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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24)화 (12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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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브엘 후작이요?”

“누군가 소르펠 가문 저택 앞에 가져다 놨다던데.”

“뭐를요?”

“…….”

말없이 빙긋 웃는 그를 보며 카밀라는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가브엘 후작은 또 누가 죽인 거래?

새삼 이 세상의 살벌함이 느껴져 등골이 서늘했다.

“받아.”

“뭔데요?”

“2차 주문서.”

안색이 어두워진 카밀라에게 에스크라 공작이 툭 던지듯 서류를 건넸다. 1차 때보다 훨씬 양이 많아진 주문서다.

아니, 주문서를 주는 건 좋은데 말이야.

‘이 인간은 어쩜 이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할까?’

지금 이 타이밍에 굳이 이딴 걸 줘야겠어?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이거. 쓸데없는 일에 머리 쓰지 마라.”

에스크라 공작은 주문서를 손으로 툭툭 쳤다.

…뭐, 그 말에는 동감이다. 이제 와 가브엘 후작의 죽음에 신경 쓰고 머리 아파해 봐야 뭐하겠는가.

일단 배후가 밝혀졌고 그 배후가 죽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녀는 바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알겠어요. 아버지께 바로 전할게요.”

“…….”

“왜 그러세요?”

“뭐가?”

“아니, 방금 표정이…….”

“내 표정이 뭐?”

“뭐 씹은 표정이었는데요.”

“내가? 언제? 괜한 사람 잡지 마라.”

아니면 말고.

‘뭘 또 저리 날카롭게 반응한대?’

성질 더러운 건 하여튼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버지께, 잘 전해라.”

“크흡!”

갑자기 들린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알트온 백작이 급히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뭐지? 뭐가 웃긴 거지?

“그럼 이만 가 볼게요.”

“그렇게 해.”

알트온 백작을 지그시 노려보던 에스크라 공작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의아한 표정을 지은 카밀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곧장 집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는 순간, 에스크라 공작 주변에 놓여 있던 물건들이 알트론 백작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시네요.”

날아오는 물건을 모두 마법으로 가볍게 받아 낸 알트온 백작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친아버지 앞에서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 부르시다니. 공작님을 전혀 아버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누가 뭐래?”

“그러게 좀 더 잘하시라고요.”

“여기서 뭘 어떻게 더 잘해.”

“누가 들으면 그동안 카밀라 님께 정말 잘하신 줄 알겠습니다. 첫날부터 식사도 혼자 하게 하신 분이.”

“너 집에 안 가냐?”

에스크라 공작은 들고 있던 서류를 마저 그에게 집어 던졌다.

* * *

“다이브?”

“……!”

도서관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서던 카밀라는 잠시 멈칫했다. 자신의 부름에 아이가 몸을 경직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도 열심이네.”

“네…….”

자신이 맞은편 자리에 앉자 아이가 급히 시선을 피했다.

‘뭐지?’

어제 그래도 조금 가까워졌다고 여겼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첫날처럼 냉랭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껄끄러워하는 듯한 아이의 모습에 카밀라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혼이 나서 그래요.]

그때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샤루아가 대신 변명했다.

혼이 났다고? 누가 혼을 냈는데?

[세빈느가 좀 엄해요.]

세빈느? 그 유모?

[다 아이가 잘되라고 하는 거지만… 팔이 많이 아팠을 거예요.]

아파? 팔이?

‘설마……!’

벌떡!

카밀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길게 내려와 있는 아이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다이브가 다급히 팔을 빼려고 했지만, 고작 열 살 아이의 힘을 감당 못 할 정도로 카밀라는 약하지 않았다.

“…….”

멍이 든 아이의 팔. 더 기가 막힌 건 오래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군데군데 있다는 거다.

“이거 놔요!”

당황한 아이가 카밀라를 밀어내며 급히 도서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카밀라는 아이를 쫓아가는 대신 샤루아에게 시선을 줬다. 설명을 들어야 했으니까.

[…세빈느가 가끔 매를 들어요.]

“때린다고요?”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무슨 잘못이요?”

[어, 어제 수업에 늦었잖아요.]

“열 살짜리가 수업에 좀 늦은 일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혼을 냈다고요?”

[저, 절대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건 아니에요. 다 아이가 잘되라고…….]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예요?”

어제오늘 아이의 변화를 보고도 저런 말이 나오나? 자신들 앞에서 그렇게 밝게 웃던 아이가 오늘은 또 저런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변화의 원인이 뭔지 정말 모르는 건가?

[세빈느가, 세빈느가 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기가 막혀 하는 카밀라의 모습에 샤루아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런 그녀를 뒤로한 채 카밀라 역시 빠르게 도서관을 나섰다.

* * *

“다이브 님, 어제 본 시험에서 두 개나 틀리셨더군요.”

“답을 착각해서…….”

