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미처 몰랐습니다. 성물의 기운을 수많은 마법사의 마나로 감추고 있는 줄은 말입니다.”
대마법사 아미알드.
수호의 검을 들고 설치던 마르스와 함께 골치였던 인물이다.
교의 힘이었던 성물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갔고 파괴가 되지 않는 건 어떻게든 봉인했다.
이번에 찾은 성물 역시 그가 수호의 탑에 은밀히 숨겨 놓곤 마나로 성물의 기운을 지우고 있었던 거다.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소르펠가에 잠입시켰던 라니아의 일이 너무도 허무하게 끝나며 그쪽 인력을 모두 성물을 찾는 데 돌렸더니 이런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며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성도들이 무척 기뻐할 겁니다!”
“가장 중요한 성물이 드디어 돌아왔으니.”
누가 뭐라 해도 자신들의 교가 가진 힘의 원천은 불멸이다. 하지만 성물을 잃은 자신들의 힘은 반쪽짜리였다.
생생한 육체로 새로운 생을 얻어도 일정 시기가 지나면 몸이 눈에 띄게 늙어 가 더 이상 그 몸을 쓸 수가 없게 된다. 육체와 영혼의 결합에 급격히 균열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성물의 힘을 빌리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으니, 이제 이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에바 신께서 알베르토 님을 보호하고 계시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곧 그 시기이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어둠 속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선택의 시간이 좀 더 주어졌군.”
“아직 누구로 할지 정하지 못하셨나 보군요.”
“두 번째 아이가 가진 세력이 이용하기는 훨씬 더 편하긴 한데 말이지.”
“그렇지요. 이미 저희 교와도 접점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첫 번째 아이가 가진 힘이…….”
“좀 더 신중히 결정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알베르토 님의 선택이 곧 저희 교의 미래입니다.”
붉은 돌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곧 결정해야겠지.”
그의 웃음소리가 좀 더 짙어졌다.
“그런데 수호의 탑을 정리하느라 다른 쪽 일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수호의 검 말인가.”
“네, 아무래도 그것 역시 서둘러야겠지요.”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니까.”
“맞습니다.”
“예전 같은 능력은 사라지고 없다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관 다니엘의 말에 어둠 속에서 다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투루 지역의 흑마법사들은 어떻게 됐지?”
“저희 교에 가입하기를 원하고는 있는데…….”
“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세프라 가문에서 그들을 추적 중입니다.”
“꼬리가 밟힌 건가?”
“최근 그들의 손에 죽은 이들이 무척 많은지라 결국 그들의 귀에까지 들어간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흐음.”
“그들이 교에 들어온다면 제법 유용하게 쓰이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그의 입에서 빠른 결정이 흘러나왔다.
“버리게.”
“네?”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그들과 쓸데없는 마찰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 * *
“어서 오렴.”
식당으로 들어서자 소르펠 공작이 가장 먼저 반갑게 말을 건네 왔다.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를 보며 카밀라도 미소로 답을 했다.
루드빌 역시 눈이 마주치자 아무런 말 없이 눈인사를 보내왔다.
‘여전히 반짝반짝하시네.’
턱선이 더 날카로워져서 그런가? 한층 미모가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다 같이 다이어트라도 한 건가?
“왔냐? 울보.”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라비의 입가에도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진한 미소가.
“…….”
저 미소가 비웃음으로 보이는 건 자신의 착각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
“오늘 이 시간부로 저희 고스트 상회에서는 마탑과의 모든 거래를 전면 중단할 것을 선언합니다.”
“뭐, 뭐? 야!”
“정 거래를 원하신다면 지금 금액의 50% 인상된 금액으로 거래를 다시 하도록 하지요.”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어!”
자식이. 그러게 왜 덤벼?
‘나도 쪽팔리거든.’
미쳤지, 미쳤어!
‘나 그때 대체 왜 운 거니?’
저쪽 세계에서 이시아로 살 땐 정말 눈물이라는 걸 제대로 흘려 본 적이 없다. 연기를 할 때 빼곤 말이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빠에게 두들겨 맞거나 머리채를 잡혀서 질질 길거리를 끌려다닐 때도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래서 독하다고 더 얻어맞았지.’
하지만 눈물이 안 나는 걸 어쩌라고?
‘그런데 대체 왜!’
왜 이곳에선 툭하면 눈물 바람인 거냐고! 그때 수호의 탑 앞에서 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 걸 생각하면!
‘아! 아아악!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
이불킥을 1년 동안 날려도 모자랄 판이다. 길거리에서, 그것도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대체 뭔 짓을 한 거니?
혹시 영혼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감정선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도르만 이 새끼!’
또 뭐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카밀라.”
“네에?”
속으로 쪽팔림과 싸우며 열심히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카밀라는 소르펠 공작의 부름에 멈칫했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이어진 그의 물음에 잠시 커졌던 그녀의 눈이 곱게 휜다. 통신으로 매번 묻던 질문을 얼굴을 마주하며 들으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네, 전혀요.”
“그래.”
“…….”
“…….”
…저기요? 이게 끝인가요?
역시나 이번에도 더 이상의 질문은 날아오지 않았다. 루드빌도, 라비도 마찬가지다. 대신 식사하는 내내 돌아가며 자신을 말없이 응시했다.
딱 봐도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보이는데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진짜 뭐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카밀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안 분위기도 좀 이상하고 말이야.’
자신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집사 루브의 반응부터 남달랐다.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늦으셨으면 다들 사직서 제출할 뻔했습니다.’
‘사직서? 뭔 소리야?’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가시방석이라니?’
‘다들 워낙 한 성깔들 하시는 분들이라.’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