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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29)화 (12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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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진짜 춥네.”

“원래도 추운 지역이야.”

토벌대에 합류한 카밀라는 이동 마법진을 통해 숄츠 산맥이 보이는 지역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가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수도에는 봄이 왔거늘, 이쪽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눈보라 치는 그런 살벌한 겨울은 아니었지만 따뜻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예전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날씨지.”

안 그래도 추웠던 곳에 정령왕의 분노까지 사자 말 그대로 얼음 왕국이 되었고 심지어 산맥 주변으로 빙벽까지 생겨났던 거다.

“오셨습니까.”

숄츠 산맥과 가장 가까운 영지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누군가 빠르게 다가섰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제이너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에스크라가의 기사로, 자신들보다 앞서 이곳에 진을 치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다.

날씨의 변화를 본 에스크라 공작은 빙벽이 녹을 것을 예측하고 미리 일부 군사를 모아 이곳으로 보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으니까.

“상황은?”

“정찰대를 구성해 두 번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가장 실력 있고 발 빠른 이들로만 구성해 숄츠 산맥으로 정찰을 보냈지만 아무도 돌아온 자가 없었다.

“아직 산 아래로 내려온 마수는 없지만,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점점 초입 쪽으로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슬슬 빙벽이 사라진 걸 알아챌 때도 됐지.”

오히려 아직까지 조용한 게 이상한 일이다.

“곧 황실에서도 군사를 보낸다고 하였지만…….”

“마냥 기다릴 때가 아닌 듯합니다.”

“그런 것 같군.”

기사와 대화를 잠시 나눈 제이너가 카밀라에게 다가섰다.

“아무래도 쉴 시간이 없겠는데? 내일 바로 산으로 출발해야 할 것 같아.”

“알겠어요.”

카밀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 마력석이 담긴 가방을 더욱 꼭 쥐었다.

숄츠 산맥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긴장되는 건 사실이다.

이곳 세계를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마수를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생방송 무대에 설 때와는 차원이 다른 떨림이 느껴졌다.

‘책에서 그림으로 보긴 했는데.’

책과 실물은 엄청 다를 것이 분명할 테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음에도 심장이 귀에 걸린 것처럼 쿵쾅거렸다.

[규!]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가방에 들어가 있던 킹이 머리를 빼꼼 내밀며 힘차게 짖었다.

“그래, 너만 믿는다.”

[규규!]

그제야 카밀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 * *

다음 날 아침, 제이너가 이끄는 군사들과 함께 카밀라는 빠르게 숄츠 산맥 초입에 들어섰다.

“조용하네요.”

“그러게.”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숲은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분명 보고에는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초입 쪽에서도 들린다고 했는데.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수십이 넘는 병사와 기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든든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숲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는 걸 그녀 스스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걱정 마라.]

제노가 안심하라는 듯 카밀라 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긴장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 달리 유유히 주변을 살피고 있는 제이너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 굳이 따라온 목적대로 그를 끊임없이 살피고 있지만, 딱히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늘 친절했고 기사들에게 신임도 두터웠다.

슬쩍 다른 이들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니 하나같이 평들이 너무 좋았다.

“제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주셨죠.”

“제가 유일하게 등을 맡길 수 있는 분입니다.”

“저분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습니다!”

…사이비 신도들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조금의 의심도 없는 그들의 눈빛에 뭘 더 물어보기도 민망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순간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걱정 마. 별일 없을 테니까.”

“제 걱정은 마세요. 위험하면 정말 뒤도 안 보고 도망칠 거거든요.”

카밀라는 이동 마력석이 든 가방을 흔들어 보였다. 가볍게 웃은 그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진짜 농담이었나?’

카밀라는 그런 그에게서 쉬이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자신에게 한 말은 정말 아무 뜻이 없던 말인가?

“짜증 나네.”

그냥 확 대놓고 물어봐? 대체 뭘 알고 있는지?

이렇게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끙끙 앓는 건 정말 성미에 안 맞았다.

“아가씨, 다시 출발이에요.”

“…알았어.”

사람들이 다시 이동하자 카밀라 역시 생각을 멈추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쿠에엑!

쿠웅! 쿵!

“……!”

그런데 잠시 후 모두가 다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커다란 굉음과 진동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쿠웅!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져 왔다.

“모두 위치로.”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로 제이너의 음성이 퍼져 나갔고, 이내 사람들이 검을 뽑아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쿵! 쿠우웅!

잠시 후 이 무거운 발걸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멍하니 벌렸다.

뭐가 저리 커!

“아이스 베어입니다.”

겉모습은 하얀 곰이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일반적인 성인 곰 세 마리를 합쳐 놔도 가뿐히 찜 쪄 먹을 크기라고나 할까.

‘콜라병 쥐여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드는데.’

“빙벽 안에서 덩치만 키웠나 보군.”

