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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15)화 (11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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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파닥!

별궁 숙소로 들어서자 빠르게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존재가 있었다.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와 어깨에 앉는 하얀 용.

“…아이슬라.”

[왜?]

느긋하게 하품을 내뱉는 아이슬라에게 카밀라는 결국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안 바빠요?”

그녀가 또 열받아서 이곳을 깡깡 얼려 버릴까 봐 계속 참았는데…….

“왜 계속 여기에 있어요?”

도저히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여기에 계속 있는 건데? 다른 정령왕들은 바빠서 저리 난리구만.

[안 바빠.]

“아, 네.”

다시 길게 하품을 내뱉는 하얀 용을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좀 더 제대로 쉬긴 해야겠어.]

겨울의 정령왕이 다시 날아올랐다.

이후 카밀라의 얼굴 주변을 빙빙 돌며 여유를 부리는가 싶더니, 별안간 파닥파닥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손을 톡톡 건드렸다.

[손 펴 봐.]

“손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밀라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후우욱.

작은 숨을 토해 낸 아이슬라 앞에 하얀 결정체가 모이더니 이내 카밀라의 손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수정처럼 생긴 차가운 보석을 보며 카밀라는 연신 눈을 깜박였다. 이게 뭔데?

[필요할 때 불러. 정령계에 가 있어도 언제든 달려갈 테니.]

일종의 통신석 같은 건가?

“정령계로 돌아가시게요?”

[응. 너무 오래 여기 있었어.]

조금은 지친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밀라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휘이잉!

순간 차가운 공기가 주변을 감돌았다.

눈을 감았다 뜨자 아이슬라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카밀라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

그녀가 가볍게 자신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공기 같은 것이 닿는 느낌에 카밀라는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고마웠어.]

아주 희미한 미소를 잠시 지어 보인 그녀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잠시 이마를 매만지던 카밀라 역시 결국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그때 문이 열리며 도르만이 안으로 들어섰다.

“준비 다 하셨어요?”

어째 자신보다 그가 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늘부터 수도에서 축제가 열린다. 수도뿐만 아니었다. 제국 전체가 지금 축제 분위기였다.

“준비할 게 뭐 있어. 그냥 나가면 되지.”

카밀라 역시 그 축제를 즐기기 위해 외출을 서둘렀다.

솔직히 카밀라도 조금 들떴다. 이곳 세계에서 축제를 즐겨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서 가요!”

도르만의 재촉에 카밀라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 * *

“축제?”

“네, 조금 전에 축제를 즐기시겠다고 나가셨다 합니다.”

서류를 확인하던 에스크라 공작의 미간이 꿈틀했다.

“호위는?”

“기사 두 명을 대동한 것으로 압니다.”

“고작 두 명?”

“소르펠 가문에선 제법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라 들었습니다. 게다가 축제에 사람들을 많이 이끌고 나가는 건 오히려 시선을 끄는 일이죠.”

“그래.”

에스크라 공작은 그럼 됐다는 듯 다시 무심히 들고 있던 서류에 시선을 줬다.

“오늘 축제에 사람이 많겠군.”

“그렇겠죠. 이런 좋은 날씨에 처음 열리는 축제니까요.”

“치안에는 문제없겠지?”

“경비대에 수시로 순찰을 돌라 명해 뒀습니다.”

알트온 백작의 말에 이번에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다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덜컹!

“공작님?”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한번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군.”

“예?”

“모처럼 열리는 축제에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지 않나.”

“아니…….”

언제부터 그런 것에 신경을 쓰셨다고?

“저 서류들은요?”

“백성들의 안전보다 저딴 서류가 더 중요한가.”

그대로 밖으로 향하는 에스크라 공작의 모습에 알트온 백작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껏 일을 뒤로 미룬 적이 한 번도 없던 주군의 뜻밖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토해 낸 그 역시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 * *

“사람이 엄청 많네요!”

축제가 열린 거리에 들어선 도르만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축제를 즐기러 나온 이들로 거리는 인산인해였다.

“씨앗 가져가세요! 씨앗!”

거리 곳곳에 꽃씨를 나눠 주는 이들이 많았다. 씨앗을 배포하는 이들도 받아 가는 이들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 의미가 아주 남달랐으니까.

사시사철 겨울이었던 이곳에 드디어 식물이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다. 농사는 꿈도 못 꿨던 그라시아 제국 주민들에게 이 작은 씨앗의 의미는 아주 특별했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겨울이 끝날 줄은 몰랐네요.”

덩달아 꽃씨를 받아 든 도르만이 중얼거렸다.

