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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44)화 (14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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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사람 홀리려고 저러는 거지? 잘못했다가는 그냥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주겠는걸? 정신 차리자!

“뭔 소리야? 계약금 지불하면서 잔금까지 다 처리했는데.”

“아, 그랬나?”

“아?”

뻔뻔하게 웃는 제이너를 보며 카밀라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저게 어디서 돈을 두 번이나 받아 가려고!

이번 도랄드 가게에 대한 처리를 맡긴 곳이 바로 칸이었다.

제이너를 직접 만난 건 아니고, 정식으로 칸 지부를 찾아가 의뢰를 넣었다. 하루에 한 번 도랄드, 그에게 경고성 화살을 한 대 날려 달라고.

‘아니, 한 대가 아니라 두 대구나.’

한 개의 화살에는 그동안 저들이 저지른 일로 인해 가게에서 피해를 본 금액을 정확히 적어 날려 보냈다.

다른 화살에는 경고를 담았다. D-Day에 가까워질수록 도랄드의 안색이 퀭해진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돈은 잘 받았어?”

“덕분에.”

결국 어제 심장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화살이 날아들자 도랄드가 사람을 보내 피해 보상금을 전해 왔다. 더 이상 가게에 행패를 부리지 않겠다는 확답도 받아 냈다.

“마지막 날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카밀라의 의뢰에 암살은 없었다. 즉, 마지막 날이 되었더라도 그를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

“돈이 목적은 아니지 않나? 가게에 행패 부리는 걸 막고 싶었던 거 아냐?”

“맞아.”

천 골드가 조금 넘는 돈. 일반인들에게야 엄청난 금액이지만, 마력석으로 벌어들이는 단위가 다른 그녀에겐 푼돈이었다. 청부 살인 업체에 의뢰까지 해서 받을 용의는 결코 없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거든.’

자신이 원한 건 벌레처럼 자꾸 귀찮게 엉겨 붙어 피해를 주는 도랄드의 행동을 확실하게 막는 거였다.

그동안 라일라와 다른 직원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의 일부라도 확실히 대갚음해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당하고 참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간단한 처리법도 있잖아.”

“간단한 처리?”

그녀의 물음에 곱게 눈매를 접는 제이너를 보며 카밀라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가 말하는 ‘간단한 처리’가 뭔지 바로 알아들었거든.

여전히 사람 목숨을… 아니, 죽음이라는 걸 가볍게 여기는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저게 천성인지, 반복되는 삶에 의한 결과물인지.

“이거나 받아.”

“뭐야?”

카밀라는 침대 옆 간이 서랍장에서 뭔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검은빛이 도는 장미 모양의 브로치였다.

“마력석?”

“바로 알아보네. 보호 마법이 담겨 있어. 특별히 제작 주문한 거야.”

“나한테 주는 거야?”

“어.”

“왜?”

본능적으로 그의 눈빛에 경계심이 일었다. 입가는 여전히 빙긋이 웃고 있지만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려는 듯 눈빛이 번뜩였다.

“저번 일에 대한 보답.”

그땐 정신이 없어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 와 말로 전하는 것도 좀 우습고 해서 그냥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브로치를 받아 든 그가 조금은 멍한 눈빛으로 그걸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곧 그의 입가에 습관처럼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왜 두 개야?”

“어?”

“브로치가 왜 두 개냐고.”

“그…….”

역시 하나만 만들 걸 그랬나?

장미 모양 브로치를 만들며 한 사람 것을 더 준비했다. 어쨌든 그라시아 제국에 있을 때 그 사람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에게 전해 주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두 개나 주다니 고맙네.”

“…그래.”

결국 카밀라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삼켰다.

“그럼 하나는 내 마음대로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되지?”

“다른 사람?”

“아버지.”

“…어?”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제이너의 모습에 카밀라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수호의 탑 말이야.”

카밀라는 괜히 뻘쭘해 화제를 급히 돌렸다.

“이번이 처음이지?”

“무너진 거?”

“응.”

지금껏 수호의 탑이 무너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혹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인지를 못 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카밀라는 제이너에게 확인차 물었다.

“처음이지.”

그도 처음 겪는 일인 듯 흥미로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든가 말든가, 전과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에 무척 즐거워하는 제이너의 얼굴을 보며 카밀라는 다시 한번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자신의 앞에선 갈수록 본모습을 점점 숨기지 않는 것 같다.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남의 목숨 따윈 먼지처럼 가볍게 여기는 그의 모습을 마주할 땐 온몸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쨌든 너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지?”

“응.”

“이상하네.”

이렇게 지금껏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갑자기 맞이하게 되면 좀 혼란스럽다.

소르펠 공작의 딸이라며 나타났던 라니아도 그렇고 이번에 수호의 탑이 무너진 것도 그렇다.

‘이번 삶에는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거야?’

혹시 전과 달리 주변 상황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것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그래서 원래 일어나는 일인데 시기가 조금씩 빨라지는 건가?’

