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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47)화 (14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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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으면 평생 그 네 사람을 보고 자란 이 녀석이 오슬린 같은 남자를 좋아할 것 같아?”

“그야 당……!”

“카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당연하다고 소리치려던 린더스 영애가 움찔했다.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계셨군요.”

페트로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형님들께서 오셨습니다.”

“야, 통신 구슬을 놔두고 가면 어떡해. 바로바로 연락받으라고 했잖아.”

“잘 잤니?”

라비와 루드빌이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아르시안도 그들의 뒤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 있어도 시선을 확 끄는 네 사람이 함께 걸어오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다들 입을 멍하니 벌렸다.

“다, 당, 당…….”

당당거리고 있는 린더스 영애를 보며 카밀라는 가볍게 혀를 찼다.

‘너도 양심은 있구나?’

저 네 사람을 보니 도저히 당연하다는 말이 안 나오지? 결국 린더스 영애는 끝까지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조용히 자리에 도로 앉아야만 했다.

* * *

“이게 다 뭐래?”

카밀라는 방 안 가득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보니까 조금 전 이곳을 다녀간 라비와 루드빌이 주고 간 것들이었다.

‘혹시나 해서 보호 장비 몇 개 갖다 놨어.’

‘부족하면 말해. 더 가져다줄 테니.’

…우리 오라비들. 숫자 개념이 없었구나.

“이 인간들은 왜 툭하면 날 전쟁터 가는 인간으로 못 만들어서 난리지?”

공격용 마법이 담긴 물건부터 시작해 각종 보호구까지, 온갖 도구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며칠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는데 이게 다 뭐냐고.

“설마 그때 일 때문인가?”

그라시아 제국에서 공격을 받았던 것. 아마도 그때의 일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이렇게 신경을 쓰는 듯했다.

“뭐, 도움이 되기는 하겠네.”

정말로 이번에 수호의 검을 훔치러 오는 이들이 있다면 말 그대로 여기가 전쟁터가 될 테니까.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들어가도 돼요?”

엘리샤였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졌지만 그녀는 쉽게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뭐 해요?”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이 영 어색하다.

“그냥 쉬고 있는데?”

“그…….”

그? 그, 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엘리샤는 입만 자꾸 벙긋거렸다.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그녀를 보며 결국 카밀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뭐 물어볼 거 있어?”

“그러니까, 아까요.”

“아까?”

“절 왜 도와준 거예요?”

다른 누구도 아닌 카밀라가 저를 두둔했다는 사실에 엘리샤는 커다란 의문을 느꼈다. 자신을 외면하면 외면했지 절대 도움을 줄 이가 아니었으니까.

“도와준 적 없는데.”

“네?”

“그것들이 하도 유치하게 굴어서 같이 유치하게 놀아 줬을 뿐인데? 내가 미쳤니? 싸가지를 빵 찍어 먹은 널 돕게?”

뭐가 예뻐서?

“으…….”

엘리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잠시 카밀라를 노려보던 그녀는 결국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그렇지! 역시 찾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연극 좋아해?”

“…왜요?”

밖으로 향하려던 엘리샤의 걸음이 멈칫했다. 다른 말이었다면 무시하고 나갔겠지만 ‘연극’이라는 단어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혼자서도 보러 갔다고 해서.”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카밀라는 종종 엘리샤에게 끌려가다시피 극장에 방문하곤 했다.

이전의 카밀라는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녀를 따랐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자신은 이 세계의 극이 제법 흥미로웠다.

“악의 마음이었나? 생각보다 재밌었지.”

“기억해요?”

“너와 그 극을 세 번이나 같이 보러 갔던 것 같은데?”

“맞아요!”

순간 엘리샤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그런데 정말 재밌었어요?”

“어.”

“연극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 끌고 다녔니? 새끼 여우도 못 되는 게 하여튼 못된 것만 배워서. 쯧.

“악의 마음, 이번에 또 무대에 올린다고 들었는데.”

“또 보러 가게?”

정말로 연극을 좋아하는구나.

끔찍이 싫어하는 자신의 앞에서도 눈을 반짝이며 극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엘리샤의 모습이 조금 의외였다.

“가, 가 볼게요.”

저도 모르게 속을 내보인 게 창피한 듯, 엘리샤는 다시 붉어진 얼굴로 급히 방을 나서려 했다.

“이거나 받아.”

카밀라는 그런 그녀에게 라비가 주고 간 보호 도구 몇 개를 건넸다.

반복되는 삶에서 공작가의 직계가 죽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전투 능력이 제로인 저 녀석이 어쩔 수 없게도 가장 신경 쓰였다.

“이걸 왜…….”