“제가 늘 말씀드렸잖아요. 이런 바보 같은 실수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의자에 앉아 있던 유모 세빈느는 들고 있던 시험지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가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했죠?”

“…나.”

아이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맞아요. 그래서 공작님이 다이브 님을 싫어하시는 거랍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죽게 하셨으니까요.”

고개를 푹 떨구는 아이의 어깨를 세빈느가 살며시 잡았다.

“그러니 뭐든 잘하셔야 해요. 공작님이 다이브 님을 조금이라도 봐주시기를 바란다면 누구보다 뛰어나셔야 한다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응.”

“오늘 이 실수를 공작님께서 아신다면…….”

“잘못했어! 아버지께 말하지 마!”

급히 고개를 든 아이가 눈물이 글썽한 눈빛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 모습에 세빈느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린다.

“네, 전 다이브 님을 너무도 사랑하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도련님을 아끼는 이가 저라는 걸 절대 잊지 마십시오.”

“…응.”

“하지만 잘못을 하셨으니 벌을 받으셔야죠.”

유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매우 익숙한 듯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그녀는 바로 회초리를 들었다.

휘익!

아이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도 팔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든 아이의 눈이 빠르게 커졌다.

“이거 완전 미친X이잖아.”

카밀라였다. 그녀가 회초리를 든 세빈느의 손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무, 무슨……!”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세빈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다, 당장 이거 놓으세요!”

하지만 금세 그녀는 표정을 수습했다. 오히려 카밀라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쪽이 끼어들 일이 아니……!”

짜악!

순간 세빈느의 눈빛이 멍해졌다. 한쪽으로 고개가 돌아간 채 뺨이 화끈거렸지만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지금, 맞은 건가?

“이, 이게 무슨……!”

짜악!

카밀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더 그녀의 뺨을 세차게 가격했다.

“당신 내가 누군 줄 알고!”

짜악!

“당신 미쳤어! 감히 지금 누굴……!”

짜악!

“그만……!”

짜악!

카밀라는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뺨을 가격했다. 그걸 깨달은 세빈느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느새 주변에는 소란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들 이곳에서 다이브를 돌보는 이였다. 그들 모두 갑작스러운 사태에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밀라는 그런 이들을 차갑게 훑었다. 이제까지 저 많은 이들 중 누구 하나 이 여자의 행동을 말린 이가 없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땐 부모에게 알리고 체벌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모에 맡기는 게 정석이었다. 아무리 유모라도 체벌은 용납되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게다가.

“다시 지껄여 봐.”

조금 전 안으로 들어서며 카밀라의 귀로 똑똑히 들린 말은 그녀의 이성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공작님이 뭐가 어떻고 어째?”

그동안 얼마나 많이 그딴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해 댔으면 아이가 그 말에 조금도 반박을 못 해?

“이제야 이해가 가네.”

아버지인 에스크라 공작 앞에서 아이가 왜 그토록 고개도 못 들고 경직된 모습을 보였는지, 왜 그토록 초조한 눈빛이었는지.

“감히 아이를 죄인으로 만들어?”

카밀라는 그녀의 멱살을 확 낚아챘다.

“다, 당신이 뭔 상관이야!”

유모 세빈느는 다시 악을 썼다. 그녀 역시도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손님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이런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

“공작님께 바로 알리겠습니다! 훈육을 방해했다고!”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편이다. 자신에게 매달 받아먹는 돈이 얼만데! 처음 보는 저 여자의 편을 들어 줄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다이브 도련님 또한 자신의 말을 거부하지 못한다. 지금도 봐라. 자신을 보는 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을.

절대 맞았다는 말 따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래서 어릴 때부터의 교육이 중요한 거다. 조금의 반항도 하지 못하게 자신이 저리 키웠다.

팔목의 상처? 아이가 놀다가 다친 것 같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아니면, 다른 하인이나 하녀에게 덮어씌워도 간단히 끝날 일이다.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손을 댔겠는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손님께서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생각을 정리한 그녀의 음성이 한결 더 당당해졌다. 오늘 저 여자가 자신에게 한 짓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짜아악!

“아악!”

그 순간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한 타격이 날아들었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세빈느의 몸이 비틀거렸다.

“이이익! 미쳤어?”

“미친 건 너지. 미친X한테 미쳤다는 소리 들으니 은근히 기분 나쁘네.”

“너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나?”

악을 바락바락 써 대는 그녀의 멱살을 카밀라는 더욱 바짝 잡아당겼다.

“저 아이와 아주 가까운 사람.”

“뭐?”

카밀라는 바짝 그녀에게 얼굴을 가져가며 더욱 나직하게 속삭였다.

“잘 생각해 봐. 내가 누구일지.”

그녀의 붉은 눈을 마주한 세빈느의 얼굴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카밀라는 그제야 그녀의 멱살을 툭 놓아주며 다이브를 데리고 그 자리를 유유히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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