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108)화 (108/215)

16584891210388.jpg 

“…점이요?”

안다! 안다고! 갑자기 얼마나 황당할까. 순간적으로 표정이 기괴해지는 중년 부부를 보며 카밀라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네. 제가 좀 봐 드려도 될까요?”

“죄송한데, 딱히 그런 것에 관심이 없…….”

“최근에 아주 슬픈 일을 당하셨네요.”

“예?”

“가족분이 돌아가셨군요.”

중년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자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카밀라는 카드를 몇 장 꺼내 들어 남자의 앞에 내밀었다.

“한 장만 뽑아 보시겠어요?”

몇 달 전에 일부러 제작한 카드다. 이시아로 살 때도 종종 썼던 방법으로, 귀신들의 부탁을 자연스럽게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다.

‘아이고, 내 팔자야.’

결국 여기서도 이걸 쓰네.

모양새는 타로카드처럼 보이지만 안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진짜로 점을 보는 것도 아니고, 난해한 그림으로 채워 놔야 대충 말이 맞으니까.

“여자… 따님이겠군요. 밤에 돌아가셨고요.”

“그, 그걸 어찌!”

“여기 동그란 물체 보이시죠? 달을 가리키는 겁니다.”

대충 이렇게 말이다. 낮에 죽었으면 저 달이 해가 되는 거고.

처음 뽑은 카드로 딸이 죽은 시간대를 맞히자 남자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망설이던 그가 다시 카드 한 장을 뽑았다.

“따님께서 원래 몸이 약하셨네요. 천식에, 빈혈에… 걸음도 잘 걷지 못하시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그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네, 결국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났지요. 이리될 줄 알았으면 좋아하는 디저트라도 맘껏 먹게 했을 텐데… 몸에 좋지 않다고…….”

자, 포석은 깔았고.

“다시 한 장 뽑아 보시겠어요?”

남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바로 카드를 뽑았다. 마침 뽑힌 카드는 새까만 배경에 날카로운 것들이 마구 그려져 있었다.

“따님은 병으로 죽은 게 아니네요.”

“…네?”

“살해당한 거예요.”

“무, 무슨!”

“여기 검 보이시죠? 이건 타인에 의한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이에게.”

귀신이 제 아버지께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다. 자신이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 범인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보, 그만 가요.”

바로 저 여자, 새어머니라는 것.

자신의 말에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중년 여자였다. 그녀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서둘러 남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정신이 없기는 남자도 마찬가지인 듯, 그는 여자의 손에 힘없이 끌려 나갔다. 그런 그를 향해 카밀라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죽은 따님의 책장을 살펴보세요. 원하시는 답을 찾으실 겁니다.”

죽은 뒤에도 방을 정리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곳에 딸이 남긴 일기장과 영상 구슬이 있었다. 딸이 죽기 전에 간신히 남긴 증거들.

새어머니가 딸이 먹는 약에 다른 뭔가를 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카밀라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며 급히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흐음.”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카밀라는 들고 있던 카드를 집어넣었다. 그러다 뭔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뒤를 쳐다보았는데.

‘젠장.’

어느새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 상황을 다들 지켜본 것 같았다.

‘에휴, 또 한동안 이상한 소문이 돌겠네.’

카밀라의 입에서 연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한동안 카페에는 안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크리스의 말에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현재 카페에 손님들이 아주 넘쳐났다. 입구에서 줄을 설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그들이 디저트만 즐기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만나려 한다는 거다.

“축하드립니다. 실력 좋은 점술가로 소문이 나신 거.”

크리스도 어이가 없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 여자 귀신의 한을 풀어 준 일로 소문이 쫙 퍼졌다. 디저트 카페 사장이 아주 용한 점쟁이라고 말이다. 젠장…….

그녀의 아버지는 결국 증거를 모두 찾았다. 딸을 죽인 범인뿐만 아니라 아내의 내연남까지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둘째 딸이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 그 내연남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이라는 사실도 알아냈고, 그들이 자신의 사업체까지 뺏으려고 했다는 것까지 다 밝혀냈다.

“장사는 아주 잘되더군요.”

“그렇지? 그게 다 내 덕 아니겠어? 하하하.”

“…….”

…알았어. 알았다고. 앞으로 주의한다니까.

크리스는 유독 자신이 이런 능력을 남들 앞에서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카드를 최대한 숨겨야 하는데, 자꾸 능력을 밖으로 내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카밀라 또한 그 말에 동의하기에 크리스의 나무라는 시선에 다른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앙스와 씨가 감사 인사와 함께 제안서를 보내왔습니다.”

“앙스와?”

그게 누군데? 뭔가 좀 익숙한 이름이긴 한데, 어디서 들었더라?

“앙스와 보석상에서 저희 제품을 팔고 싶다는군요.”

