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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27)화 (12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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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찾은 카이스 님은 안타까운 소식을 바로 접하셔야 했죠. 무척 아끼던 부하가 목숨을 잃었거든요.”

“아끼던 부하요?”

“행방불명된 카이스 님을 찾아다니던 중 습격을 받고 숨을 거뒀습니다. 그 부하에겐 홀로 키우고 있던 아들이 한 명 있었고요.”

“혹시 그 아이가…….”

“네, 그분이 제이너 님이십니다. 카이스 님이 양자로 거두셨죠.”

카밀라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샤루아를 바라봤다.

카이스, 그 사람이야 무척 아끼던 부하가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이니 양심상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인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샤루아의 입장은 좀 다르지 않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힘들지 않았을까?

[저도 찬성했어요.]

카밀라의 표정을 읽은 샤루아가 배시시 웃었다.

[제가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거든요. 제이너가 그 빈자리를 채워 주어서 전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답니다.]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제이너는 어릴 때부터 정말 착했어요. 절 친엄마처럼 따랐고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는 착한 아이였죠.]

“처음엔 가문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제이너 님의 능력을 다들 인정해 주고 계십니다.”

둘의 칭찬 세례를 들으며 카밀라는 자신이 본 제이너를 새삼 떠올렸다.

저들의 말대로 첫인상은 분명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도 살뜰히 챙기는 것 같았고, 자신에게도 친절하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던 그의 모습은 흠잡을 곳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 거슬린단 말이지.’

자신을 보며 빙그레 웃던 그의 눈빛이 이상하게 껄끄럽다.

자신도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더 답답했다.

“무척 사려 깊은 분이시니 카밀라 님과도 잘 지내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안 그래도 카이스 님이 부르셨는데 함께 가시죠.”

제이너를 정식으로 소개해 주려는 듯했다.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카밀라는 알트온 백작과 함께 에스크라 공작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똑.

“들어와.”

에스크라 공작의 집무실로 들어선 카밀라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제이너를 볼 수 있었다.

“어서 와, 동생.”

그가 자신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나저나, 저 인간은 동생이라는 단어가 뭐가 저리 쉬워? 어색하지도 않나?

“알고 있었어?”

“새로운 가족이 생긴 거요?”

에스크라 공작의 물음에 제이너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들 알고 있던데요? 제가 없는 동안 일이 있었다던데.”

“일?”

“세빈느 부인이요.”

“아.”

하긴, 그때 듣는 귀가 좀 많긴 했다. 세빈느 부인이 아이를 학대하는 모습에 열이 받아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이 집 핏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다이브처럼 대충 눈치를 챈 것이다.

“아주 박살을 냈다던데.”

그가 쿡 웃음을 터트렸다. 카밀라는 별다른 말 없이 시녀가 내려놓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럼 앞으로 계속 여기 같이 사는 거야?”

“아뇨.”

카밀라는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 집 놔두고 타집살이를 계속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돌아가신다고요?!]

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왜요? 여기에 계속 있어 주시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샤루아였다. 아니, 아까부터 왜 계속 졸졸 따라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다이브한테 안 가요?

“영애.”

알트온 백작 역시 섭섭하다는 듯 짐짓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카밀라는 그런 그를 조금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급히 시선을 피했다. 좋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으면 영 마음이 약해져서 말이지.

“……?”

그러다 에스크라 공작과 눈이 마주친 카밀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저 인간은 또 왜 저렇게 이마의 골이 파여 있대?

“암살자를 보낸 자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배후는 이미 잡혔다면서요?”

가브엘 후작이 배후라고 말한 건 당신이잖아. 벌써 잡혀서 죽었다며?

“또 다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기를 바라세요?”

에스크라 공작은 대답 대신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반면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제이너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바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3차 주문서까진 확인하고 돌아가려고요.”

“다행이네. 새로 생긴 동생이 금방 떠난다 했으면 엄청 섭섭했을 것 같거든.”

사교성이 좋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자신이 한동안 여기 있을 거라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자신을 보는 그의 눈빛에 여전히 즐거움이 가득하다.

찜찜해.

* * *

“도르만.”

“네, 아가씨.”

“너 나한테 또 뭐 숨기는 거 있지.”

“아뇨.”

“정말 없어?”

도리도리.

억울하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젓는 도르만의 모습에도 카밀라는 날카로운 눈빛을 조금도 거두지 않았다.

“지금 이실직고하면 봐줄게.”

“정말요?”

“이것 봐, 이것 봐!”

“아닙니다! 정말 없습니다!”

