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슬쩍 다른 이들에게도 언질을 주는 게 나으려나?
원래 계획이야 수호의 검만 지키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러는 사이 다치는 사람이 엄청 나오면 어떡해?
‘집에 불까지 난다는데 말이지.’
죽는 사람이라도 발생하면? 우씨!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도의적 책임감 따위 느끼는 거 딱 질색이라고!
‘역시 미리 대비하는 게……!’
“카밀라.”
“네?”
생각에 잠겼던 카밀라는 페트로의 부름에 급히 고개를 다시 들었다.
“이제 말씀해 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무슨…….”
“이렇게 저희 집에 오신 이유 말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엘리샤와…….”
카밀라는 끝까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페트로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말해 주기 곤란한 일인가 보군요.”
하여간 눈치는 빨라 가지고. 카밀라는 가볍게 혀를 찼다.
“저도 짐작만 할 뿐이라서요. 확실해지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페트로는 더 캐묻지 않았다.
“조금 전에 보니 엘리샤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더군요.”
“그래요?”
“아마도 카밀라가 온 게 기쁜가 봅니다.”
그건 아니고. 비싼 보석이 그 값을 하는 거겠지.
‘이 인간은 눈치가 빠른 건지, 둔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똑똑.
“페트로 님.”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시종이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세프라가의 공자님께서…….”
“누구라고?”
시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윽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아르시안이었다.
“네가 여길 왜?”
“놀러.”
“뭐?”
“놀러 왔다고.”
늘 미소를 잃지 않던 페트로의 얼굴이 기이하게 뭉개졌다.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말을 들은 이의 표정이다.
“놀아? 누구와?”
“너와.”
“…….”
“난 어떤 방 쓰면 돼?”
“무슨 소리야? 방이라니?”
설마 지금 여기서 잠도 자겠다는 말인가?
“이 옆방 쓴다.”
“거긴 내 방인데.”
휘익!
“…놀러 온 게 아니라 싸우자고 온 거였어?”
“네놈이 카밀라 옆방을 왜 써.”
“하.”
그러는 너도 방금 옆방 쓰겠다고 하지 않았냐? 페트로는 자신의 멱살을 순식간에 낚아챈 아르시안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내가 카밀라 옆방을 쓰는 게 아니라 원래 저 방이 내 방이야. 그리고 지금 여기 층에는 더 이상 빈방 없어.”
“그럼 어쩔 수 없군. 내가 이 방에서 카밀라와 함께…….”
“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따라와. 내 침대 넓어.”
“내가 네놈과 왜 방을 같이 써!”
“나와 놀자고 온 거라며? 잘 놀아 보자고.”
“이거 안 놔?”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오지? 이 방에서 가장 먼 방으로 안내하기 전에.”
“…….”
결국 아르시안은 페트로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저 녀석도 왔네?]
“그러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근 들어 제법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다. 서로의 성격이 정반대라 그런가? 오히려 잘 맞는 것 같다.
[넌 좋은가 보다.]
“네?”
[웃길래.]
“…제가요?”
제노의 말에 카밀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 나쁘지 않으니까요.”
잠시 당황하던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누가 뭐라 해도 비상시 아르시안의 능력은 아주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의 방문이 반가운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카밀라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내보인 반응을 가볍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