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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10)화 (1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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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진짜로 팬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정확히 아는 이가 없어. 수호의 검을 절벽에 꽂은 이후의 행적이 미스터리란 말이야.]

“아, 예.”

별 관심 없는 내용이라 카밀라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가씨! 저쪽에 엄청나게 큰 온실이 있던데, 가 보실래요?”

“온실?”

카밀라가 관심을 보이자 도르만이 신이 나 말을 이었다.

“황실 분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긴 한데 사절단에겐 특별히 출입을 허락한대요.”

“흐음.”

솔직히 좀 따분하긴 했다. 즉위식이 아직 며칠 남은 상황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에드센 황태자야 여기저기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어 정신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은 무척 한가했다.

“거기나 가 보지 뭐.”

“네!”

* * *

“와…….”

돈지랄이다.

온실에 들어선 카밀라의 첫 감상이다. 이 끝없이 펼쳐진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저 수많은 꽃과 나무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

현대처럼 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게 다 마력으로 유지되는 것일 텐데.

밖은 눈보라가 치는 겨울인데 여기 온실 안에는 봄 여름 가을이 다 있었다.

“저기 낙엽도 있어요.”

낙엽뿐이냐. 저쪽에는 벚꽃도 떨어지고 있는데?

솔직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황실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아끼는 곳이라더니 그 값을 충분히 했다.

“전 마실 거라도 챙겨 올게요!”

여기서 오래 있을 생각인 듯 먹을 것을 챙겨 오겠다며 도르만이 다시 후다닥 온실을 벗어났다.

하긴, 너무 넓어서 대충 둘러보기만 해도 두 시간은 넘게 걸릴 듯했다. 홀로 남겨진 카밀라는 천천히 온실을 거닐었다.

“저건 폭포야?”

미니 폭포까지 만들어져 있는 온실에 카밀라는 다시 한번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저건 대체 뭘까?’

아까부터 자신의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 멀리서 봤을 땐 새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용?’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에 짧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다니는 건 분명 용이었다. 게다가 유령처럼 투명하다. 색은 있는데 뒷배경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뭐야? 귀신이야?’

이젠 하다 하다 용가리 귀신도 나오냐?

카밀라가 조금은 해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것들이 뚝 행동을 멈췄다.

[있잖아. 나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저 인간 우리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럼 쟤가 정령사라고? 대륙에 정령사는 다 없어진 거 아니었어?]

[저기 목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도 느껴지는데.]

[아! 저거 망할 것들의 기운이잖아! 신수!]

[어? 정말 그렇네. 늑대 놈의 기운이다.]

…정령? 저것들이 정령이라고?

세 마리의 용이 나누는 대화를 들은 카밀라의 얼굴에 더욱 황당함이 맺혔다. 이젠 살다 살다 정령도 보는 거야?

‘환장하겠네.’

그냥 튈까? 아직 긴가민가하는 것 같은데, 그냥 모른 척, 못 본 척 튀어도 되지 않을까?

[쟤한테 다른 신수의 기운도 느껴지는데?]

[뭐야? 여러 신수가 동시에 가까이한다는 건…….]

[자연과 아주 친화적인 존재라는 거지. 그건 우리를 알아볼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거고.]

…텄네.

“그래서 뭐야? 니들이 정령이라고?”

[히익!]

[쟤 우리 말도 들리나 봐!]

됐고. 그런 반응은 이제 너무 지겨우니까 패스.

“정령은 신수하고 뭔가 좀 다른가?”

[세상에! 어떻게 그런 것들과 우릴!]

[우린 평범한 정령이 아냐!]

“평범한 정령이 아니면?”

[난 봄을 다스리는 봄의 정령왕!]

[난 여름을 관리하는 여름의 정령왕.]

[난 가을을 사랑하는 가을의 정령왕.]

“…….”

어린이 히어로 영화 찍니? 색깔도 노란색, 초록색, 붉은색인 게 변신 아이템이라도 손에 쥐여 주고 싶다, 야.

“그래. 관리 잘해라.”

카밀라는 히어로 용들을 지나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우리랑 대화 좀 해!]

[인간이랑 대화해 보는 거 몇백 년 만이라고!]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

* *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혀 긴장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다시 만난 알트온 백작은 여전히 사람이 좋아 보였다.

“저희 공작님은 나름 이해심도 많으시고.”

콰앙!

-지금 이걸 보고서라고 작성했나!

“나름 인자하시며.”

-일은 이따위로 해 놓고 점심은 아주 맛있게 먹었나 봐? 입가에 기름기가 아주 잘잘 흐르는군.

“나름 공명정대하시죠.”

-변명 따위 듣기 싫으니 나가.

“그러니 마음 편히 만나십시오.”

“…….”

저기요? 지금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쪽은 안 들리시나요?

궁에 마련된 에스크라 공작의 집무실 앞에서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즉위식을 하루 앞둔 오늘에서야 마력석 거래에 대한 연락이 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번 거래의 책임자가 바로 에스크라 공작이었다.

똑똑.

