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저건 정말 당사자인 에르쉬 본인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당장 저 입을 찢어서라도 막고 싶었지만 에르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표정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사이 다시 카드를 뽑아 드는 그녀의 손을 보며 그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비밀 장부가 있는 장소가…….”
“닥쳐! 한마디만 더 하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결국 그의 입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함입니다, 형님! 제가 어찌 감히……!”
에스크라 공작을 향해 간곡히 소리쳐 보지만 돌아오는 건 짜게 식은 눈빛이었다.
다른 이들이 ‘설마?’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카밀라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모함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될 일이군.”
“혀, 형님!”
에스크라 공작은 더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부가 있는 장소가 어디라고?”
“형님! 저 헛소리를 믿으시는 겁니까!”
“어.”
“그러니까 제 말을……! 예?”
“자식의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어야 하지?”
“제, 제 말을 좀 더……!”
“여기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카밀라가 작은 종이 한 장을 에스크라 공작에게 넘겼다. 비밀 장부가 있는 위치였다.
그 종이를 받아 든 에스크라 공작은 곧장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형님! 자, 잠시만요!”
그런 그의 뒤를 에르쉬가 다급히 쫓았다. 회의실에 있던 일부 사람들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크라 공작의 뒤를 따랐다. 이번 일은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다들 깨달은 것이다.
카밀라의 말이 사실이라면 에르쉬가 가문의 돈을 횡령했다는 거다. 그건 아무리 에스크라가의 직계 혈족이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회의실에 여전히 남아 있던 이들은 두려움과 경악이 뒤섞인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혹여 자신들 또한 감추고 싶은 비밀이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모습들이다.
“차 맛이 참 좋네요.”
그런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카밀라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앞에 놓여 있던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러게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건드려.’
차를 마시는 그녀의 표정이 아주 개운하다.
“큭.”
제이너만이 그런 그녀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 * *
“난 정말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정말?”
…아니, 그렇게 대놓고 물으면 좀 찔리기는 하는데.
카밀라와 제이너는 따로 시간을 가졌다. 그가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은 얼굴로 그녀의 거처까지 따라왔다.
“처음엔 정말 얼굴만 보려고 했다니까.”
그런데 그 인간이 먼저 건드리잖아. 재수 없는 새끼가 재수 없는 말투로 재수 없게 구는데 자신이 참을 이유가 없잖아?
“정말 예지 능력인 건가?”
제이너는 그게 무척 궁금한 듯했다. 에르쉬가 바람을 피운 것부터 횡령까지, 최측근도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뭐, 대충 그런 거지.”
아직 그에게 자신이 귀신을 보는 사실까지는 말하지 않았기에 카밀라는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이번에 제노의 도움을 좀 받았다. 에르쉬가 있는 곳을 찾아가 근처를 맴돌며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무엇이 됐든 상대의 약점이 될 만한 걸 하나 정도 알고 있으면 좋을 듯해서.
‘그런데 월척이 낚인 거지.’
운 좋게도 그에게 원한을 가진 채 곁을 맴돌고 있는 귀신을 만난 것이다. 제노는 그 귀신을 바로 자신에게 데리고 왔다.
[오랫동안 에르쉬, 저 인간의 횡령을 도와주었지요.]
‘그런데요?’
[죽임을 당했습니다.]
‘왜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요. 제가 외부인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화를 내고 의심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