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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13)화 (11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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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아 제국 전체가 써야 할 다른 계절 물품! 그 대량으로 구입해야 할 물품을 독점으로 납품할 권리를 오로지 한 사람이 가지게 된다면?

‘아버지께 효도 한 번 크게 하는 거지.’

그라시아 제국이고 페이블러 제국이고, 이번 일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이 소르펠 가문의 문을 열심히 두드릴 것이다.

“정말 이딴 거래를 하겠다고?”

최대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에드센 역시 기가 막힌 듯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카밀라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 어떠세요? 거래하시겠어요?”

카밀라는 마지막으로 에스크라 공작에게 물었다.

“…우리에겐 나쁠 거 없는 조건이군.”

이건 도박이었다. 만약 아이슬라에게 일기장의 내용을 알려 준 후에도 이 겨울이 전혀 멈추지 않는다면?

‘마력석만 괜히 싸게 넘기는 꼴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된다면 나도 아이슬라, 저 겨울의 정령왕과 함께 이놈의 그라시아 제국과 마리아나 황비를 두고두고 저주할 거다. 혼자가 아니니까 외롭지는 않겠네.

“그러면 거래 성립이죠?”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손을 내밀었다. 광고주와 계약을 맺고 악수하던 습관이 무심코 튀어나와 버린 거다.

하지만 이곳 세계에선 아직 악수가 흔한 인사가 아니었기에 카밀라는 내민 손을 슬쩍 다시 내렸다.

휘익!

하지만 그런 카밀라의 손을 에스크라 공작이 빠르게 낚아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니 에스크라 공작이 자신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반지, 어디서 났지?”

‘뭐야? 아직도 날 도둑으로 의심하고 있는 건가?’

손에는 루비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붉은 의상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하고 나왔다.

“어머니 유품입니다만.”

전에 그 반지다. 고용인들이 장미 정원에 숨겼던 루비 반지.

“유품?”

“네, 저희 어머니 물건이에요.”

한 번 더 강조하며 카밀라는 조금은 새침한 표정으로 손을 빼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은 반지에 박혀 있었다.

왜 저래? 아직도 못 믿는 건가?

“진짜 제 반지 맞거든요? 아버지가 어머니께 주신 거라고 했어요.”

“아버지? 소르펠 공작이 준 거라고?”

“그건 아니… 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카밀라는 슬슬 짜증이 났다. 의심도 적당히 해야지. 자신의 가정사까지 일일이 다 밝혀야 하는 건가?

“이제 그만 가도 되겠죠?”

카밀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스크라 공작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그녀는 그대로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에드센 황태자가 조용히 따랐다.

타악.

“왜 그러십니까?”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알트온 백작이 에스크라 공작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는 평소답지 않게 무척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저 반지가 뭐기에…….”

그 원인이 카밀라가 가지고 있는 반지 때문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반지다.”

한참 후에야 그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가 잃어버린…….”

“설마, 에스크라의 붉은 반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스크라의 붉은 반지. 에스크라 가문의 가주만이 가질 수 있는 반지이자, 동시에 오래전 그가 사고로 잃어버린 반지이기도 했다.

“잘못 보신 게 아닐까요?”

알트온 백작이 봤을 땐 그저 평범한 루비 반지였다.

“저 아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에스크라 공작의 명에 그는 더 토를 달지 않았다. 자신의 주군은 절대 허튼소리를 하는 이가 아니었으니까.

‘아버지가 준 거라고?’

그 후로도 에스크라 공작은 카밀라가 사라진 공간을 말없이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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