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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93)화 (9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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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물귀신 베스

“후원?”

“네.”

“내 이름으로?”

“그렇습니다.”

소르펠 공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런 큰 금액을 대체 누가…….”

집사 루브가 방금 가지고 온 소식은 그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총 열세 곳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소르펠 가문의 이름으로 막대한 금액을 곳곳에 후원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흐음.”

그 또한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누군가 아예 재단까지 만들어 후원하고 있단다.

“알아봤나.”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브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고스트 상회였습니다.”

“누구?”

고스트 상회?

“내가 아는 그 고스트?”

“네, 맞습니다.”

“그자가 왜?”

고스트 상회는 소르펠 공작이 최근 아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곳이다. 아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현재 제국 안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쓸어 모으고 있는 곳이니까.

무엇보다 고스트 상회, 그 주인에 대해 다들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다.

‘세프라 공작과 대체 무슨 사이지?’

고스트 상회의 주인이 대체 누구기에 세프라 공작이 그 큰 사업을 그냥 넘겨준 것인지 너무도 의아했다.

“크리스 밀러라고 했지.”

세프라 공작에게 슬쩍 그자에 대한 정보를 얻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답지 않게 계속 딴청만 피우는 그의 모습에 궁금증만 더욱 증폭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이름이 왜 튀어나오느냔 말이다.

“이것 좀 보시죠.”

입가에 짓고 있던 미소를 여전히 지우지 않은 채 루브가 들고 있던 서류 몇 장을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

“전에 카밀라 아가씨께 드렸던 광산, 기억나십니까?”

“광산?”

당연히 기억한다. 신수를 찾아온 공로로 뭐든 주겠다는 자신의 말에 카밀라는 쓸모없는 광산 하나를 받아 갔다.

“그곳에서 채굴된 광물량과 그 광물이 움직인 루트입니다.”

“갑자기 거긴 왜?”

카밀라에게 광산을 선물로 준 후 거기에 대한 모든 권한을 그녀에게 완전히 넘긴 상태였다. 혹 카밀라가 부담스러워할까, 그 아이가 원하기 전까지 그 어떤 간섭도 하지 말라고 루브에게도 명을 내려놓은 상태다.

“그 아이가 뭔가 도움을 청했나?”

결국 광산의 쓸모를 찾지 못하고 처치 곤란에 처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안 그래도 그런 광산을 선물이랍시고 주고 나서 영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곳보다 더 좋은 광산을 그녀의 소유로 당장이라도 바꿔 줄 용의가 있었다.

“일단 서류부터 확인하시죠.”

조금은 의아한 눈빛으로 루브를 잠시 응시하던 소르펠 공작의 시선이 곧 서류로 향했다. 그런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처음엔 광물 채굴량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에 놀랐고 두 번째는 그 광물이 최종적으로 움직인 장소에 눈이 커졌다.

“세프라가?”

광물이 마지막으로 향한 장소가 바로 세프라 공작가였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세프라가에 속해 있는 흑마법사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흑마법사?”

“네.”

“설마…….”

루브는 더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이라면 이 정도의 정황만으로 모든 사실을 충분히 파악할 테니까.

“설마 그 광산에서 나온 광물이……!”

그리고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 나온 정확한 결론에 루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축하한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소르펠 공작을 보며 잠시 눈을 껌벅이던 카밀라가 이내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이미 예상한 일이라는 듯 태연하게 감사 인사를 받는 카밀라의 모습을 보며 소르펠 공작의 입가에도 웃음이 걸렸다.

“역시 눈치채라고 한 일이었구나.”

카밀라가 고스트 상회, 아니, 마력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생각을 해 봤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왜?’

꼬리가 잡힐 것이 분명한데 굳이 왜 그 아이는 자신의 이름으로 그 엄청난 금액을 후원했을까?

그것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마력석이나 고스트 상회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알려 준 거였어.’

당혹감이 아닌 환한 미소로 응답하는 카밀라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자기가 고스트 상회의 주인이라는 걸 이렇게 자신에게 알려 주려 했다는 것을.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좀 놀라긴 했지.”

카밀라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저도 마력석이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녀는 짐짓 두렵다는 듯 몸을 더욱 움츠렸다.

“어린 제가 마력석의 주인인 걸 알면 다들 무섭게 덤벼들 것 같아서…….”

“감히 누가!”

저놈이요, 라고 가브엘 후작을 가리키려다 참았다.

“바쁜 아버지께 괜히 신경 쓸 거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지도 않았구요. 좀 자리를 잡은 뒤에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순간 “난 한가해 보였나 보군.”이라는 세프라 공작의 혼잣말이 들려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런데 사업 규모가 갑자기 너무 커져 버려서 말씀드릴 타이밍을 놓쳐 버렸어요.”

“녀석.”

지금 중요한 건 소르펠 공작이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역시 아버지의 이름으로 후원하길 잘한 것 같다. 그 큰 금액을 자신이 정말 좋은 마음으로만 기부했겠는가.

