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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21)화 (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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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앞에 놓여 있는 접시가 유독 주황주황해 보이는 건 자신의 착각인가? 스튜가 담긴 접시도 그렇고 샐러드에도 유독 당근이 많은 것 같은데?

하지만 아이는 별다른 투정 없이 음식을 꾸역꾸역 잘도 삼켰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세빈느 부인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저러다 체하는 거 아냐?’

그렇다고 객인 자신이 뭐라 하는 것도 웃긴 일이고.

그냥 다시 식사를 시작하려던 카밀라의 행동이 멈칫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아이의 옆에 전에 본 귀신이 여전히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 우리 불쌍한 아기…….]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음성에 카밀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이의 엄마라는 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했나?’

알트온 백작이 지나가듯 한 말이 떠오른다. 딱히 병이 있었던 건 아니고 난산이었는데 출혈이 멈추지 않아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들었다.

“흐음.”

그럼 저리 애틋할 수도 있지. 아이를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으니, 한이 맺혀 아이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에구. 모르겠다.’

이해는 가지만 딱히 동정심이 일지는 않았다. 저런 귀신이 어디 한둘인가.

카밀라는 아이 쪽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고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 * *

─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뭐가? 일하고 있다니까?”

─ 아니, 아니! 그 전에요!

“그 전?”

─ 식사를… 식사를 집무실에서 혼자 하셨다고요?

“처리할 일이 산더미야. 대충 여기서 해결했지.”

그랬던 적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바쁠 땐 늘 그래 왔거늘, 뭘 새삼 저렇게 놀라는 건지 모르겠다.

─ …….

“왜?”

급히 처리할 일이 있다며 집으로 돌아간 알트온 녀석이 통신으로 연락을 해 왔다.

일 얘기를 나누다 대충 저녁을 집무실에서 해결했다니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 카이스 님.

“그러니까 뭐?”

목소리는 왜 또 깔고 난리야?

─ 글렀네요.

“글러? 뭐가?”

─ 카밀라 님과의 관계가 나아지긴 글러 먹었다고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리고 난 딱히 그 아이와의 관계가 나아지길 바라지 않아. 이대로도 상관없어.”

─ 좀 닥치시구요!

…이 새끼가, 너 방금 목소리 높였냐?

─ 첫날부터 식사를 혼자 하시게 했단 말입니까! 이 낯선 공간에 오신 분을?

“혼자는 아니었을걸? 다이브도 있었을 텐데.”

─ @$%@……!

너 설마 지금 욕한 거냐?

─ 대체 제가 그분을 그곳으로 왜 모시고 왔는지 모르세요?

“궁에 혼자 두기 그렇다고 네가 말했잖아.”

─ 땡땡땡!

“이 자식이……!”

지금 눈앞에 없다고 막 나간다, 너?

─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가십시오.

“어딜?”

─ 카밀라 님, 찾아가시라고요.

“가서 뭐 해?”

통신 구슬 안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차를 마시든가. 산책을 하시든가.

“그런 걸 왜 해야 하지?”

─ 야! 이 망할 인간아!

“…야.”

─ 아, 저희 집 시종이 뭔가를 떨어트려서. 죄송합니다.

“아닌 것 같은데.”

─ 어쨌든 지금 당장 찾아가십시오.

“바빠.”

─ 공작님!

“끊어.”

─ 카이……!

에스크라 공작은 바로 통신 구슬을 던지듯 한쪽에 내려놓았다.

연신 혀를 차던 그는 처리할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렇게 할 일이 태산인데 차는 무슨. 자신이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다고.

* * *

“…….”

“…….”

카밀라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를 조금은 어이없이 바라봤다.

에스크라 공작, 조금 전에 갑자기 찾아오더니 차를 마시자며 저리 앉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 그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다는 거다.

‘대체 왜 온 건지.’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왔나 했는데 아까부터 차만 몇 잔째 쭉쭉 입으로 들이붓고 있었다.

“한 잔 더 드려요?”

“그러지.”

진짜 또 먹겠다고? 벌써 네 잔째인데?

쪼르륵.

카밀라는 직접 그의 잔에 차를 따르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식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네?”

그 자식?

짧은 한숨을 내쉰 그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봤다.

“불편한 건?”

“딱히요.”

여기 온 지 아직 하루도 다 지나지 않았다. 딱히 불편할 게 뭐 있겠는가. 지금 이 상황이 제일 불편한 것 같은데?

그 대화를 끝으로 다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연신 차만 홀짝이는 그의 찻잔이 이내 다시 비워졌다.

“또 드려요?”

“…됐다.”

그래, 당신도 인간인데 다섯 잔은 아무래도 무리지?

“이름이 다이브?”

또다시 그가 굳게 입을 다물려고 하자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카밀라가 먼저 얘깃거리를 꺼내 들었다.

“몇 살이죠?”

“으음… 열 살이군.”

뭐지? 이 한 박자 늦게 나오는 대답은?

‘설마…….’

지금 자식 나이를 계산한 거야? 아니지?

“첫째 자제분의 나이는요?”

