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러다 페이블러 제국으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닐까요?”
바람이 분다. 눈바람이.
즉위식이 끝난 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밖에는 눈 폭풍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발이 묶인 거다. 즉위식도 무사히 끝났고 페이블러 제국으로 돌아가야 하건만, 이동 수단이 모두 막힌 상태다.
마법진이 있는 곳까지 도저히 움직일 형편이 안 됐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절단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제노.”
[어?]
“이곳이 예전에는 이리 추운 지역이 아니었다고 했죠?”
[맞아, 역사서에 나와 있어. 오래전에는 이곳 역시 우리 제국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었다고. 물론 지형상 겨울이 좀 더 길긴 했다지만 이렇게 1년 내내 얼어 있는 곳은 아니었다고 하더군.]
눈보라가 치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던 카밀라는 문득 즉위식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눈처럼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창밖에 서 있던 이, 그리고 그런 그녀의 주변을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던 계절의 정령왕들.
‘봄, 여름, 가을…….’
혹시 걔가 겨울인가? 누가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이었잖아. 다른 계절을 다스리는 정령들이 말을 걸고 있던 존재.
“흐음.”
혹시 이 눈보라가 정령의 힘 때문인가? 이것 또한 그 모습을 봤다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예상이었다.
“물어보지 뭐.”
“예?”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어디를요? 지금 저렇게 날씨가 엉망인데!”
“온실.”
근천데 뭐. 그 짧은 시간에 얼어 죽기야 하겠어?
얼어 죽을 뻔했다.
온실에 들어선 카밀라는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정말 온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온실이 조금만 더 멀리 있었다면 얼음 동상이 되었을 것이다.
[어?]
[그 인간이다!]
[신수와 친한 여자!]
그녀를 알아본 세 정령왕이 빠르게 다가섰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에도 카밀라는 여전히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데 온 신경을 쏟아야만 했다.
후우욱!
“……!”
그런데 그 순간 봄을 다스린다고 했던 노란 용이 입을 오므리더니 바람을 살짝 내뱉었다. 그러자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오!”
뼛속까지 파고들었던 냉기가 스르륵 사라져 갔다.
“너 좀 대단한데?”
[이 정도야 우습지. 대체 정령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유령?”
[유, 유령?]
[세상에…….]
[우릴 그런 것들과 같이 취급하다니! 우린 위대한 정령이라고! 그것도 정령왕!]
“너희가 훨씬 귀엽긴 해.”
이건 진심. 손바닥만 해서 꼭 인형 같다. 색깔도 알록달록, 세 마리가 뭉쳐 있으니 더 앙증맞다.
[귀, 귀엽다고?]
[세상에…….]
[정령왕한테 귀엽다니!]
그래도 그 말이 싫지는 않은 듯 분노하던 기운들이 한층 낮아졌다.
“나 궁금한 거 있는데.”
자신의 주변을 연신 파닥거리며 날아다니는 그들을 향해 카밀라는 이곳을 찾은 이유를 바로 꺼내 들었다.
“혹시 지금 저 눈보라, 정령이 한 짓이야?”
카밀라의 물음에 세 정령의 행동이 뚝 멈췄다. 뭔가 아주 큰 비밀을 들킨 것처럼 우물쭈물하던 그들은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아이슬라의 힘이야.]
아이슬라?
[겨울을 다스리는 정령왕이지.]
역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