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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20)화 (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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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에스크라 공작가

“오셨습니까, 가주님.”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에스크라 공작을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저택 앞에 나와 있었다.

그중 30대 중반의 여자가 제일 먼저 다가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웃는 모습이 참 선해 보였다.

“즉위식 마무리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누구지?

마차에서 내린 카밀라는 에스크라 공작 옆에 서 있는 그녀를 잠시 살폈다.

공작 부인은 오래전에 죽었다 들었는데, 그럼 저 여자는?

“유모인 세빈느 부인입니다.”

카밀라의 의문을 알아차린 알트온 백작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신분을 알려 줬다.

“유모요?”

저리 젊은 사람이 에스크라 공작의 유모는 당연히 아닐 테고.

“둘째이신 다이브 도련님을 보살피는 이죠.”

카밀라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이의 유모라는 위치가 원래 저리 가주와 친근한가?

다른 고용인들이 에스크라 공작의 등장에 잔뜩 경직되어 있는 것과 달리 그녀는 매우 편안한 모습이다.

“카이스 님과도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셨고 돌아가신 마님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셨습니다.”

이어진 그의 말에 카밀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는…….’

그런 그녀의 시선이 이내 한 사람에게 향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에스크라 공작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의 유독 하얀 피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에스크라 공작을 바라보며 연신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는 게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붉은 눈.’

눈동자 색을 확인한 카밀라는 아이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다이브 님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카밀라 옆에서 그녀를 계속 살피고 있던 알트온 백작이 이번에도 아이의 이름과 신분을 짧게 알려 줬다.

저벅.

“아버지.”

에스크라 공작이 가까이 다가오자 아이는 조금은 경직된 표정으로 아주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별일 없었겠지.”

“네.”

그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을 내뱉은 아이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내려 시선을 피했다.

조금 전까진 분명 그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막상 그와 마주한 아이는 시선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물론이죠. 도련님이야 늘 착실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그러자 세빈느 부인이 바로 대화에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수업도 빠지지 않고, 선생님들 칭찬이 자자하시죠.”

그녀가 살포시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잠시 움찔하던 다이브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안으로 드시죠, 가주님. 많이 피곤하실 텐데.”

그녀의 말에 에스크라 공작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곧 다시 걸음을 멈춘 그의 시선이 뒤로 향한다. 순간 그와 카밀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쉬어라.”

그는 그 짧은 한마디를 남긴 채 바로 돌아섰다.

‘헐.’

집에 처음 온 딸에게 건네는 인사말치곤 참 쌈박하다 못해 찬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기대한 게 있어야 실망도 하지.

그런데 주변 반응이 좀 남다르다. 저택 앞에 줄지어 서 있던 이들 모두가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공작님이 원래 저런 인사말을 잘하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성격 더럽기로 유명하다더니. 고작 저런 인사말에 놀라 줘야 하는 거였나?

알트온 백작의 말에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아들에게 건네던 인사말도 참 거시기했다.

‘별일 없었니, 도 아니고 별일 없었겠지, 라니.’

대화를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연신 혀를 차던 카밀라의 눈에 다시 아이가 담겼다. 마침 다이브 역시 그녀를 잔뜩 커다래진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 또한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관심을 보이고 신경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나 보다.

‘자세히 보니 똘망똘망한 게 제법 귀엽…….’

휙!

‘어쭈?’

눈이 마주친 아이는 곧바로 고개를 획 돌렸다. 누구 아들 아니랄까 봐 너도 한 성깔 한다 이거지?

‘오케이! 콜!’

나도 애 안 좋아하거든. 하나도 안 아쉽다, 뭐! 우리 리오가 훨씬, 훨씬 귀엽다고!

카밀라 역시 아이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제가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미리 지시가 있었던 듯 고용인이 아닌 알트온 백작이 직접 자신을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다시 한번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저번에 보니 한 마법 하시던데. 에스크라 공작 밑에서야 저리 부하처럼 굴지, 이런 잡다한 일을 할 분이 절대 아니었다.

“영애에 대한 건 아직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영애께서 당장은 불편해하실 것 같아서…….”

“네.”

카밀라도 바랐던 거다. 굳이 자신이 에스크라 공작의 피를 이은 사실을 외부에 알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붉은 눈이야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여기 가문 사람만 가지는 특징도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 여기에 온 게 살짝 후회됐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뭔가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아 오긴 했는데…….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저 싸가지 없고 냉정한 인간과 뭔 마무리를 짓겠다고 여기까지 쫓아왔을까.

“가시죠, 영애.”

