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106)화 (106/215)

16584891132759.jpg 

“얘기 들었나?”

“그라시아 제국?”

“새로운 황제가 곧 등극한다더군.”

“결국 2황자가 승리한 건가.”

세 공작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최근 관심사는 그라시아 제국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내전이 끝나고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일은 매우 중요한 소식이었으니까.

현재는 동맹 관계지만 오래전에는 대륙 패권을 두고 시도 때도 없이 싸우던 사이다. 페이블러 제국을 수호하는 가문으로서 그라시아 제국의 움직임에 촉을 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라시아 제국?’

오늘도 신수들의 볼모로 잡혀 있던 카밀라 역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라시아 제국이라면 그녀 또한 제법 아는 사실이 많았다. 원한 건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삶에서 늘 사람들이 이 얘기로 떠들어 댔으니까.

‘이번에도 바뀐 건 없네.’

2황자가 황제가 될 것이라는 걸 카밀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세 공작과 달리 자신과 별 상관 없는 일이었기에 관심을 조금도 두지 않았을 뿐.

‘아! 맞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라시아 제국과 자신이 더 이상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다는 거!

마력석! 그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니.

그것도 그럴 게 현재 자신의 소유인 저 최상급 마력석이 예전에는 제이빌런 공작의 것이었지 않은가.

“흐…….”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만간 마력석을 구매할 아주 큰 손님이 등장할 테니까.

“카밀라?”

헉!

자신도 모르게 물질 만능주의 웃음을 흘린 카밀라는 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안 그래도 아르시안이 딴 사람 앞에선 이런 표정 짓지 말라고 주의 줬는데.

“무슨 일 있니?”

세 공작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걸 본 카밀라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뇨, 킹이 귀여워서요.”

[규?]

카밀라는 제 옆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킹을 급히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우리 킹 참 귀엽죠?”

[규규!]

칭찬을 바로 알아들은 킹이 으스대듯 고개를 도도하게 드는 모습에 카밀라는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광산에서 또 새로운 광물이 나왔다던데.”

카밀라를 바라보는 제이빌런 공작의 눈이 번뜩였다.

“네, 안 그래도 세 분께 드릴 게 있어요.”

카밀라는 한쪽에 놓아둔 작은 상자 세 개를 집어 세 공작의 앞에 내려놓았다. 선물이라는 걸 알아챈 그들이 바로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이건…….”

남자들이 흔히 착용하는 묵직한 형태의 반지였다. 백금으로 이루어진 반지는 화려하진 않지만 디자인이 무척 섬세했다.

무엇보다 반지 중앙에 박혀 있는 보석.

“다이아몬드?”

분명 모양이나 빛깔은 다이아몬드인데.

“어떻게 이런 색이!”

아주 오묘한 색을 띠었다. 전체적으로는 푸른빛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색이라고나 할까? 절대 인공적으로 낼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블루 다이아몬드예요.”

바로 이번에 광산에서 나온 광물로 만든 반지였다. 대륙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세 사람이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이, 이게 정말 다이아몬드라고?”

“네, 색이 참 곱죠? 아주 간간이 채굴되는 중이라 VIP 고객들에게만 판매할 예정이에요.”

이건 거짓말이다. 채굴량이 일반 다이아몬드보다 적긴 해도 극소수라 칭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는 철저히 숨기기로 했다. 극소수, 희귀, 이런 단어가 붙으면 자연스럽게 구매욕과 금액이 올라가는 법이거든.

“…이게 이번에 나온 광물이라고?”

“네.”

제이빌런 공작은 반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블루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게 새삼 근소한 금액 차로 광산을 뺏긴 것이 떠오르는 듯했다.

“이거라도 줄까?”

그런 제이빌런 공작에게 소르펠 공작이 제가 들고 있던 반지를 스윽- 건넸다. 입가에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

제이빌런 공작이 다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 것도 줘?”

이어 들려오는 세프라 공작의 말에 제이빌런 공작의 표정이 더욱 무참히 일그러졌다. 소르펠 공작과 달리 악의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 * *

“황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역시.”

“연락이 올 줄 이미 아셨습니까?”

“뭐, 대충.”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크리스가 빠르게 한 가지 안건을 꺼내 들었다.

“그라시아 제국과의 마력석 교역 건… 맞지?”

“맞습니다.”

늘 무덤덤했던 그의 표정이 급격히 무너졌다. 아직 보고도 하지 않은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그녀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번 광산 경매 건으로 그녀가 가진 예지 능력을 직접 체험했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라시아 제국에서 저희 마력석을 구매하기를 원한답니다.”

카밀라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아주 큰손님이 지갑을 활짝 열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라시아 제국은 아주 추운 나라다. 당연히 난방 시설이 필수였고, 그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력석이 꼭 필요했다.

