’

한 명이었다면 그나마 이해를 했을 것이다. 황제가 그 무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놀라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기겁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저 많은 인원이 한 사람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저 많은 사람의 육체를 한 사람이 뺏어 썼다는 말?’

결론은 바로 내려졌음에도 쉬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면 저럴 수가 있는 거지?

‘설마…….’

카밀라는 자꾸만 밀려드는 한 가지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에드센 황태자에게 향했다.

“뭐지? 그 눈빛은?”

“오래 사셔야 할 텐데.”

“하하!”

카밀라의 뜬금없는 말에 에드센 황태자는 한참을 크게 웃었다. 이 무슨 갑작스러운 안부 인사란 말인가.

‘웃을 일이 아닌데.’

카밀라는 다시 황제를 바라봤다. 예상이 제발 틀렸으면 좋겠지만, 저 수많은 귀신을 보고 있자니 점점 확신이 들었다.

“어……!”

그 순간 뜻하지 않게 황제와 눈이 딱 마주쳤다. 카밀라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지만 당황스러운 일이 바로 이어졌다.

저벅.

황제가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아니, 왜? 이쪽으로 왜 오는 건데!

“그대가 그 아이군.”

“제국의 영원한 태양을 뵙습니다.”

카밀라는 그 어느 때보다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그녀는 속으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내뱉은 ‘영원한’이라는 단어가 오늘따라 왜 이토록 끔찍하게 여겨지는 걸까.

“듣자 하니 수호의 검을 그대가 깨웠다지.”

“네, 폐하.”

“호오- 정말 놀랍군.”

“그게 다 폐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든 카밀라는 방금까지 경악했던 모습을 완전히 지운 채 아주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에드센 황태자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저 여자가 또 무슨 꿍꿍이로 저런 가면을 쓰는 걸까?

“그날의 일에 대해 자네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아. 조만간 따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군.”

…따로 보자고?

‘미쳤니?’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내가 그쪽과 따로 왜 만나! 그렇다고 황제의 명 아닌 명을 바로 거부할 수도 없는 일.

‘환장하겠네.’

카밀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어색한 미소만 연신 흘렸다.

페이블러 황제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 그녀의 대답을 끝까지 기다렸다.

“그라시아 제국 사신단이 도착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입구에서 시종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황제의 시선이 저를 비껴가자 카밀라는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이대로 슬쩍 파티장에서 도망칠까?

‘잠깐만.’

…지금 어디라고?’

안도하던 것도 잠시, 카밀라는 방금 전 시종이 한 말을 되새기며 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라시아 제국에서 사신단이 왔다고?

홀 입구에 시선을 준 카밀라는 안으로 들어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다 점점 눈이 커져 갔다.

사신단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이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했으니까.

마치 이곳이 자신의 집 앞마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당당히 걸음을 옮겨 들어서는 이. 도도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눈빛과 표정.

카밀라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저 사람이 왜!’

바로 에스크라 공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