“욕먹으면 아주 오래 산다는데 너도 오래 살아야지 않겠어? 내가 평소에도 얼마나 널 열심히 씹는데.”

“말을 해도 꼭!”

문이 꽝 닫히는 걸 보며 카밀라는 연신 키득거렸다. 저 녀석도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

“그나저나 저 녀석, 안색이 영 안 좋네.”

친구들과의 일로 마음고생이 심한가?

전에 봤을 때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진 엘리샤의 모습에 카밀라는 가볍게 혀를 찼다.

* * *

[너 안 자?]

“몇 시예요?”

[12시 넘었어.]

“벌써요?”

카밀라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제이빌런가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 많았다.

엘리샤가 극을 좋아한다더니, 그래서인가? 연극 대본도 많았고 극으로 올렸던 원작 소설들이 수두룩했다.

“차나 한잔할까.”

시간이 늦긴 했지만 읽던 책은 마저 읽고 잘 생각이었기에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찌뿌듯한 몸도 풀 겸 주방에 직접 다녀오기로 했다.

…으… 으윽……!

“뭔 소리야?”

잠시 후 방을 나와 주방으로 향하던 카밀라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멈칫, 걸음을 멈췄다.

“엘리샤?”

그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엘리샤의 방이었다.

으… 으읍…….

‘설마……!’

카밀라의 안색이 굳어졌다. 적들의 공격이 벌써 시작된 건가? 하지만 그런 것치곤 다른 곳은 너무 조용하잖아. 그럼 도둑? 암살자?

벌컥!

카밀라는 바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라비와 루드빌이 준 보호 도구들을 믿기에 그녀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엘……!”

하지만 방으로 들어선 카밀라의 얼굴은 그대로 일그러졌다.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저 귀신은 또 뭐래?’

자고 있는 엘리샤를 공격하고 있는 게 한 사람… 아니, 한 귀신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대작이야!”

조금 전, 엘리샤 역시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있었다.

『악의 마음』. 이 책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미 극으로도 만들어져 몇 번이고 봤음에도 볼 때마다 즐겁고 새로웠다.

“하아… 나도 연기하고 싶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꿈은 바로 배우였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

어릴 적 우연히 보게 된 극에 완전히 매료된 엘리샤는 그 후로 틈만 나면 연극을 보러 다녔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도 저렇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매일같이 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정말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공녀인 내가 배우라니.”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페트로 오라버니야 자신을 응원해 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하아.”

엘리샤의 입에서 다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밤마다 거울을 보며 홀로 연기 연습을 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다.

아쉬움을 달랠 목적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그럴수록 연기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그만 잘까?”

시간을 확인한 엘리샤는 침대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요즘 따라 잠이 드는 게 너무 무서웠다.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한데, 자고 일어나면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식은땀을 흘린 것인지 침대가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침대가 낡았나?”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걸까? 잠시 불안한 눈빛으로 침대를 바라보던 엘리샤는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얼마 후 걱정과 달리 그녀는 고른 숨을 내쉬며 빠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르륵… 그륵…….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방 한쪽에 놓여 있던 그녀의 화장대 서랍 문이 삐걱거리며 조금씩 열렸다.

그 속에서 하얀 손이 툭 튀어나오더니,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가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왔다.

아주 천천히 침대로 다가간 여자는 익숙하다는 듯 엘리샤의 몸 위로 올라섰다. 이내 그녀의 손이 엘리샤의 목으로 향했다.

“으… 으윽……!”

엘리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호흡이 편하지 않은 듯 안색도 점점 창백해져 갔다.

[조금만 더…….]

유령은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더욱 힘을 가했다. 그런 그녀의 눈이 광기에 휘말린 것처럼 희번덕거렸다.

“크… 으… 으읍……!”

엘리샤의 신음 소리도 점점 커졌다.

[좀 더… 조금만 더……!]

따아악!

“지랄하네.”

[……!]

그 순간 유령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머리를 가격하는 아주 거친 손길 한 방에 말이다.

“제노, 한 대 더 때려요.”

[그러지 뭐.]

따아악!

[아아악!]

카밀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노가 당황하고 있는 귀신의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다.

[너, 너 뭐야?]

“그건 내가 물어봐야지. 너 뭐니?”

당황한 귀신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침대 위의 엘리샤를 빠르게 살폈다.

귀신으로 인해 잠시 가위에 눌렸던 듯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데리고 나와요.”

카밀라는 제노에게 귀신을 맡긴 후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조금 전 귀신이 나왔던 화장대로 향했다.

‘저게 문제인 것 같은데.’

저런 게 왜 이 방에 있는 거지?

귀신이 깃든 물건 특유의 한기가 느껴지는 화장대를 보며 카밀라는 짧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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