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시안이?”
아마도 리오 일로 찾아온 거겠지?
이미 소르펠 공작이 아이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하루 사이 쫙 퍼졌다.
세프라가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을 테니, 아르시안 역시 리오가 입양이 아니라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분명하다.
“응접실로 모셨습니다.”
“알았어.”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아르시안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컥!
“아르시……!”
빠르게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그대로 입을 멍하니 벌렸다.
“누나!”
그곳에 아르시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리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 바로 리오였다.
* * *
“으… 으음.”
토닥토닥.
칭얼거리는 아이의 가슴을 가볍게 토닥였다. 하루 사이 많은 일을 겪어 힘들었는지, 아이는 씻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아이를 카밀라는 한참 말없이 바라봤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다. 별다른 접점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정이 들어 버린 걸까? 아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무척 초조함을 느꼈다.
“에휴.”
이래서 어리고 약한 건 싫다니까.
‘너무 쉽게 파고들거든.’
[규우?]
어깨에 올라와 앉아 있는 신수 킹이 한숨을 내쉬는 카밀라의 얼굴 살짝 핥았다. 결국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킹을 아이의 옆에 내려놓았다.
“잘 지키고 있어.”
[규!]
알겠다는 듯 힘차게 대답하는 킹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타악.
“꼬맹이는 자?”
“응.”
그녀가 나오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르시안이 다가섰다. 바람도 쐴 겸 카밀라는 그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어떻게 된 거야?”
잠시 후 정원 벤치에 앉은 카밀라는 옆에 따라 앉는 그를 보며 바로 질문을 던졌다. 묻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다.
“리오, 어떻게 찾았어?”
아직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 험한 일을 당한 아이를 챙기는 게 우선이었기에 물을 정신이 없었다.
“추적 마법을 걸어 뒀었어.”
“추적 마법?”
“응.”
아니, 왜?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그럼?”
“그냥 대비 좀 했어.”
아르시안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설명했다.
가짜 라니아 사건이 있은 후 행한 일이었다. 카밀라가 사라진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에게 추적 마법을 미리 걸어 두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같은 일이 또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나한테도 추적 마법을 걸어 뒀다고?”
“어.”
거는 김에 그녀와 관련된 일부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적 마법을 걸었다.
“내 주변 사람? 대체 얼마나 많이…….”
“라일라 정도가 단데?”
“라일라?”
“네 주변 사람이라고 해 봐야 걔밖에 없잖아.”
“…….”
짜증 나. 왜 이런 말에 매번 반박을 못 할까.
“네 가족들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을 납치하려 한 이들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니까.”
마스터나 마탑의 수제자를 건드리는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리오는 왜?”
가족도 아니고 딱히 아르시안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거야 네가…….”
“나?”
“…됐다.”
아르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리오, 저 아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정말 모르는 건가?
보육원에 갈 때면 어느새 그녀의 시선이 리오에게 가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눈빛이 샘이 날 정도로 따뜻했다.
겉으론 툴툴거리지만 아이의 사소한 청을 한 번도 거절한 적도 없었다.
‘그래 놓곤 뭐?’
리오한테는 왜 그랬냐고? 아이가 입양되었다는 말에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갔던 건 그새 잊었나 보지?
아이에게 추적 마법을 걸어 놓은 걸 진심으로 다행으로 여겼다.
“아이가 끌려간 곳은 어디였어?”
“지하 감옥.”
“…감옥?”
추적 마법으로 쫓아간 곳은 제법 규모가 있는 지하 감옥이었다.
“리오만이 아니었어.”
지하 감옥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수십 명이 한 곳에 함께 갇혀 있었다.
“다들 입양되었다가 끌려온 거였어.”
“전부 다?”
“응.”
대충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보육원에서 정기적으로 아이를 빼내 가고 있었던 건가?
“거기에 아이들만 있었어?”
“지키는 놈들이 좀 있었지.”
“그들은?”
“죽었어.”
“뭐?”
“미리 말하지만 내가 죽인 거 아냐.”
아르시안은 이미 카밀라에게서 가짜 라니아와 그녀가 속해 있던 조직에 대해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영혼을 바꿔치기하는 놈들이 있다고.
그에 아이를 납치한 놈들을 제대로 심문하려고 했는데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다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거기가 아이들을 모으는 중간 지점이라는 사실만 알아냈어.”
아르시안이 찾아갔던 지하 감옥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조금 후회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아이들이 최종 장소까지 갈 때까지 기다릴 것을…….
