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지만 넌 천재야.”
“카밀라도 참.”
요리사 유령 페롤에게도 줘 봤는데, 이런 디저트는 처음이라며 아주 흥분해서 난리였다.
다만, 문제는.
“손님이 없어서 아쉽네.”
문을 연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았거늘, 운도 없다.
가게 인테리어도 그렇고 주문 형식, 메뉴까지. 다 낯설기 짝이 없다 보니 선뜻 들어와 주문하는 이가 없었다.
“우리 가게 디저트들 정말 맛있는데…….”
“맛있지.”
“이러다 우리 망하면 어쩌죠?”
라일라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주변에 있던 다른 직원들도 덩달아 고개를 푹 숙였다.
“걱정 마. 안 망해. 내가 조치를 좀 취했거든.”
“조치요?”
딸랑- 딸랑-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가게 문이 열리며 익숙한 이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
그들을 발견한 라일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두 분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바로 페트로와 아르시안이었다.
“카밀라가 불러서 왔습니다.”
“여긴 왜 오라고 한 거야?”
그들의 등장에 직원들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페트로도 그렇고 아르시안 역시 겉은 아주 번지르르하니까.
‘내가 원한 게 바로 저런 반응이거든.’
두 사람을 바람잡이로 쓸 생각이다. 저 눈에 확 띄는 외모 좀 뽑아 먹기로 했다. 일단 손님을 끌고 봐야 하니까.
“라일라, 저 두 사람 저기 창가 자리로 안내해.”
밖에서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자리로 그들을 안내한 뒤, 마카롱을 비롯해 신제품 몇 가지를 챙겨 직접 날랐다.
타악!
“맛있게 드세요.”
테이블에 놓인 것들을 본 두 사람이 한동안 말이 없다.
“디저트네요.”
“…지금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어.”
“야! 이딴 단걸……!”
“먹어.”
“…….”
“먹기 싫으면 먹는 시늉이라도 해.”
얼굴에는 영업용 미소가 가득했지만 눈빛은 아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먹기 싫다는 의사를 한 번 더 표하는 순간 바로 아웃당할 것을 감지한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웃어야지.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면서 그리 죽상을 하고 있으면 되겠니? 남의 가게 망하는 꼴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다 하다 표정까지 지적당하자 아르시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페트로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뭡니까?”
페트로가 먼저 디저트에 관심을 보였다.
마카롱도 그렇고 예쁜 유리그릇에 담겨 있는 디저트도 처음 보는 형태였다. 과일과 아이스크림이 잔뜩 담겨 있는 것이 차가운 냉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여름에는 빙수죠.”
“빙수요?”
“특별히 시럽과 연유는 최대한 뺐으니 먹어 보세요.”
이 빙수 기계를 만드느라 고생 좀 했다.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가 그리 흔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한 공방에서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 줬다. 우유를 얼려 갈아 봤더니 나름 고운 입자가 갈려 나왔다.
“얼음이네요.”
빙수를 한입 먹은 페트로가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아르시안은 달콤한 과일도 싫은 듯 얼음을 살살 긁어 먹는 시늉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카페는 왜 차리신 겁니까?”
고스트 상회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쇼핑 후에는 디저트니까요.”
페트로의 물음에 카밀라는 간단히 대답했다.
정말로 카페를 차린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쇼핑 후 많이 찾는 곳이 카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에 고스트 상회 바로 옆에다 카페를 차렸다. 거기서 쇼핑하고 나온 이들이 자연스럽게 카페에 들를 수 있도록 말이다.
“누가 그래? 쇼핑 후에 이딴 걸 먹는다고. 난 절대 안 먹어.”
“쇼핑은 해 봤고?”
“…….”
“디저트나 먹어.”
슬쩍 시선을 피하는 그를 보며 카밀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네 기준으로 생각했다간 가게들 다 망해!
“어쨌든 협조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마침 가게 앞을 지나가던 몇몇 영애들이 창가에 앉아 있는 아르시안과 페트로를 알아보곤 가던 길을 멈췄다.
그녀들과 눈이 마주친 페트로의 입가에 그 특유의 온화한 미소가 순식간에 피어올랐다.
‘오.’
그렇지 않아도 새로 생긴 가게를 힐끔거리던 이들이 그 웃음에 이끌리듯, 곧바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딸랑-
“어서 오세요.”
역시 바람잡이 하나는 잘 구한 것 같단 말이야.
‘…한 사람은 실패지만.’
여전히 음식을 깨작거리며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있는 아르시안의 모습에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이리 줘 봐.”
카밀라가 아르시안의 스푼을 뺏어 들었다. 그러곤 대신 빙수 한 스푼을 크게 떠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그녀는 얼굴 근육을 최대한 사용해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대사 따윈 필요 없었다. 표정으로 다 말했는걸, 뭐.
그런 그녀를 아르시안과 페트로는 조금은 멍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분명 방금까지 자신들이 먹고 있던 건데, 왜 저게 갑자기 확 먹고 싶어지지?