“가브엘 후작이 그라시아 쪽에 아주 열심히 작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랬겠지.”

그간의 판매처를 잃은 그가 살려면 다른 판매처를 찾아야 했을 것이고, 그런 후작에게 그라시아 제국만큼 좋은 곳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도 바보가 아니거든.”

질 낮은 마력석보다 최상급 마력석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이게 더 이익이고.”

마력석은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모품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했다.

질 낮은 마력석을 여러 번 바꾸는 것보다는 질 좋은 마력석을 장착해 오래 쓰는 게 그들의 입장에서도 이익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최상급, 최상급 하는 게 아니지.”

싸구려 열 개를 사서 쓰는 값과 최상급 하나를 사서 쓰는 값이 같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교체를 위한 인력 낭비도 줄어들 테니, 당연히 후자로 마음이 기울겠지.

“황실에서 최대한 빨리 답변을 달라고 했습니다.”

“흐음.”

소르펠 공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는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황실에서 자신을 마력석의 주인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황실에는 내가 직접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몇 가지 사항을 그녀에게 더 보고했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힐끔 옆으로 향했다. 한쪽에서 도르만이 차를 끓이고 있는 게 보였다. 늘 혼자 오시더니, 이번엔 왜 데려오셨지?

“크리스 님도 차 한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그러시군요. 아가씨, 차 드세요.”

“응.”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카밀라를 잠시 보던 크리스가 물었다.

“저분은 왜…….”

“카페에서 일 시키려고.”

“예에?”

그녀의 말에 먼저 반응한 건 크리스가 아니라 도르만이었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카페라니요?”

그도 처음 듣는 말인 듯, 도르만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의 존재 가치를 거기서라도 열심히 증명해 봐.”

“무슨……! 전 지금도 충분히 제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걸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저, 저 청소도 열심히 하고.”

“요즘은 다른 고용인들이 더 열심히 하던데.”

“차도 잘 끓이고.”

“내가 직접 끓인 차가 더 맛있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데린이 말한 대로 끓인 차가 훨씬 맛있지.

“모, 목욕 시중도…….”

“죽을래?”

잊고 싶은 기억을 마구 꺼내 드네. 어?

“너무하세요!”

뭐라니?

“어쨌든 오늘부터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는 카페에서 일하는 걸로 하자, 도르만.”

최근 입소문이 돌아 손님이 꽤 늘었다. 처음에야 살짝 바람잡이가 필요했지만, 디저트가 워낙 맛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문이 난 것이다.

일손이 부족하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라일라의 모습에 집에서 놀고 있는 인력을 보충하기로 했다.

“거기서도 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못하면요?”

“궁금해?”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카밀라의 모습에 도르만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내가 최근에 산 구두들이 유독 굽이 날카롭더라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증명해 보겠습니다!”

“응, 그래야 할 거야. 지금 당장 카페로 가도록.”

“넵!”

후다닥 방을 나서는 도르만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카밀라는 쯧 혀를 찼다.

최근 다른 고용인들이 예전과 달리 자신의 시중을 잘 들자 은근 농땡이를 피우는 그다. 조금 전에도 나무 그늘 아래서 자고 있던 걸 이곳으로 끌고 왔다.

‘딴 사람은 몰라도 네가 노는 꼴은 내가 못 보지.’

카밀라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남은 서류들을 빠르게 확인해 나갔다.

그 모든 상황을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크리스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 * *

“사절단이요?”

“그래.”

황실에다 바로 답변을 올렸다. 거래에 응하겠다고. 그러자 소르펠 공작을 통해 또 다른 제안을 해 왔다.

“저쪽에서 널 한 번 직접 만나 보고 싶다는구나.”

그라시아 제국에서 고스트 상회의 주인인 자신을 직접 만나 거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단다.

“그래서 절 사절단에…….”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맞아 페이블러 제국에서도 축하 사절단을 꾸려 보내기로 했다.

‘이건 늘 있었던 일이라 별로 놀랍지 않아.’

다만 그 사절단에 자신이 끼게 됐다는 사실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나는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소르펠 공작은 이번 일이 마뜩잖은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카밀라가 그 먼 곳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대리인을 세우는 것도 방법이지.”

“그렇긴 한데…….”

일반적인 거래라면 그녀 또한 소르펠 공작의 의견에 찬성했을 것이다. 크리스나 다른 대리인을 보내 거래를 마무리 지으면 간단한 일이니까.

“황실이잖아요.”

다른 곳도 아닌 그라시아 제국 황실에서 직접 얼굴을 보고 거래하자는데 아무리 배짱 좋은 그녀라도 이를 거절하기란 무척 애매했다.

“가는 걸로 하죠.”

“야! 거기가 어디라고 가!”

아버지에게 대화를 맡기고 한쪽에 물러나 있던 라비가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입은 닫고 있지만 루드빌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