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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98)화 (9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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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그녀를 향해 아르시안과 페트로가 동시에 다가섰다.

“말해.”

“카밀라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 난… 무슨 말인지 전혀……!”

스릉!

“꺄악!”

시리도록 차가운 검의 감촉이 다시 목에서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카밀라, 어디 있죠?”

“몰라! 모른다고! 당신들이 하는 말! 하나도 모르겠어!”

그녀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악을 썼다.

휘익!

“크윽!”

그 순간 그녀의 목을 그대로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정말 몰라?”

“으… 으윽……!”

아르시안이었다. 죽일 듯한 살기가 그들의 주변을 가득 에워쌌다. 그 모습을 본 페트로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말렸다.

“일단 소르펠가로 데리고 가지.”

악을 쓰는 그녀를 보니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우리끼리 결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소르펠가에서는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그곳으로 그녀를 데려가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섰다.

“…….”

잠시 말이 없던 아르시안이 이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이 순식간에 빛에 휩싸이며 그곳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꺄아악!”

“아가씨!”

“이, 이게 무슨……!”

목에 검이 겨누어진 채 끌려 들어오는 카밀라를 본 소르펠가의 사람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녀를 붙잡고 있는 이가 바로 아르시안이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뒤에는 페트로까지 검을 뽑아 든 채 서 있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소란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집사 루브였다.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말을 건넸다.

“당장 그 손 놓으십시오.”

아르시안은 그런 그를 조금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미쳐 날뛰는 자신을 향해 할 말 다 하는 이는 매우 오랜만이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그때 공간을 울리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감히 내 집에서 내 딸을 겁박하고 있다니.”

소르펠 공작이었다. 그의 등장만으로 주변 공기가 확 달라졌다.

찌릿찌릿, 차가운 얼음이 살을 파고드는 듯한 기운이 홀 안을 가득 채웠다. 그가 내뿜는 기운에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게 카밀라로 보이십니까?”

“뭐?”

그 무거운 침묵을 깬 건 바로 아르시안이었다.

“아버지! 살려 주세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더 길어지기 전에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 흐윽!”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카밀라의 모습에 소르펠 공작의 기운이 더욱 난폭해졌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르시안의 손에 붙잡힌 카밀라의 모습이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아버지! 무슨……!”

그 순간 소식을 들은 라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밀라!”

그는 아르시안의 손에 붙잡혀 있는 카밀라를 보곤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저 새끼가 미쳤나!

“지금 내 동생한테 뭐 하는 거야!”

“오라버니…….”

라비의 등장에 그녀가 더욱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살려 줘… 제발…….”

급히 그녀에게 다가서던 라비의 걸음이 순간 멈칫했다.

‘뭐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껄끄러운 기분이 훅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좀 닥쳐 줄래?”

그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저벅.

“내 얼굴로 저 인간에게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 기분 나쁘니까.”

“……!”

연신 혀를 차며 천천히 다가서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똑같았다. 다들 멍하니 입을 버린 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카… 카밀라?”

바로 또 한 명의 카밀라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 * *

“네가 여기 왜 있어?”

지하 공간에 갇혀 있던 카밀라는 자기 집처럼 태연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 그냥 갈까.”

너무도 뜻밖의 이였으니까. 바로 사신 하벨이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무심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심지어 가짜 데니스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반가워서 그러지, 반가워서!”

정말로 그대로 다시 밖으로 향하려는 하벨을 카밀라가 급히 불러 세웠다.

굉장히 반갑다는 듯 연신 아부성 웃음을 날리는 카밀라의 모습에 짧게 혀를 찬 그는 의자에 묶여 있는 그녀를 바로 풀어 줬다.

이내 그의 시선이 한쪽에 여전히 멍하니 넋을 잃고 서 있는 물귀신 베스에게 향했다.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서다 그걸 본 카밀라는 급히 하벨의 시선을 차단했다.

“설마 지금 저 귀신 데려가려고 온 거야?”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딱히 사신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베스는 아직 제 자식이 어찌 됐는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다. 이대로 끌려가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겸사겸사.”

“뭐?”

“빚 갚으러 온 거다.”

“빚?”

“이것으로 네가 도와준 일에 대한 보답은 끝난 걸로 하지.”

전에 원장 할머니를 설득한 일에 대한 보답을 말하는 듯했다. 나중에 뭔가 좀 더 큰 걸로 받아 내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베스는? 지금 바로 베스를 데려가는 거야?”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하나만 묻자.”

그의 말대로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긴 한데, 일단 그녀는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사신이니까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저것들 뭐야?”

카밀라는 지하 공간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이지를 상실한 아이 귀신이 붙어 있었다.

“명부에 없는 자.”

“뭐?”

“얼마 전부터 명부에 없는 자들의 영이 속출하고 있지.”

명부에 없다는 건 자신의 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라는 거다. 이러면 사신이 눈으로 직접 발견하기 전까지 영을 찾지도, 데려가지도 못한다.

“반면 명부에 적힌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하벨의 말에 카밀라는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죽어야 할 자의 영과 살아 있어야 할 자의 영이 바뀌었다는 거다.