‘그야 내가 CF 퀸이었으니까.’
내 광고로 매출 올린 회사가 어디 한둘인 줄 알아?
“저, 저희도 저거 주세요!”
“저건 뭐예요? 나도 저거 먹을래.”
반응은 바로 왔다. 가게에 막 들어선 손님들이 카밀라가 먹는 모습을 보곤 똑같은 메뉴를 달라고 주문을 넣었다.
“봤지? 이렇게 하라고, 이렇게.”
카밀라는 스푼을 다시 아르시안에게 쥐여 주며 자리를 떴다.
“…….”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손에 들린 스푼을 아르시안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빙수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타악.
“뭐 하는 짓이야?”
하지만 그 손을 낚아채는 페트로로 인해 아르시안은 도중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 스푼 하나 새로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가 아르시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빙그레 웃으며 외쳤다.
“뭐 하는 거냐고! 죽을래?”
“설마 남이 쓴 스푼을 그대로 다시 쓸 생각은 아니겠지?”
“…….”
“조용히 내려놔.”
“씨…….”
작게 욕설을 내뱉은 아르시안이 결국 스푼을 도로 내려놓았다.
한바탕하고 싶었지만, 가게에서 싸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을 마구 날리고 있는 카밀라의 모습이 보여 결국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스푼 여기 있습니다.”
이내 스푼을 바꿔 가는 직원을 보며 아르시안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고 페트로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 * *
“어?”
가게를 둘러보고 돌아온 카밀라는 저택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에는 소르펠 공작인가 했지만 그가 아니었다.
“저 사람은…….”
익히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벨라크라고 했던가? 저번에 사냥 대회에서도 잠깐 만났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다가섰다가 아르시안에게 밟히고 바로 도망치듯 사라졌지만 말이다.
“아! 카밀라 영애! 이제 오십니까?”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섰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여, 영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 왜?”
“전할 말이 있어서요.”
언제부터 기다린 걸까? 이 더운 날 제법 밖에 오래 있었던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기다린 거지?
궁금한 마음에 그를 빤히 바라보자 벨라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게…….”
어색함과 긴장감이 그대로 담긴 표정으로 그가 뒤로 감추고 있던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번에 도와주신 것에 대한 답례입니다.”
장미꽃이었다. 그것도 아주 새빨간 장미꽃.
“그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얼굴을 붉힌 채 꽃을 내미는 남자를 바라보는 카밀라의 표정이 조금 멍해졌다. 기분이 묘했다.
‘처음인데?’
남자에게 이렇게 꽃을 받아 본 거.
물론 시상식이나 행사장에서, 혹은 팬들에게서 하루가 멀다 하고 꽃다발을 전해 받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성적인 호감이 담긴 꽃다발을 받아 본 건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다.
“카, 카밀라 영애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꽃다발을 앞으로 내민 그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카밀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뭐, 꽃다발 정도야.
휙!
‘어라?’
누군가 그녀를 대신해 꽃다발을 빠르게 낚아챘다. 카밀라의 눈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우리 집에도 장미꽃밭 있는데.”
“오라비?”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인지, 라비가 꽃다발을 대신 든 채 벨라크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라비의 등장에 당황한 벨라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답례라고? 무슨 답례가 달랑 꽃다발 하나로 끝이야?”
“아뇨! 꽃을 드리고 식사 대접도 하려고…….”
“식사? 우리 집 주방장이 제국 최고의 요리사인 거 몰라? 소르펠가의 주방장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아니, 그게…….”
“거기가 어딘데? 백 프로 자신할 수 있어?”
“네?”
“백 프로 자신할 수 있냐고.”
“아, 아뇨.”
“그럼 백 프로 자신할 수 있을 때 다시 와.”
“예?”
“썩 꺼지라는 말이지.”
“네, 네!”
결국 오늘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급히 그 자리를 도망치듯 사라지는 벨라크였다.
“뭐야? 고작 이 정도에 진짜 그냥 가는 거야? 실없는 놈이네.”
“…오라비.”
“왜?”
“지금 뭐 한 거야?”
“벌레 퇴치.”
“뭐?”
“그 녀석에게 꼭 전해라. 내가 한 건 했다고.”
“뭔 소리야?”
그 녀석? 한 건?
“마력석 하나 벌었군.”
“뭔 소리냐니까.”
마력석? 여기서 마력석이 왜 나와?
“그보다 이 꽃은 어쩔 거야? 버려?”
“버리긴 왜 버려. 아깝게.”
카밀라는 장미 꽃다발을 라비에게서 도로 받으려 했다.
스윽.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보다 먼저 꽃다발을 낚아채는 이가 있었다.
“버려.”
“…오라버니?”
루드빌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뒤로 획 던졌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그의 부관이 검을 휘둘러 아주 꽃다발을 난도질해 댔다. 루드빌은 그 모습을 아주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다들 왜 이러는 건데?’
왜 괜한 꽃에다 화풀이야!
길가에 흐트러진 장미꽃을 보며 카밀라는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