“네.”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한동안 지내야 할 저택을 잠시 살핀 카밀라는 알트온 백작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 * *

[너 괜찮아?]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옆에서 다 지켜본 제노가 걱정스레 물었다.

“안 괜찮을 건 또 뭐예요?”

[그래. 이게 뭐 큰일도 아니고. 처음 만난 아버지가 딸이 있었던 것도 모르는 기억 상실증 환자라는 게 뭐 대수냐.]

“…그냥 좀 닥쳐 줄래요?”

도르만이 최근 자신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 없어지니까 저 인간이… 아니, 저 귀신이 속을 마구 긁는다.

[그보다 아까 봤어?]

“뭘요?”

[여자 유령 말이야. 굉장히 애절하던데?]

아, 그 사람. 애절했지.

“이 집 도련님 엄마라도 되나 보죠.”

[엄마? 엄청 어려 보이던데?]

“공작님이 양심도 없는 도둑놈인가 보죠.”

[야, 그래도 네 아버지야.]

조금 전 자신들을 마중 나왔던 이들 중에 귀신도 섞여 있었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귀신은 다이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가 그리도 애달픈지.”

[내가 가서 물어볼까?]

“제노.”

[응?]

“심심해요?”

[…어.]

“심심하면 가서 훈련장이나 구경하세요.”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찾아가는 서비스까지 해야겠니? 가볍게 손을 내저은 카밀라는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하지만 창밖 풍경은 아주 삭막했다. 추운 계절에도 잘 자라는 나무들만 무성한 정원은 정원이라 부르기에는 무척 민망한 모습이다.

그것도 그럴 게 그동안은 날씨가 그 모양이었으니까.

다른 귀족가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온실이 유일한 해결책이었겠지만 이제 날씨도 좋아졌는데 다들 정원 꾸미는 것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호오.”

어쩌면 정원 사업도 제법 돈이 되…….

“…나 지금 뭐 하니?”

이 판국에 지금 돈 벌 생각이 나니? 전에 라비가 돈독 올랐냐고 놀렸는데, 지금 보니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아가씨.”

잠시 후 연신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도르만이 다가왔다.

“여섯 시예요. 식사가 그때 준비되니 식당으로 내려오시면 된다고 했거든요.”

아까 다른 고용인들과 뭔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이곳의 생활 패턴을 들었나 보다.

가끔 뒤통수치는 게 아주 열받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한다고 나름 시종 일에 열심인 게 조금 기특하긴 했다.

카밀라는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화나셨어요?”

자신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며 도르만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너한테 화난 거 아냐.”

“아니긴요. 계속 저한테 까칠하게 구시면서.”

“나야 늘 너한테 까칠하지.”

“…….”

“그냥 화풀이야.”

“화풀이요?”

“응. 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와…….”

뭐?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네가 그동안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해 봐!

눈빛으로 억울함을 마구 호소하는 도르만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식당 안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시녀 몇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 왔다.

“오셨어요?”

이어 유모 세빈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 다이브가 그녀를 힐끔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대기하고 있던 시녀의 안내에 카밀라는 아이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곧바로 음식이 탁자에 차려졌다.

“아버지는?”

에스크라 공작이 오지도 않았는데 음식이 바로 나오자 아이가 다급히 물었다.

“가주님께선 업무가 바쁘셔서 집무실에서 간단히 식사하시겠답니다.”

시녀의 말에 아이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그런 기색을 지웠다.

'꼬맹이 주제에…….’

감정을 드러내면 혼이라도 나는 건가? 자꾸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는 아이를 보며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꼴에 자식 교육에는 엄격한가 보지?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음식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밥이 잘 넘어가는 자신이 참으로 기특했다.

그래, 굶는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빵 하나를 결대로 찢어 입으로 가져가던 카밀라의 시선이 무심코 아이에게 다시 향했다.

바른 자세로 식사를 하는 아이는 자신의 시선도 느끼지 못한 채 음식에 매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어쩐지 묘했다. 아주 작은 반응이었지만 사람의 표정을 유독 잘 읽는 카밀라의 눈에는 확연하게 보였다. 좀 더 자세히 지켜보다 바로 알 수 있었다.

‘당근 싫어하는 거구나.’

아이는 당근을 먹을 때마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도 어릴 때 당근 엄청 싫어했는데.’

커서도 딱히 즐기지 않았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어 영양소를 채운단 말인가. 대체 식품이 널리고 널린 것을.

물론 지금 이 시대에야 뭐든 잘 먹어야 하는 게 맞는 말이지만…….

‘좀 많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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