아! 앙스와! 페이블러 제국 곳곳에 보석상을 가진 그 앙스와?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잠깐, 잠깐! 설마……!’

이번에 내가 점을 봐준 그 중년 신사가 앙스와였어?

‘헐.’

돈 좀 있어 보이긴 했는데.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갑부였잖아?

“알고 하셨던 거 아닙니까? 이번에 그분 도와드린 거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크리스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당연히 알고 한 거지. 내가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을 막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응, 전혀 몰랐는데. 와! 이런 대박이!

“제안서 내용은 어때?”

“저희 쪽에 너무 유리한 조건들입니다.”

“그래?”

앙스와 보석상은 전통과 역사를 가진 아주 유명한 곳이다. 귀족 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라고나 할까?

고스트 상회의 마력석이야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지만, 보석 쪽으로는 아직 햇병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자신들에게 앙스와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 분명 호의였다.

“계약 진행해.”

“알겠습니다.”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카밀라는 콜을 외쳤다. 이제 우리 보석상도 전국적으로 놀게 되는 건가?

“그리고 이건 저희가 최종적으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응.”

크리스는 이어 다른 서류도 건넸다. 그리시아 황실에서 제시한 계약 내용 중 조율이 필요한 부분을 다시 작성한 것이었다.

이제 이걸 들고 가서 최종적으로 의견을 나눈 후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제가 따라가면 좋겠지만…….”

“나 없는 동안 여기 잘 부탁해.”

크리스를 데려가면 정말 편하긴 할 테지만, 자신이 없는 동안 이곳을 맡을 사람이 있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모레군요.”

“응.”

곧 그라시아 제국으로 출발한다.

* * *

찌르르릉!

“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교수가 교실을 후다닥 빠져나갔다.

하지만 교수가 사라진 후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교단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미치겠네.’

‘한동안 괜찮더니 또 왜 저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검은 기운을 풀풀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르시안이었다.

“씨… 왜 같이… 젠장…….”

아주 작게 읊조리는 소리였지만 다들 움찔움찔했다.

‘차라리 예전처럼 잠이라도 자든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요즘은 수업도 착실하게 잘 듣는다.

저런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수업은 빠지지 않으니, 결국 주위 사람들만 미칠 노릇이었다.

벌떡!

“……!”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르시안의 행동에 다들 흠칫했다. 그는 그런 학생들을 뒤로한 채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왜 저래?”

“아우, 목이 다 뻐근하다.”

그제야 교실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대체 뭔 일이래?”

“그러게.”

아르시안의 기분이 왜 저렇게 다운되어 있는 건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부럽네.”

“뭐?”

다만 유일하게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이, 페트로만이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저래 봤으면 좋겠군.”

그녀가 떠나는 게 싫다고, 나도 따라가고 싶다고 저 녀석처럼 대놓고 투정 좀 부려 봤으면 좋겠다.

“페트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아르시안이 사라진 곳을 보며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 * *

“아르시안?”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르시안이 교실로 들어섰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카밀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 일이야? 오늘 클럽 활동도 없…….”

스윽.

카밀라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순간 그의 손이 얼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가운 그의 손이 목을 가볍게 스쳤다.

“신수의 보석이다.”

“…신수의 보석?”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본 카밀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신수의 보석은 그녀도 잘 아는 물건이다.

신수는 일평생 단 한 번 자신의 힘을 담은 보석을 만들어 낸다. 일회성이긴 하지만 신수의 힘을 보석을 가진 이가 사용할 수 있었다.

“이걸 왜…….”

“영감한테 받았어.”

카밀라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신수라면 치를 떠는 녀석이 이걸 받아 왔다고? 다른 이도 아닌 세프라 공작에게서?

“이것도.”

이어 그의 손이 다시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차고 있던 귀걸이를 빼고 그가 들고 있던 검은 보석 귀걸이를 대신 끼워 줬다. 그의 차가운 손길이 닿는 귓불이 뜨겁게 느껴졌다.

“이게 다……! 아르시안!”

귀걸이에 이어 팔찌까지 채운 아르시안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자 카밀라가 급히 그를 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발찌까지 채운 뒤에야 그가 카밀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방어 마법이 걸려 있어. 잘 때도 빼지 마.”

“…….”

…저기요. 나 전쟁하러 가는 거 아닌데?

어제는 라비와 루드빌이 온갖 보호 장비와 무기들을 챙겨 준다고 난리더니. 전쟁터에 나가도 나 혼자 아주 멀쩡히 살아 돌아오겠는걸?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카밀라는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절대 안 뺄게.”

그제야 굳어 있던 아르시안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최근에 납치까지 당한 이를 굳이 사절단에 끼워 넣어 가야 하는 것인지 싶어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이번 사절단의 책임자가 다른 이도 아닌 에드센 황태자라는 사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