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가냐?”
“어?”
외출 준비를 하던 카밀라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라비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일이야?”
“뭐가?”
“이 시간에 밖에를 다 나오고.”
“네가 내 몸에 생길 곰팡이를 하도 걱정해 주길래.”
툭툭.
“…뭐 하냐.”
“칭찬해.”
“까분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카밀라의 손을 빠르게 쳐냈다. 연신 미간을 찌푸리던 라비는 까르르 웃는 그녀에게 뭔가를 툭 던졌다.
“이거나 받아.”
“오!”
라비가 건넨 건 로브였다. 얼마 전에 자신이 냉기를 넣어 달라 부탁한 로브!
“이 계절에 로브는 왜?”
“다 쓸 데가 있어서.”
“너 요즘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좋은 짓.”
“야.”
“이건 잘 쓸게.”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그녀를 라비가 다시 붙잡았다.
“너 또 위험한 일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
“뭐?”
“세상에 완벽하게 안전한 일이 어디 있어.”
“야!”
그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걱정 마.”
카밀라는 주먹으로 라비의 가슴을 가볍게 툭 쳤다.
“나도 우리 오빠 고아로 안 만들어.”
“…….”
“다녀올게.”
그렇게 자신을 지나쳐 가는 카밀라를 그는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 입에선 연신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저게 요즘 사람 기분 이상하게 하네.”
그런 그의 입가에 어느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경매요?”
“응.”
고스트 상회를 담당하고 있는 크리스는 카밀라가 건네는 서류를 잠시 훑었다. 그도 이미 알고 있는 경매였다.
“아시겠지만 이 물건을 노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녀가 이번에 찜한 상품은 바로 광산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귀족이 현재 탐을 내는 광산으로, 엄청난 양의 철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철은 언제나 수요가 많았다. 일반 귀족뿐만 아니라 3대 공작가까지 이 광산을 매입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할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갑자기 광산을 왜…….”
크리스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기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철광산을 구입하려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거기에 철만 매립되어 있는 게 아니거든.”
“네?”
“보석 중의 보석이 묻혀 있지.”
누가 뭐라 해도 보석의 왕은 다이아몬드 아니겠어?
저 철광산, 그 깊은 안쪽에 다이아몬드가 잔뜩 매장되어 있다. 그것도 순도가 아주 좋은 최상급 다이아몬드가!
그걸로 끝이냐고? 아니!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면 희귀하다고 알려진 블루 다이아몬드까지 나와 사람들을 아주 경악으로 몰고 갔었다.
“그러니 우리가 꼭 가져와야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이빌런 공작은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이 광산 역시 과거에 늘 그의 소유가 되었으니까.
철을 캐다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그는 어김없이 소르펠 공작을 찾아와 자신의 행운을 맘껏 자랑했었다.
“하지만 카밀라 님, 낙찰받기 쉽지 않을 겁니다.”
크리스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다른 분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상황이잖습니까. 저희가 지금 끼어들어 봐야 낙찰받을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겠지.”
카밀라도 순순히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잠시 말을 끌며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내가 낙찰가를 알고 있다면?”
“…소르펠 가문의 낙찰가를 안다고 하여도 큰 도움은 되지 않을 듯합니다.”
크리스는 카밀라가 소르펠 가문이 제시할 낙찰가를 알아냈다고 짐작했다. 같은 집에서 사니 어쩌면 쉽게 정보를 얻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하지만 카밀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광산이 낙찰되는 최종 금액을 알고 있다면?”
“…네?”
이번에야말로 크리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게 무슨……!”
“거기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금액을 더 보태면 우리가 낙찰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거야 물론 그렇지만…….”
순간 크리스의 머릿속으로 카밀라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예지 능력.
그동안 소문으로는 들어 대충 알고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기에 잘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낙찰가를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응.”
그런데 너무도 단호한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크리스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이 말을 믿고 일을 추진해도 되는 걸까?