“카이스 님, 카밀라 님을 모셔 왔습니다.”

“들어와.”

짧은 대답이 들려왔고 문을 열자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에 앉아 있는 에스크라 공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저러네.’

그가 또 자신을 말없이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을 그녀 역시 피하지 않았다. 그의 붉은빛이 도는 눈동자… 묘하게 거슬린다.

“앉지.”

한참 후에야 에스크라 공작이 자리를 권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탁자 위에 뭔가를 툭 내려놓았다. 자신이 작성해 온 계약서였다. 궁에 도착했을 때 알트온 백작을 통해 미리 전달했었다.

“우리가 제시한 금액보다 1.5배나 높더군.”

“그게 정상적인 가격입니다.”

“국가 간 거래에는 예외가 있다는 거 모르나?”

“저에겐 별 이득 없는 내용이라서요. 해당도 안 되고요.”

“자네도 나랏밥 먹고 사는데 협조해야지.”

“나랏밥이 딱히 맛이 없는지라 앞으로 다른 밥 먹을 생각입니다.”

“갑자기 다른 밥 먹으면 탈 나.”

“돈 뺏기고 배 아픈 것보다는 덜 아프지 않을까요?”

“…….”

“…….”

한참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동시에 멈칫했다.

뭐지? 이 티키타카는? 처음 대화를 나누는 건데 뭔가 술술 이어지는 기분이다.

“어쨌든 이 계약서대로 밀고 가겠다?”

“네.”

“싫다면?”

“제가 사람들에게 마력석을 팔면서 항상 갖고 있는 마인드가 있거든요.”

카밀라의 입가에 짙은 호선이 그려졌다.

“싫으면 사지 마.”

“푸웁!”

한쪽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알트온 백작이 차를 뿜었다.

“…라는 마음으로 늘 즐겁게 장사를 한답니다.”

마력석, 너 아니어도 살 사람 많거든? 큰손님이긴 한데 굳이 금액까지 낮춰서 팔 생각은 전혀 없단다.

페이블러 제국 황실 관계자들이 이곳으로 떠나기 전, 최대한 이들의 편의를 봐주고 조건을 맞춰 주라고 했지만 내가 왜?

“최악의 장사꾼이군.”

“그래도 돈은 잘 벌어요.”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펜을 들더니 두 장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돈 많이 벌어서 좋겠군.”

계약서 한 장을 건네받은 카밀라는 싱긋 웃으며 서류를 잘 챙겨 넣었다.

“나름 이해심이 많고 나름 인자하시며 나름 공명정대하신 공작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름?”

급히 에스크라 공작의 시선을 피하는 알트온 백작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카밀라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집무실을 떠났다.

타악.

“영애께서 참 야무지시네요.”

그렇게 카밀라가 떠나자 알트온 백작이 웃으며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서류들을 정리했다.

“야무지다 못해 겁을 상실한 것 같은데.”

“공작님 앞에서도 안 떠는 분은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내가 나름 이해심이 많고 나름 인자하고 나름 공명정대했나 보지.”

“하… 하하…….”

“…….”

“제 마음 아시죠?"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그를 향해 에스크라 공작은 들고 있던 서류를 집어 던졌다.

* * *

“공작과 한바탕했다던데?”

즉위식은 아주 화려하고 볼만했다. 페이블러 제국의 사절단으로서 상석에 자리를 배정받은 카밀라는 아주 흥미롭게 즉위식을 감상했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에드센 황태자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한바탕이라니요. 그저 계약을 했을 뿐이랍니다.”

작게 키득거리던 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덤빈 건가?”

“인자하고 이해심 많고 공명정대하다던데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 자신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그를 뒤로한 채 카밀라는 주변을 살폈다.

‘다른 나라에서도 사절단이 엄청 왔구나.’

사람들을 구경하던 그녀의 눈에 마침 에스크라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쩔쩔매긴 하네.’

오늘 황위에 오르는 이보다 에스크라 공작, 그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그런 것에 이미 익숙한 듯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그가 나름 대단해 보였다.

‘그나저나 오늘 날씨는 더 최악이잖아.’

눈보라는 약과였다는 듯, 바깥에는 말 그대로 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라시아 제국 사람들도 이런 날씨는 정말 오랜만인 듯 다들 혀를 내둘렀다.

‘어?’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카밀라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 추위 속에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채 창문에 붙어 서 있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쟤 뭐니?’

새하얀 머리에 푸른빛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즉위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응시했다. 황위에 오른 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냉기가 아주 뚝뚝 떨어졌다.

‘이번 내란으로 죽은 여자인가?’

그게 아니고서야 황제를 저리 한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잠시 후 카밀라는 다시 한번 의아한 눈빛이 되어야 했다.

‘쟤들은…….’

작은 생명체들이 그녀의 주변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에 온실에서 봤던 이들, 히어로 색색이 정령들이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쩔쩔매고 있었다.

‘어라? 왜 더 작아 보이지?’

온실에서 봤을 때보다 크기가 더 줄어든 정령들의 모습에 카밀라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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