하지만 리오가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다른 생각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적들을 바로 제압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바로 안아 들었다.
‘형! 으… 으아앙!’
갑작스러운 상황에 처음엔 부르르 몸을 떨던 아이가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곤 목을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적들의 본거지를 찾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그 모습을 보니 바로 나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지금 처리 중이야.”
적들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본 아르시안은 근처 경비대에 바로 신고했다.
세프라가의 후계자인 그의 등장에 경비대는 다른 일은 다 제쳐 두고 이번 일을 집중적으로 처리 중이었다.
“그 아이들도 곧 각자 있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아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리오를 데리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거다.
“하아.”
모든 얘기를 다 들은 카밀라의 입에서 긴 숨이 토해졌다.
“추적 마법이라.”
혼잣말처럼 되뇌는 그녀의 작은 음성에 아르시안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본인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마법을 건 것이 살짝 걸렸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미리 말하지 않은 건…….”
“아르시안.”
“알았어! 다른 사람한테 걸어 놓은 추적 마법은 다 지울게. 하지만 너한테 걸어 둔 건……!”
“고마워.”
“어?”
“고생했어.”
그가 추적 마법을 걸어 두지 않았으면 정말 어쩔 뻔했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리오를 찾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겠지.
‘어쩌면…….’
아이를 영영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라니아와 데니스처럼 다른 영이 들어가 버린 아이와 마주하게 됐을지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아.”
다른 건 모르겠다. 적들의 본거지를 알아내지 못한 것도 상관없고 그들이 누군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아이가, 리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질 거야.”
감사 인사를 듣는 게 어색한 듯 그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이들을 납치한 자들의 조사도 계속될 거고.”
“응.”
“입양에 대한 절차도 좀 더 까다로워지겠지.”
“그래.”
“그들의 목적이 뭔…….”
스륵.
아르시안의 말이 순간 멈췄다. 자신의 어깨에 느껴지는 작은 무게감에.
“…….”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 나른하더라니,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든 그녀를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정말 아무 데서나 잘 자네.
‘방으로 데려가야 하나?’
새근새근 잠이 든 그녀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아르시안은 그녀가 좀 더 편히 기댈 수 있게 살짝 자세를 낮추었다.
‘이 정도 보상은 괜찮겠지.’
아르시안은 잠시 이 시간을 그냥 즐기기로 했다.
* * *
“세프라 가문이 움직였다지.”
“이번에 아이들을 구출한 자가 세프라 공작의 아들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공간에 흐릿한 불빛 하나만이 존재했다.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무릎을 꿇은 남자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신관 다니엘, 최근 그가 주도한 일들이 모두 어긋난 상황인지라 그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 아이에게 추적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을 짐작한 이가 있다는 말이군.”
“죄송합니다.”
어둠 속의 음성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분했지만, 다니엘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재료 수급이 어려워지겠어.”
“아무래도…….”
이번 일로 인해 보육원 아이들의 입양 절차가 무척 까다로워졌다. 세 공작가의 주도로 모든 보육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들어갔고 다들 숨을 죽이고 있는 상태다.
“소르펠가 잠입에도 실패했다던데.”
“송구합니다.”
라니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신관 다니엘의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다. 그 결과가 너무도 허무하게 끝나 버려 그 또한 기가 막혔다.
교인 중 나름 처세술이 좋은 이를 골라 그 몸에 집어넣었던 건데…….
‘쯧.’
한심하게 바로 들켜 버리다니.
자신에게 제대로 허락도 받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해 카밀라를 잡아들이더니 그녀 행세를 하다 모든 일을 망쳐 버리지 않았는가.
아마도 계속되는 실패에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다. 뭔가 스스로 성과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 같은데,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한동안 몸을 사리는 게 좋겠군.”
“하지만…….”
“잡힐 꼬리가 없으면 다들 곧 조용해지겠지.”
“신도들의 반발이 클 겁니다.”
“흐음.”
“특히 곧 새로운 생을 얻어야 할 신도들의 반발이…….”
“살고 싶으면 알아서들 재료를 준비해 오라고 하게. 교에서는 더 이상 재료를 수급해 주지 않을 것이니.”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다시 고개를 깊이 숙였고 곧 어둠 속에서도 더 이상 들려오는 목소리가 없었다.
* * *
“정말 괜찮겠니?”
소르펠 공작이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뭐가요?”
“아이 말이다.”
그제야 카밀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녀석 집이라니.”
그의 입에서 연신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네가 원한다면 아이를 데리고 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