애매했던 퍼즐 하나가 맞춰진 것 좋은데… 기분은 더 더러웠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의 몸을 뺏었다는 거네.”

계속 궁금했다. 라니아와 저 소년의 몸을 차지한 것들이 대체 누군지 말이다.

혹 빙의술을 전문적으로 쓰는 단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실상은 좀 더 복잡한 것 같았다.

“쟤들은 왜 이지가 없는 거야?”

카밀라는 소년의 옆에 붙어 있는 아이 귀신을 가리켰다.

“강제로 몸을 뺏겨서다.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영이 억지로 빠져나오면서 이지가 몸에 묶여 버린 거지.”

“그럼 혹시 영을 다시 집어넣으면?”

저 몸을 차지한 가짜 영을 빼내고 진짜 영을 다시 넣으면?

그녀의 눈이 순간 눈에 띄게 반짝거렸다. 혹 아이와 라니아를 다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본 주인이 다시 들어가면 되지 않아?”

“아니.”

“왜?”

명부에도 안 적혀 있다며!

카밀라의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죽은 것도 아니고 강제로 영이 빠져나온 거니까 다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영과 육의 실이 이미 끊긴 상태다. 죽은 것과 다름없다. 명부에 이름만 안 올라가 있을 뿐이지.”

“젠장…….”

카밀라는 으득 이를 갈았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그녀의 시선이 베스에게 향했다. 잠시 희망으로 반짝였던 베스의 눈은 다시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면 저 새끼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놔두진 않을 거 아냐.”

소년을 바라보는 카밀라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 어린아이의 몸을 차지한 썩을 놈을 어떻게 씹어 먹어야 속이 시원해질까.

“진명.”

“진명? 진짜 이름?”

“부르면 된다.”

“저 새끼 진짜 이름을 알아내려면 어떻게,”

“이미 안다.”

알브로 헤리슨.

후우욱!

[으… 으……. 뭐, 뭐야!]

하벨의 입에서 한 이름이 내뱉어지는 순간 쓰러져 있던 소년의 몸에서 스르륵 영이 빠져나왔다. 60대 후반의 노인이었다.

“저 새끼가…….”

“그래, 저 새ㄲ… 저 인간을 계속 쫓고 있었지. 원래 내 담당이었다.”

명부에 적혀 있는 사라진 영을 찾아다녔던 일이 제법 힘들었던 듯 무심해 보이던 하벨의 눈빛에 처음으로 스산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이, 이게 뭐야! 안 돼! 아, 안 돼!]

소년의 몸에서 벗어난 노인은 절규했다. 자신이 다시 죽었다는 걸 안 노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거기에 반응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친… 이 미친 노인네!]

아니, 한 명 있었다.

[너 같은 게! 너 같은 것 때문에 내 아들이!]

[커… 커억! 뭐, 뭐 하는 거야! 으… 으윽!]

베스였다. 그녀는 노인의 목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분노를 모두 토해냈다.

카밀라는 그런 그녀를 못 본 척했다. 오히려 속으로 열심히 응원의 메시지를 날렸다. 머리털까지 다 뽑아 버리라고.

그건 하벨 역시 마찬가지인 듯 두 영이 싸우는 곳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하라며 베스에게 각목까지 쥐여줬다.

“뭐야, 그럼? 날 도와주러 온 게 아니라 저거 잡으러 온 거였어? 그래 놓곤 저번 일 퉁 치자고 한 거야? 완전 치사하잖… 지금 뭐 해?"

끈을 다시 왜 주워?

“앉아라.”

“어?”

“다시 의자에 묶어 줄 테니 앉아라.”

“세상에 감히 누가 사신한테 치사하다고 했대? 늘 바쁜 사신님께서 이렇게 직접 끈까지 풀어 주셨는데 말이야. 그치?”

“…….”

아주 빠른 태세 전환에 하벨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왜? 내가 이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하나도 안 쪽팔리거든! 안 쪽팔리다고! …젠장.

[여기, 어디?]

그때 어린아이의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까지 소년의 곁에서 이지를 잃은 채 붙어 있던 아이 귀신이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데니스.]

노인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던 베스가 그 소리에 모든 행동을 멈췄다.

[…엄마?]

낯선 공간에 두려움을 느끼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의 얼굴에 너무도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엄마! 나 데리러 온 거야?]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베스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응, 데리러 왔어.]

그 말에 아이가 더욱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그러고는 이내 베스의 품에 꼭 안겼다.

[늦어서… 너무 많이 늦어서 엄마가 미안해.]

결국 아이를 안은 베스가 흐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카밀라의 입에서도 이내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와 엄마가 다시 만난 건 좋은 일이긴 한데, 이걸 잘됐다고 해야 할지.

“하아.”

당장 저 미친 노인네를 잘근잘근 밟아 주고 싶었지만, 영이 아닌 자신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짜증 났다.

“너에게 한 가지를 더 주도록 하지.”

“응?”

그 순간 하벨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이걸로 정말 저번 일에 대한 보답은 끝이다.”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제법 유용한 선물 하나를 안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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