카밀라에게 대충 상황을 전해 들었지만, 고작 몇 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겨울을 끝낸 아이슬라의 행동이 조금은 의외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품어 온 원한이 그리 쉽게 풀린다고? 아무리 오해였다고 하지만…….

“그녀도 지쳤던 거겠지.”

오늘 정령계로 떠나가는 아이슬라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무척 지쳐 보인다고.

“누군가를 그리 오랫동안 미워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것도 몇백 년 동안.

아마도 그녀는 계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이 지긋지긋한 자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고마웠어.]

그녀가 남긴 마지막 인사가 진실을 알려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라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멈출 계기를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잘 끝났으니 됐……!”

파지직!

걸음을 옮기던 카밀라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귀에 걸려 있던 귀걸이가 기이한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아르시안이 준 방어 마법이 걸린 귀걸이다.

파직! 파지직!

귀걸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르시안이 채워 준 팔찌와 발찌에서도 연신 마법 파동이 일어났다.

“아가씨!”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 조금 떨어져 있던 기사들이 달려와 앞을 막아서며 주변을 경계했다.

‘마법?’

방어 마법이 발동됐다는 건 뭔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강력한 마법으로!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잠시 멍해져 있던 카밀라는 기사의 말에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자신 때문에 괜한 사람들이 공격에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걸음을 뗐다.

‘누구지?’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걸 안 듯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이건 분명 자신을 노린 공격이다.

카밀라는 소름이 끼쳤다. 이런 직접적인 암살 시도는 처음이었으니까. 뭔가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휙! 타앙!

“……!”

단검이다! 아주 작은 단검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다 기사들이 휘두른 검에 막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꺄아악!”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카밀라는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기사들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적의 인원이 몇 명인지 모르고, 아군의 수가 적을 땐 이런 좁은 장소가 더 유리하다.

‘괜찮아, 괜찮아! 제노가 있잖아.’

자신의 앞을 막아선 두 기사를 보며 두려움에 떨던 카밀라는 옆에서 연신 주변을 살피는 제노의 모습에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그가 있는 한 적들에게 허망하게 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젠장.’

자신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루드빌이 바리바리 챙겨 준 무기를 하나라도 가지고 올 것을!

[카밀라!]

휙!

제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몸이 뒤로 획 당겨졌다.

푸욱!

그 순간 자신이 있던 자리에 박히는 단검들! 골목 주변 건물 위에서 공격이 쏟아진 거다.

“와우. 수가 엄청 많네요.”

자신의 팔을 잡아당겨 감싼 도르만이 위를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아가씨를 보호해!”

“예!”

골목 입구에도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 헤널드가 앞으로 나서며 다른 기사에게 카밀라의 곁을 지키라는 명을 내렸다.

‘수가 너무 많은데?’

건물 위도 그렇고 입구로 들어서는 적들의 수가 예상보다 너무 많았다.

‘객사라니, 객사라니!’

내가 살아남으려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발버둥 쳤는데! 이런 곳에서 죽는다고?

세차게 고개를 내저은 카밀라는 땅에 박힌 단검을 주워 들었다.

“제노, 급하면 들어오는 거예요.”

[알았다.]

자신의 작은 속삭임에 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 마음이 아주 조금 놓였다.

저벅.

…젠장! 놓이긴 개뿔! 가까이 다가오는 적들의 모습에 카밀라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서걱! 데구르르-

그때였다. 다가오던 적들이 멈칫했다. 다섯 개의 뭔가가 바닥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풀썩!

“한 놈만 살려.”

“네, 주군.”

그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피가 묻은 검을 가볍게 털어 내며 자신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선.

에스크라 공작, 그의 등장에 카밀라는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입에서 긴 숨이 토해졌다.

…살았다.

그를 보는 순간 저 발끝에서부터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크윽!”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건물 위에 있던 적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온몸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카밀라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후우욱!

기이한 기운에 고개를 돌리니 희미한 마법진이 골목 전체에 깔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이, 바로 알트온 백작이었다.

‘마법사였어?’

처음 안 사실에 카밀라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에스크라 공작의 최측근이라는 사실만 대충 알고 있었을 뿐이다.

저벅.

적들이 그렇게 속절없이 알트온 백작의 마법에 묶여 죽어 가고 있을 때 에스크라 공작이 성큼 자신에게 다가섰다.

‘…화났나?’

무심해 보이는 그의 눈에 깃든 분노를 읽은 카밀라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 아무래도 이 사태의 원인이 자신인 듯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타깃이 자신이라는 거다.

저벅.

“공작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저벅.

“그게… 제가 일부러 이런 소란을 일으키려고 한 건 절대 아니거든요.”

저벅.

“솔직히 저도 피해자라고요.”

스윽.

에스크라 공작의 손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본 카밀라는 질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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