‘당연히 믿어도 되지.’
카밀라는 대충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제이빌런 공작이 낙찰받은 광산 금액은 아주 똑똑히 기억한다. 매번 같은 금액을 제시했으니까.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사람들은 그가 받은 낙찰가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비교하며 아주 시끄럽게 떠들어 댔었다.
그런 소식에 취약한 카밀라의 귀에까지 아주 정확히 들려왔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는가.
“딱 3만 골드만 더 쓸 거야.”
제이빌런 공작이 제시할 금액에 딱 3만 골드, 그 이상은 쓸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3만 골드도 너무 아깝다. 백 골드, 딱 그 정도만 더 써 낙찰받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제이빌런 공작이 목덜미 잡고 넘어갈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크리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크리스도 경매에 대한 언급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 * *
“경매는 처음이지?”
“네.”
크리스에게 모든 걸 맡기고 뒤로 빠져 있으려다 너무 궁금해 이 자리까지 왔다. 소르펠 공작을 졸라 함께 경매장을 찾은 것이다.
경매장을 따라가고 싶다는 말에 소르펠 공작은 쉽게 허락해 줬다. 오히려 함께 움직이는 것에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안이 그리 넓진 않네요.”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선 경매장은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고급스러웠지만 말이다.
“극소수의 귀족들만 참여하는 장소니까.”
세 공작이 참가한다는 말에 이미 대부분의 귀족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제시 금액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에 경매장 안에 앉아 있는 귀족들은 몇 되지 않았다.
“왔나.”
“카밀라도 같이 왔군.”
대부분 아는 얼굴이었다. 세프라 공작과 제이빌런 공작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저 멀리 자신들 쪽을 흘겨보고 있는 가브엘 후작의 모습도 보였다.
“저자가 고스트 상회의 그자이군.”
소르펠 공작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크리스가 자리에 앉아 있다 가볍게 자신들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신에게도 간단히 눈인사를 건넸다.
“생각보다 젊군.”
“그렇네요.”
카밀라는 대충 맞장구를 쳐 주며 자리로 가 앉았다. 그러자 크리스가 다시 자신을 힐긋 쳐다봤다.
여전히 불안감을 완전히 감추지 못한 그를 보며 카밀라는 안심하라는 듯 짙은 미소를 그에게 날려 줬다.
달칵.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경매 관계자들이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한 장의 서류가 들려 있었다.
“매물 127번 아레아스 광산 경매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매 방식은 간단했다. 입찰을 원하는 이들이 미리 금액을 적은 서류를 일정 시간 안에 제출하고, 그걸 확인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이가 매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경매인의 입을 모두가 뚫어져라 바라봤다.
“2,138만 7천 골드에 고스트 상회에 아레아스 광산이 낙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뭐!”
“고스트 상회?!”
“말도 안 돼!”
여기저기서 놀라움이 가득 담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 지금 얼마라고 했나?”
가장 경악한 이는 바로 제이빌런 공작이었다. 자신이 제시한 금액과 너무도 근소한 차이였다.
‘그래도 2천 골드 더 써 줬는데.’
3만 골드만 더 쓰려다 양심상 2천 골드를 더 보탰다. 제이빌런 공작이 제시한 금액은 2,135만 5천 골드였으니까.
“하…….”
크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있는 곳을 다시 바라봤다.
그러게 믿으라니까.
카밀라는 마지막 안전장치도 확실하게 해 둔 상태였다.
혹시나 해서 제이빌런 공작을 비롯해 다른 이들의 금액을 슬쩍 귀신들을 통해 확인했거든.
“축하하네.”
“젊은 사람이 대단하군.”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크리스를 보며 카밀라는 뿌듯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축하한다.”
그 순간 들려오는 아주 익숙한 음성. 바로 소르펠 공작이었다. 그 또한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지.
“장하구나.”
…그의 시선이 크리스가 아닌 바로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