‘아까워 죽는 줄 알았거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자신이 고스트 상회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다른 루트를 통해 밝혀지는 순간 돈독 오른 여자로 낙인찍히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그 쓰레기 같은 광물이 최고급 마력식이 된 사실을 가족들에게조차 바로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런 소문이 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기부했다. 소르펠 가문의 이름으로.

‘젠장.’

그 정도면 블랙 쉐도우의 수장인 루브가 충분히 알아챌 거라 여겼고. 그럼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소르펠 공작에게도 알릴 수 있게 될 거라 예상했다.

자신이 돈독이 오른 것도 아니고, 끝까지 숨기려고 한 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어필할 수 있었고.

툭툭.

소르펠 공작이 연신 자신의 어깨를 다독였다. 장하다는 듯이.

‘그렇겠지.’

골칫덩어리였던 광물을 최고급 마력석으로 만든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 세 공작가가 모두 덤벼든 광산까지 자신이 오늘 차지하지 않았는가.

물론 카밀라는 광산에서 나오는 철 따위 전혀 필요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광물이지.’

다이아몬드! 철은 안 그래도 소르펠 공작에게 적당히 대가를 받고 넘길 생각이다. 치사하게 그냥 넘겨 달라고 하시지는 않겠지?

“마, 말도 안 돼!”

그 순간 분노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가브엘 후작이 자신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어떻게!”

그러니까 마력석으로 그동안 자신을 물 먹인 게 세프라 공작이 아니라 저 망할 어린년이 한 짓이란 말이지 않은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고작 저런 것에 휘둘러 여태껏 그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래서 뭐? 노려보면 어쩔 건데?’

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는 가브엘 후작을 향해 카밀라는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한 미소를 날려 줬다.

‘내가 고스트 상회의 주인이어서 달라진 게 뭔데?’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그래도 내가 명색이 공녀거든? 세프라 가문은 어렵고 소르펠 가문은 우습니? 만만할 것 같아?

“으…….”

가브엘 후작도 똑같은 생각을 한 듯 이내 시선을 급히 내렸다.

“흐음.”

카밀라의 시선을 덩달아 쫓아 매서운 눈빛을 날리는 소르펠 공작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썩을!’

상황이 더 최악으로 변한 게 맞다. 세프라 공작에 이어 소르펠 공작의 뒷배까지 끼고 있는 이가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 것이지 않은가!

그동안 고스트 상회 주변을 연신 살폈던 그다. 어떻게든 다시 마력석 사업에 손을 뻗어 보려고 했는데……. 이젠 다 틀린 것 같다.

“그러니까 뭐야? 자네가 마력석을 넘긴 게 카밀라, 저 아이라는 거야?”

경악 어린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흘러나왔다.

“아니, 왜? 자네 미쳤냐? 아무리 친구의 딸이라지만 그 좋은 사업을 왜 그냥 넘겨!”

바로 제이빌런 공작이다.

“나도 있고 저 녀석도 있는데! 왜 하필 저 아이야?”

저 어린 게 뭔 사업을 안다고!

아주 근소한 차이로 광산을 낙찰받지 못한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사실을 접한 그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한테 자네나 나나 이번에 졌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나 보군.”

“끄응…….”

경매에 아깝게 진 충격이 다시 밀려들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어.”

“뭔 소리야?”

“저 아이의 것이었지.”

“그게 무슨, 자네! 말하다 말고 어디 가나!”

“경매도 끝났는데 여기 더 있어서 뭐 하게.”

귀찮다는 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제이빌런 공작이 서둘러 쫓았다.

“하던 말은 마저 하고 가야지! 이봐!”

그로 인해 작은 소란이 일었지만,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이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카밀라 영애가…….”

고스트 상회! 그 상회의 진짜 주인이 카밀라라는 사실에 다들 큰 충격에 빠진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이번 광산까지!’

더없이 예쁜 얼굴로 방실방실 웃고 있는 카밀라를 다들 입을 멍하니 벌린 채 한참 바라봐야만 했다.

* * *

“왜? 뭐?”

“…….”

“할 말 있으면 해.”

“…….”

“…알았어. 최고급 마력석 다섯 개 챙겨 준다.”

“…….”

“이, 일곱 개?”

“…….”

“여덟 개! 더 이상은 안 돼.”

“…….”

“…열 개.”

“흥, 내가 이쯤에서 봐준다.”

…에이씨.

소르펠 공작만 넘어가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집에 복병이 한 명 남아 있었다.

‘라비, 이 치사한 새끼.’

당연하다시피 그날 오후 소문이 쫙 퍼졌다. 마력석과 고스트 상회의 진짜 주인이 카밀라라는 사실이.

그 얘기를 들은 라비가 바로 자신을 찾아왔다.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한참 동안 말없이 쏘아보는 그의 시선에 결국 자진 납세하고 말았다. 젠장… 대체 이번 일로 손해가 얼마야!

“너 어떻게 나까지 속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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