“…스물다섯?”

왜 의문형인데? 왜 확신이 없어!

이 인간, 자식에게 전혀 관심이 없구나. 나야 그렇다 쳐도 같이 사는 자식의 나이 정도는 바로바로 대답이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첫째 자제분은 지금 어디에 계세요?”

“제이너.”

…제이너?

“첫째 자제분이 아니라 제이너다.”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 제이너라는 분은 안 보이시는 것 같던데.”

식사할 때도 못 봤고, 집에 없는 게 확실했다.

“잔당들을 처리 중이지.”

“아.”

카밀라는 바로 알아들었다. 내전이 끝나긴 했지만, 여전히 1황자 쪽 세력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걸 마무리하고 있는 듯했다.

“2차 거래 목록이 곧 준비될 거다.”

“알겠어요.”

에스크라 공작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을 잠시 빤히 바라보던 그는 결국 아무런 말 없이 방을 나섰다.

카밀라는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이 닫히는 것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왜 온 거래?

* * *

“완전히 봄이네.”

이미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간이다. 하지만 머리 기댈 곳만 있어도 잘 자던 체질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침대에 누워도 눈이 더 말똥말똥해지는 것에 결국 카밀라는 밖으로 나왔다. 산책이라도 좀 하고 들어가면 잠을 잘 자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밤에 나와 보니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곳, 그라시아 제국 날씨가 정말 많이 따뜻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얇은 카디건 하나만 걸치고 나왔음에도 딱히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 더 걸치세요.”

자신을 굳이 따라 나온 도르만이 다른 겉옷을 하나 더 어깨에 걸쳐 줬다.

“감기 걸리십니다. 추위도 많이 타시는 분이.”

“너랑 있으면 별로 안 추워.”

“정말요? 절 그렇게 의지해…….”

“열받아서.”

“…….”

입만 뻐금거리는 그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밀라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다지 볼 거 없는 정원이었지만 그래도 산책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나무 사이를 걷는 밤공기가 유독 상쾌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우유라도 데워 올게요.”

“우유?”

“따뜻하게 한 잔 드시고 나면 잠이 잘 오실 거예요.”

내가 애냐? 그리고 우유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거절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계속 자신을 신경 쓰는 게 제법 기꺼웠으니까.

빠르게 자리를 뜨는 도르만을 잠시 지켜보던 카밀라는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휴우.”

폐 속까지 깊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카밀라는 한동안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밤하늘에 가득한 엄청난 별 무리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좋네.”

[좋죠.]

“……!”

그런데 자신의 혼잣말에 대답하는 이가 있었다.

[나도 살아 있을 때 여기서 별 보는 거 엄청 좋아했는데.]

식당에서 본 귀신이었다. 대체 언제 온 것인지 공작 부인으로 짐작되는 그녀가 자신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처럼 멍하니 밤하늘을 보며 대화를 하듯 연신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기서 보는 별은 죽어서 봐도 좋네요.]

“…….”

[어! 별 떨어진다! 소원 빌어야겠다, 소원!]

자신이 진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 말에 두서는 없었다. 이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았고.

[날씨가 갑자기 좋아져서 그런가? 별이 더 잘 보이네.]

자리를 옮길까?

“아가씨!”

그때 도르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데운 우유가 식을까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따뜻할 때 드세요.”

우유뿐만 아니라 커다란 쿠키도 함께 접시에 담겨 있었다. 큼직한 초콜릿이 콕콕 박혀 있는 게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우유와 같이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카밀라는 우유 잔을 집어 들었다. 따듯한 온기가 손끝을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쿠키… 맛있겠다.]

우유를 막 한 모금 마시려던 카밀라는 그대로 우유를 뿜을 뻔했다.

방금까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귀신이 쿠키가 담긴 접시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눈을 깜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키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도 애절해… 그래, 진짜 애절하다. 도저히 그쪽으로 손을 뻗을 수가 없을 정도로.

“왜 그러세요?”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만히 있자 도르만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결국 카밀라는 우유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쿠키 하나를 집어 앞으로 내밀었다.

“드세요.”

[……?]

쿠키를 따라 고개를 들었던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쿠키 드시라고요.”

[……! 꺄아아악!]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녀의 입에서 아주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꺅! 꺄아악!]

이런 반응은 좀 신선한데?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비명을 질러 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원래 저런 건 인간이 귀신을 봤을 때 보여야 하는 반응 아닌가? 왜 자기가 더 놀라서 난리래?

‘게다가 뭔가 좀…….’

공작 부인이라고 확신했던 생각이 살짝 흔들렸다.

10대 소녀처럼 꺅꺅거리는 모습이 귀족, 그것도 권세가 막강한 귀족 부인의 품위와는 좀 멀어 보인다고나 할까.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며 카밀라는 다시 우유 잔을 집어 들었다.

[…….]

그 모습에 여자 귀신이 조심스럽게 웅크려 앉아 있던 몸을 펴며 그녀를 바라봤다.

[제, 제가 보여요?]

“쿠키 안 드실 거면…….”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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