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앙!
“어……!”
하지만 저택 문을 연 시녀의 얼굴은 다시 한번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집 안 역시 너무도 조용했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이 병사와 기사들을 데려올 동안 곳곳에 불을 질러 놓겠다고 했는데? 불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야? 불이라며?”
“왜 이렇게 조용해?”
“어디에 불이 났다는 겁니까?”
“그, 그게……!”
기사와 병사들의 물음에 시녀는 더욱 당황했다. 불이 나야 다른 기사와 병사들이 더 모여들 텐데.
“그 여자 잡아요.”
“……!”
그 순간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 급히 고개를 돌린 시녀의 눈이 빠르게 커져 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급히 물러서고 말았다.
“크윽!”
“윽!”
자신과 일을 도모했던 시종 둘이 쇠사슬 같은 것에 묶인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쇠사슬을 조종하고 있는 이는 바로 카밀라였다.
조금 전 불을 지피려던 그들은 부어 놓은 기름에 불씨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대로 활활 저택이 불타오르면 자신들의 임무는 무사히 마무리되는 것이다.
“어?”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기름에 잘 옮겨붙은 불이 픽 하고 갑자기 꺼져 버리는 거다. 이상함을 느낀 시종은 다시 불을 붙였다.
“이거 왜 이래!”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불이 타오르는 듯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 하는 거야?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해!”
“장난치는 거 아니야!”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
“이거 제대로 된 기름 맞아?”
“같이 준비했으면서 뭔 소리야?”
“그런데 이게 왜 이러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주변에 숨겨져 있던 불 저항 마법 도구에 의한 현상이란 걸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그저 환장할 노릇이었다.
휘익!
“허억!”
“뭐, 뭐야!”
그 순간 두 사람을 향해 무언가 휙 날아들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날아든 길쭉한 쇠사슬이 그대로 두 사람을 꽁꽁 묶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쳐 보지만 그럴수록 쇠사슬은 그들을 더욱 옥죄었다.
“움직이면 더 아플 텐데.”
“……!”
“그거, 니들이 아무리 용써도 안 끊겨.”
두 사람 앞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카밀라였다. 저들을 묶은 건 예전에 라비가 자신에게 선물로 줬던 그 팔찌였다.
카밀라의 의지에 따라 그들의 몸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가 바닥에 내던져지기를 반복했다.
“악! 악!”
“허, 허리가!”
“아우, 시끄러워.”
지들이 한 짓은 생각 안 하고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왜 엄살이람?
여하튼 그렇게 두 사람을 잡은 카밀라는 동동 떠다니는 그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기려던 중.
“어디에 불이 났다는 겁니까?”
“그, 그게……!”
마침 집 안으로 들어서는 시녀를 보곤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길!”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파악한 시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렇게 붙잡혔다간 바로 죽음이다.
터엉!
“꺄아악!”
하지만 입구로 도망치던 그녀는 무언가에 부딪쳐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투명한 막 같은 것이 그녀의 앞을 막은 것이다.
“으윽!”
고통을 제대로 느낄 사이도 없이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몸이 붕 뜨더니 누군가의 손에 목이 그대로 붙잡혔다.
“뭐야? 이게 네가 말한 그거야?”
아르시안이었다. 그가 마법으로 도망치는 그녀를 붙잡은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페트로 역시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상황을 살폈다.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려……!”
붙잡힌 이들에게 다가서던 페트로의 걸음이 뚝 멈췄다. 아르시안 역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적이군.]
곁에서 들려오는 제노의 목소리에 카밀라 역시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자신은 아무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셋의 반응을 보니 밖에 뭔가 일이 생겼음이 분명해 보였다.
벌컥!
“큰일 났습니다!”
그 순간 한 병사가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밖에 알 수 없는 무리가……!”
그 소리에 페트로는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고 다른 기사와 병사들 역시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넌 여기 가만히 있어.”
카밀라에게 저택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남긴 아르시안 역시 곧바로 뛰쳐나갔다.
“제노.”
저택을 지킬 몇몇 기사를 남긴 채 그렇게 빠르게 사라지는 이들을 바라보던 카밀라는 조용히 제노를 불렀다.
“수호의 검이 있는 곳으로 가요.”
[알았어.]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카밀라는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 수호의 검이 있는 곳을 향해 곧장 달렸다.
다행히 저택에 불이 나진 않았지만, 수호의 검을 노리는 이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말이다.
* * *
“미치겠네!”
30대 후반의 여자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연신 으득- 이를 갈았다.
“일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지금쯤 저택이 불에 활활 타오르고 준비된 이들이 들이닥치면서 혼란에 빠져야 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은 수호의 검을 빠르게 챙겨 몰래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오지 않았다. 이미 밖에서는 준비된 이들이 투입된 것 같은데 왜 저택은 아직까지 멀쩡하냐 말이다!
