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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12)화 (11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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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이쪽으로.]

그렇다고 이제 와 돌아갈 수도 없고.

“정말 눈 폭풍을 잠재울 수 있어요?”

카밀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내려 물었다.

[아이슬라, 그녀가 분노하는 이유는 마르스의 죽음이네. 그를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건 이미 다른 정령왕들에게 들어 대충 아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녀의 핏줄이 황위를 잇고 있는 이곳 그라시아 제국을 아주 꽁꽁 얼려 버린 거라고.

“안 죽였어요?”

직설적인 물음에 마리아나 황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내가 죽인 거지.]

죽인 거 맞네. 그런데 이제 와서 뭐?

[그녀가 모르는 진실이 있어. 그걸 알려 준다면 분노가 가라앉을지도 모르지.]

“그럼 직접 전하지 그러셨어요.”

그 긴 세월 동안 뭐 하고 이제 와 난리래?

[아이슬라가 나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네.]

‘그렇긴 하겠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렇게 분노를 표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원흉이 눈앞에 나타나면 대화는 고사하고 더 난리를 쳤겠지.

[이쪽으로.]

결국 카밀라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여기예요?”

얼마 후 본궁의 지하 공간으로 들어선 카밀라는 연신 기침을 토해 냈다. 사람 발길이 전혀 없던 곳인 듯 걸을 때마다 엄청난 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니, 무슨 궁에 이런 곳이… 쿨럭!”

[죽은 자가 한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장소는 점점 사람들에게 잊힌다네.]

즉, 마리아나 황비가 그동안 머문 곳이 이곳이라는 말이었다.

[여길 치워 보게.]

그녀가 가리킨 건 낡은 흔들의자였다. 그걸 치우고 밑에 깔린 카펫까지 치우자 작은 문이 하나 나왔다.

그 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가자 좀 더 작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마르스, 그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지.]

선반에 놓여 있는 물건들을 만지는 그녀의 손길이 무척 조심스럽고 애틋했다. 그러다 그녀가 책장 한 곳을 가리켰다.

[저거네.]

카밀라는 그녀가 가리킨 책을 뽑아 들었다.

[모든 진실이 담겨 있는 나의 일기장이지. 그걸 아이슬라에게 꼭 전해 주게.]

일기장? 대체 여기에 뭐가 적혀 있길래.

[잘 부탁하네.]

어라? 일기장을 잠시 살피던 카밀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리아나 황비의 몸이 점점 희미해져 갔기 때문이다.

설마 이대로 승천한다고? 아니, 자신을 뭘 믿고? 내가 안 전하면 어쩔 건데!

그 긴 시간을 이곳에서 버틴 게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짐을 툴툴 털어 버린 사람처럼 아주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이다.

“와, 씨…….”

뭐지? 이 뒤통수 맞은 기분은?

저 발끝에서부터 밀려드는 찜찜함에 카밀라는 손에 들고 있는 일기장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냥 확 버릴까?

“에휴.”

어쨌든 읽어나 보자는 생각에 카밀라는 일기장을 품에 잘 넣은 후 지하 공간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다시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저기요.’

날 방에 무사히 데려다 놓고 사라졌어야죠!

이곳까지 오는 내내 마리아나 황비의 뒤만 따랐던 카밀라는 병사들의 위치나 사람이 없는 지름길 따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대체 혼자 어떻게 돌아가라고!

‘그냥 처음 계획대로 뻔뻔하게 나갈까?’

혹시나 한 마음에 옷도 최대한 화려하게 입고 왔다.

[자네, 그렇게 입고 갈 건가?]

‘네.’

[잠입하러 가는데 빨간색 옷이라니.]

‘걸리면 변명할 게 있어야죠. 도둑처럼 입고 갔다가 들키면 그거야말로 낭패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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