라니아를 처음 만났을 때도 생각했던 건데, 죽은 뒤의 일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혀 없는지라 뭐라 단정 짓기가 힘들었다.

제이너 역시 자신이 죽을 때 같이 죽었다고 하니 미래에 대해선 그도 딱히 더 아는 것이 없을 테고.

“그래도 말이야.”

생각에 잠겼던 카밀라의 귀로 제이너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일어났던 일이 안 일어난 적은 없어.”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의 말대로긴 하다. 자신으로 인해 그 결과가 달라진 적은 있어도 그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조만간 제법 큰 사건이 하나 터지는 것도 알겠네?”

“큰 사건?”

이맘때에? 뭐였…….

“아!”

생각났다!

“수호의 검.”

조만간 그 검이 도난당한다!

* * *

“디저트 나왔습니다.”

“…….”

“…….”

“맛있게 드세요.”

“…먹으라고?”

“…먹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 시커먼 물은 대체 뭔데?”

“처음 보는 음료군요.”

아르시안과 페트로를 카페로 초대했다. 신상 메뉴가 나왔는데 두 사람에게 딱일 것 같아서 말이지.

“커피.”

드디어 그라시아 제국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검은콩이 도착했다.

이미 분쇄기부터 시작해 여과지까지 다 만들어 놓았던 카밀라는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제 입에 딱 맞는 커피 맛을 찾아낼 수 있었다.

‘확실히 내가 알던 커피콩은 아니더란 말이야.’

신기하게도 검은콩이라 불리는 이건 로스팅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탄 것처럼 새까만 알갱이 모습을 한 검은콩은 그 자체로도 커피 향을 솔솔 풍겼다. 잘 건조하면 향이 더욱 짙어졌다.

“커피? 그게 뭔데?”

“일단 마셔 봐.”

단것을 싫어하는 두 사람을 위해 시럽도 다 뺀 순수 오리지널 아메리카노로, 그것도 비싼 얼음을 팍팍 넣어서 내려놓았다.

“진짜 먹으라고?”

“먹어도 됩니까?”

이 인간들이!

하지만 아르시안도 페트로도 같은 질문만 반복하며 선뜻 커피에 손을 뻗지 않았다. 색깔부터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거 혹시 독인가요?”

“아니거든요.”

“정말 먹는 거 맞아?”

“설마 내가 못 먹는 걸 주겠니?”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눈빛이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커피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쓰네.”

“쓰군요.”

두 사람의 첫 평이다.

“하지만…….”

“뒷맛이 깔끔하네요.”

“쓰기만 한 게 아닌데?”

“고소하기도 하고, 신맛도 살짝 느껴지네요.”

오! 단번에 커피의 그 절묘한 맛을 알아채는데?

달콤한 음료가 아니어서 그런지 자신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처음 맛보는 음료임에도 커피를 제법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한 모금에 이어 계속 잔을 들어 마시는 걸 보면 말이다.

“이것도 우리 가게 신제품.”

라일라가 최근 완성한 디저트 역시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티라미수를 비롯해 커피를 이용해 만든 디저트들이었다.

당연히 이것들 역시 오로지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된 디저트들이었지만 라일라는 이번에도 아주 무난히 그 맛을 재현해 냈다. 역시 우리 천재 파티셰!

“흐음.”

“어때?”

“다른 것보다는 낫네.”

“전 무척 마음에 듭니다.”

여전히 달콤한 디저트에 대한 평이 박했지만, 예전처럼 한입 먹고 포크를 바로 집어 던지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완전 대성공이지 않나?

“단맛이 이 음료와 제법 잘 어울리네요.”

그렇지! 달콤한 디저트에는 역시 커피지!

카밀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와 케이크를 아예 세트 메뉴로 만들어 할인 판매도 할 계획이다.

“그런데 페트로 님.”

일단 이건 됐고. 카밀라는 슬쩍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원래 목적이 있었기에.

“제이빌런 공작님께서는 잘 계시죠?”

그 물음에 페트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의외겠지. 특별히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페트로는 이내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가득 담았다.

“네, 아버지께 안부 전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전할 필요 전혀 없거든요.

“혹시 말이에요?”

“……?”

“공작님이 조만간 어디 멀리 떠나시지 않나요?”

“네?”

“그러니까 혹 공작가를 오래 비우시게 될 만한 일이 있나 해서요.”

이것 역시 매우 뜻밖의 물음이었기에 페트로는 잠시 말없이 카밀라를 빤히 바라봤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의아해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잠시 후 그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다음 주쯤에 폐하의 명으로 에블리카 왕국으로 떠나십니다. 국가 간 사업과 관련된 얘기라 자세히 말씀 드리긴 어려워요. 이해해 주세요, 카밀라.”

“그거예요!”

“예?”

“아… 하하…….”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친 카밀라는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구나.’

아마도 그때 수호의 검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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