“멍청한 것들! 불 하나를 제대로 못 붙여!”
연신 짜증을 부리던 그녀는 원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수호의 검이 있는 곳은 그녀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불은 나지 않았지만 그나마 병사들의 시선이 외부로 옮겨진 상태라 저택 경비가 나름 허술했다.
“드디어!”
가주의 방과 가장 가까운 홀 복도 한쪽에 자리한 수호의 검. 방어 마법이 걸려 있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화아악!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서 환한 빛이 생성되더니 수호의 검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와장창!
그녀가 시전한 마법에 보호 마법이 걸려 있던 케이스가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몇 년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이네.”
수호의 검을 지키는 저 보호 마법을 깨는 수식을 알아내느라 얼마나 긴 시간을 이곳에서 허비했던가.
깨어진 투명 케이스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여자는 바로 수호의 검을 집으려 했다.
퍼억!
“아악!”
그 순간 날아드는 발차기에 그대로 그녀의 몸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뭐야? 시녀장 아냐?”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익숙한 얼굴의 여자를 보며 어이없어하는 한 사람. 카밀라… 아니, 그녀의 몸에 들어간 제노가 연신 혀를 찼다.
“우리 가문도 갈 데까지 갔네. 시녀장이 한패라니.”
“으… 윽!”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선 시녀장은 바로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파지직!
“뭐, 뭐야!”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카밀라의 몸에 주렁주렁 채워져 있는 마법 도구에 의해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뭐가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그녀는 바로 도주를 택했다. 일이 아무래도 완전히 틀어진 것 같은데, 빨리 위에다 보고해야 할 듯했다.
퍼억!
“커어억!”
하지만 시녀장의 이번 행동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노가 순식간에 그녀의 목덜미를 가격해 기절시켰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시녀장 일을 해?”
어떻게 지금껏 안 걸리고 버틴 거지? 마력을 감추는 도구라도 갖고 있는 건가? 제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그런 그의 시선이 어느새 수호의 검에 향해 있었다. 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수많은 감정이 묻어났다.
오랜 세월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면서도 굳이 이곳을 찾지 않은 건 이 검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검 하나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으니까.
자신의 삶을 잃었고 형의 삶을 잃었다. 보는 것조차 괴롭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하긴, 가슴에 꽂혀 있는 검을 매일 보고 살았는데 새삼 뭔 감정이 그리 일겠는가. 그저 좀 씁쓸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이 검을 찾지 않았다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까?
아니.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때 당시 이 검을 찾고 싶어 했던 자신의 간절함은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았었으니까.
“일단 검을 옮겨야겠군.”
혹여 또 다른 놈들이 손을 댈지 모르니까. 카밀라는 저 이상한 무리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검을 잘 간직하고 있으라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단 말이야.”
카밀라, 이 녀석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걸 그리도 잘 맞힐까? 매번 곁에서 지켜봤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스윽.
제노는 바로 검을 집어 들었다. 아니, 집어 들려고 했다.
우우웅-
“…뭐야?”
그 순간 자신의 가슴에, 제 영혼에 꽂혀 있는 검이 울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우웅- 우우웅-
“그동안 그 난리를 쳐도 꿈쩍 안 하더니 갑자기 왜 이래?”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 없이 제 영혼을 검집 삼고 있던 검이 연신 울어 대자 제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스르륵!
더욱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허억!”
가슴에 꽂혀 있던 검이 저절로 뽑혀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러곤 그대로 실재하는 검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우웅-
다시 검이 울기 시작했다.
오래전 그날처럼. 자신이 처음 수호의 검을 절벽에서 발견했을 때처럼 검은 그를 향해 연신 울어 대고 있었다.
자기가 여기 있노라, 어서 자기를 들어 달라는 듯이.
“…….”
한참 말없이 검을 바라보던 제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화아악!
그리고 그가 검을 쥐는 순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수호의 검에서 환한 빛이 쏟아졌다.
* * *
“저것들…….”
“맞아. 그때 그놈들이야.”
아르시안과 페트로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제이빌런가를 공격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아도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는 이들. 바로 예전에 사냥터에서 자신들을 공격했던 이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골치 아프네.”
처음 그들을 상대해 보는 병사와 기사들은 사냥터에서 자신들이 그랬듯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검을 찔러 넣어도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죽자고 덤벼드는 모습에 다들 기가 질려 갔다.
“뭐가 이렇게 많아?”
아르시안은 바로 적을 쓰러트리며 전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전에 사냥터에서도 그러더니,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의 숫자에 아르시안조차 혀를 내둘렀다.
“지루한 싸움이 되겠어.”
페트로 역시 저들이 저택에 다가서는 걸 막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