오랜 세월 빙벽에 갇혀 살던 마수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일반적인 마수의 크기는 결코 아니었다.

저놈만 변이종으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숄츠 산맥 전체에 자리한 마수들이 모두 저렇다면?

“좀 곤란하겠는걸.”

이런 상황에서도 제이너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야! 이 미친놈아! 지금 웃음이 나오냐!

쿠웅! 쿵! 쿵!

“제이너 님!”

그런데 저 한 놈이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크기의 아이스 베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족히 열은 넘는 수다.

검을 든 모든 이들의 눈에 당혹감이 어렸다. 초입을 막 지났을 뿐인데 벌써 벅찬 상대가 나타났다는 건……. 다들 눈앞이 아찔했다.

“제노, 가능해요?”

넋을 놓았던 카밀라는 급히 제노에게 물었다.

[동시에 세 놈까지는.]

…도망칠까?

‘내가 미쳤지.’

여기까지 왜 따라왔을까. 그놈의 양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당장 마력석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진짜 혼자 도망가도 되나? 셋까지는 상대할 수 있다는데, 진짜 그냥 모른 척하고 도망가?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결국 제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망설일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제거하는 게 살길이었으니까.

하지만 싸우다 정말 가망 없어 보이면 혼자서라도 진짜, 진짜 도망칠 거다!

투욱.

순간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가방에서 튀어 나간 건 바로 킹이었다.

“킹!”

[규?]

왜 부르느냐는 듯 자신을 돌아보는 킹을 향해 카밀라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아니다. 저 작은 녀석이 저렇게 큰 놈들을 어찌 상대한다는 말인가!

아직 성체가 아닌 킹이 덤벼들었다간 저 커다란 발에 그대로 깔아뭉개질 게 분명했다.

“안 돼! 킹!”

하지만 킹은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킹을 붙잡기 위해 본능적으로 앞으로 향하던 카밀라를 누군가 급히 붙잡았다.

“앞으로 더 가는 건 위험해.”

제이너였다.

“킹이……!”

카밀라가 급히 킹이 달려간 곳에 다시 시선을 줬을 때.

크어어어엉-!

엄청난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크윽!”

“흐억…….”

주변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비틀거렸다. 몇몇 이들은 무릎까지 꿇었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제이너마저 미세하게 손을 떨었다.

그 자리에서 멀쩡한 건 오직 카밀라뿐이었다. 그녀는 귀가 좀 먹먹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아니, 심장이 쿵쾅거리긴 했다. 저 소리의 근원지가 바로 킹이었으니까.

「백호의 울음소리에 적들의 귀가 멀고…….」

문헌에서 봤던 구절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카밀라는 자신들을 향해 거칠게 다가서던 아이스 베어를 바라봤다. 그 커다란 존재들이 지금, 지금 하나같이 다 킹을 향해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헐.”

저 산만 한 것들이 손바닥만 한 킹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눈으로 보고도 쉬이 믿기질 않았다.

크허어엉-!

킹이 한 번 더 울부짖자 아이스 베어는 뒤돌아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앙- 크허어엉-!

킹은 그 후로도 산이 떠나가라 몇 번을 더 큰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산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마수들에게 경고를 하듯이 말이다.

“와…….”

우리 킹, 오늘따라 왜 저리 커 보이니?

소르펠 공작이 저번에 말하기를 킹이 조금 성장을 한 것 같다더니, 그게 정말인 듯했다. 처음 접하는 킹의 모습에 카밀라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 제이너 님, 마수들이 도망가는데… 쫓을까요?”

아이스 베어가 사라진 모습을 보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한 기사가 다급히 물었다. 어쨌든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마수들의 처리였으니까.

크르릉-

“허억!”

그런데 그 순간 마수들에게 향했던 킹의 사나운 울음소리가 기사에게 향했다. 세차게 고개를 젓는 것이 마수들을 쫓지 말라는 뜻인 걸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크르르르-

사람들이 모두 검을 내리고 물러서자 그제야 킹도 울음소리를 잠재우며 방금까지 뿜어내던 차가운 기운을 갈무리했다.

[규규!]

잠시 후 자신의 발밑으로 총총 다가온 킹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빼꼼 들어 올린 채 앙증맞은 앞발로 안아 달라 졸랐다.

풋, 웃음을 터트린 카밀라는 그런 킹을 빠르게 안아 들었다.

“잘했어.”

[규우!]

카밀라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킹이 갸르릉거렸다.

“하!”

그 순간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

“하, 하하하! 미치겠네.”

제이너였다. 그는 한참 후에야 웃음을 멈췄다.

“어쩌지?”

카밀라 곁으로 다가선 그가 쿡쿡 웃음을 다시 터트렸다. 그런 그를 카밀라는 완전 미친놈 보듯 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이 뭐가 재밌다는 거지? 넌 죽다 살아난 게 재밌니?

“이번 삶은 왠지 지루하지 않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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