“진짜 없어?”

“네!”

“그럼 저거 다 뭐야.”

카밀라는 옷 방을 가리켰다.

“내 구두들 다 어디 갔어?”

못 보던 구두가 하나둘 늘어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원래 가지고 있던 구두들이 모두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웃긴 건 새로 자리한 구두들이 모두 굽이 낮고 뭉뚝하다는 거다.

뾰족했던 원래의 구두들이 사라진 걸 본 카밀라는 도르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죄지은 게 있어서 내 구두를 다 없앤 거 아냐?”

그걸로 두들겨 맞기 싫어서!

“아닙니다! 너무 높은 구두는 아가씨 발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제가 일부러 낮은 구두를 준비한 겁니다.”

“정말로?”

“네.”

아닌 것 같은데, 저거 분명 뭔가 있는데.

카밀라는 애써 딴청을 피우며 자신과 제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도르만을 다시 지그시 노려봤다.

똑똑.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도르만은 옳다구나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빠르게 문을 열었다.

“들어가도 될까?”

“들어오세요.”

제이너였다.

“이건 선물.”

그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꽃이 아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들꽃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은 꽃다발이었다.

“신기하지? 잘 찾아보니 정원 곳곳에 이런 꽃들이 가득 피어 있더라고”

“향이 좋네요.”

거짓말이 아니다. 생김새야 볼품없었지만, 들꽃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생각보다 좋아 카밀라도 조금 놀랐다.

“차 한 잔 줄 수 있어?”

“이쪽으로 앉으세요.”

제이너에게 자리를 권한 카밀라는 직접 차를 끓였다. 집사 귀신 데린에게 배웠기에 차 끓이는 건 자신 있었다.

“차 맛이 좋네.”

역시나 차를 한 모금 마신 제이너가 바로 만족스러운 평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후로 그는 차를 마시는 내내 별다른 말이 없었다.

“마력석에 다이아몬드 광산까지.”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주제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자신을 보며 빙긋 웃었다.

“운이 정말 좋던데.”

“제가 한 운 하죠.”

“특히 얼마 전에 매입한 아레아스 광산 말이야.”

“…….”

“제이빌런 공작이 제시한 금액과 정말 근소한 차이더라고.”

카밀라도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조사를 많이 하셨나 봐요.”

“아, 미안.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새로 생긴 동생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말이야.”

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 우리 제국과도 아주 큰 거래를 따냈다지?”

“들으니 정말 제가 운이 좋았네요.”

“운이라…….”

그가 다시 쿡 웃음을 터트렸다.

“듣기로 예지 능력이 있다던데. 그게 도움이 된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고요.”

카밀라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찻잔을 들었다.

역시 이 인간, 영 껄끄럽다.

저 눈, 저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경험상 저런 인간과 얽혀서 좋을 게 전혀 없었다.

“난 또…….”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봤다.

“혹시나 같은 삶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했지.”

뭐?

‘지금 뭐라고……!’

카밀라는 그녀답지 않게 표정 수습에 실패했다.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칭찬할 만했다.

“농담이야.”

그런 자신의 표정을 한껏 즐기던 그는 정말 별 뜻 없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차 잘 마셨어.”

그러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밀라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새끼, 뭐야?”

한참 후에야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녀는 쉬이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 * *

“숄츠 산맥의 빙벽이 결국 다 녹았답니다.”

“흐음.”

“지금 있는 군사만으로는 방어가 힘들 겁니다.”

“그래서 폐하께서도 카이스 님께 도움을 청하고 계시는 거겠죠.”

아침 식사 자리였지만 에스크라 공작과 알트온 백작, 그리고 제이너는 일 얘기로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킹! 딸기 먹을래?”

[규!]

그러거나 말거나 카밀라와 다이브, 그리고 킹은 열심히 식사 중이었다. 무엇보다 카밀라는 지금 제법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킹, 너 음식도 먹을 줄 알아?’

신수는 귀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라 여겼기에 음식을 먹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주지도 않았지만, 애초에 킹이 달라는 제스처 또한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다이브가 주는 대로 과일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킹의 모습에 카밀라는 황당함을 느꼈다.

성장기라서 그런가?

‘아닌데?’

분명 신수는 선택한 이의 기운을 받아서 성장한다고 들었는데? 먹는 것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가?

“이번에는 사과.”

[규!]

뭐, 잘 먹으니 좋네.

온실에서 자라는 귀한 과일과 채소를 잘도 받아먹는 킹을 보며 앞으로 녀석의 간식을 따로 챙겨 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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