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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90)화 (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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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런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 순간 두려워하기보다 안도하는 젤라드를 보며 카밀라는 바로 그를 범인 후보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아이가 범인을 찾을 거야.”

“네?”

카밀라는 자신의 주머니에 얌전히 들어가 있는 킹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크릉…….]

신수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커졌다.

비록 몸집은 어른 손바닥만 한 게 새끼 고양이와 다를 게 없었지만 낮게 으르렁거리는 킹의 모습에 다들 움찔했다.

“아니, 왜…….”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눈으로 범인을 바로 찾으면 될 것인데 굳이 왜 신수를 내세우는 것인지 젤라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범인이 내가 가진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 잡아떼면 그만이잖아.”

그래도 신수인 것을, 저리 작아도 신수의 능력까지 의심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카밀라는 밑밥을 깔고 킹을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내세웠다.

“다들 알다시피 아버지가 드신 음식에서 독이 나왔어.”

젤라드의 표정이 다시 무거워졌다

“지금 중요한 건 킹이 그 독이 어떤 독인지 알아냈다는 거야. 더불어 그 독의 냄새도 파악해 냈다는 거지.”

카밀라는 주방 식구를 쭉 훑었다.

“그 독을 만진 사람이라면 킹이 바로 찾아낼 거야.”

“예?!”

카밀라의 말에 유독 크게 반응을 보인 이가 있었다. 부주방장인 바론이었다.

올해 30살인 그는 19살부터 젤라드 밑에서 하나하나 일을 배워 온 이였다. 젤라드가 가장 아끼는 제자라 할 수 있었다.

“치, 치료사들도 알아내지 못한 독약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바론은 어색한 표정으로 급히 말을 이었다.

“맞아. 독이 아무 특성이 없다네. 향도 없고 맛도 없고. 뭐, 대부분 독이 다 그렇다지만 이 독은 유독 더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찌…….”

“신수잖아.”

“그……!”

“신수니까.”

니들이 신수를 알아? 신수가 그렇다는데 니들이 어쩔 건데.

“인간은 못 맡는 향도 신수는 잘 맡나 보지.”

[크르르.]

킹이 다시 한번 낮게 울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신수의 모습에 신기해하는 이들도 있고 살짝 긴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킁.

킹은 한 사람, 한 사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제일 처음 젤라드에게 다가간 킹은 가볍게 냄새를 한번 맡은 후 그대로 그를 지나쳐갔다.

카밀라는 그런 킹과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다.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에게 고정이 됐다.

킹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눈에 띄게 몸을 떨어대는 이가 있었다.

“으…….”

부주방장 바론이었다.

킹이 슬쩍 자신을 돌아봤다. 카밀라의 시선이 바론에게 고정되어 있는 걸 본 킹은 그에게 순식간에 달려갔다.

[크아앙!]

“으아아악!”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는 바론의 모습에 주변 이들이 모두 입을 멍하니 벌렸다.

“오라버니, 저자를 심문해 보셔야 할 듯하네요.”

“그래.”

카밀라의 말에 루드빌이 바론에게 성큼 다가섰다.

그 모습에 더욱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그가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꽉 다물었다.

“크으, 커…억!”

잠시 후 그가 고통을 호소하며 목을 부여잡았다.

“꺄아악!”

“으악!”

이내 울컥 피를 토하는 그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바론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투욱.

“보지 마라.”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던 카밀라의 시야가 가려졌다. 루드빌이 그녀를 감싸 안은 것이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잦아질 때까지 카밀라는 루드빌의 품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 * *

“그냥 평범합니다.”

집사 루브, 아니, 블랙 쉐도우의 수장인 루브는 조사 보고서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소르펠가에 들어오기 전까지 신전에서 일했더군요. 보육원 출신으로 가족도 없습니다.”

“흐음.”

바론에 대한 얘기다. 이번 독살 미수의 범인이 바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루브는 바로 모든 정보원을 동원에 그의 뒤를 캤다.

하지만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자라 요리에 재능을 보여 젤라드의 제자가 된 단순한 인물이었다.

“이상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자가 왜 소르펠 공작을 노린 걸까?

혹여 빚이 있어 누군가에게 사주받은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쪽으로도 깨끗했다.

“이번에도 카밀라가 잡아낸 거라고?”

“네, 신수와 함께 범인을 색출해 내셨지요.”

“그 아이의 특이한 능력이 이번에도 발휘가 된 건가.”

“그게…….”

집사 루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연기였다고 합니다.”

“연기?”

“범인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신수가 범인을 찾아낼 것처럼 연기를 하신 거랍니다.”

처음부터 카밀라도 신수도 가지고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범인이 스스로 제 발 저려 티를 내게 완벽한 연기를 펼쳤을 뿐이다. 거기에 바론이 걸려든 것이고.

“하…….”

소르펠 공작은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누굴 닮아 배짱이 그리 두둑한 건지.

“카밀라는?”

“아르시안 님이 오셔서 함께 나가셨습니다.”

“아르시안?”

소르펠 공작의 미간이 꿈틀했다. 문득 깨달은 것이다. 최근 아르시안, 그가 카밀라 곁에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는걸.

“같은 클럽이라고 하더군요.”

“클럽? 허… 그 녀석도 클럽 활동 같은 걸 하, 잠깐! 같은 클럽이라고?”

카밀라가 들어간 클럽이 봉사…….

“그 녀석이 봉사 클럽?”

카밀라가 봉사 클럽에 가입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했다.

오래전부터 아르시안을 봐 온 그는 누구보다 녀석의 성격을 잘 안다. 그 거친 녀석이 봉사라니.

소르펠 공작은 어이없는 웃음을 잠시 흘렸다.

“페트로 님도 같은 클럽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다 이어지는 루브의 말에 그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뭐지?”

그 클럽에 뭐라도 있는 건가?

* * *

“확실히 치료 마법 쪽으로 강하네.”

“정말요?!”

“이건 나한테 더 배울 것도 없겠어.”

“와아!”

라니아가 손뼉을 치며 기쁨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개인 선생을 구해 달라고 해. 나보다 훨씬 잘 가르쳐 줄 테니.”

“그건…….”

“왜?”

“전 라비 님이 가르쳐 주는 게 더 좋은데요.”

“치료 마법은 내가 더 가르칠 게 없다니까.”

“다른 걸 가르쳐 주시면 되죠.”

라비는 라니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번에 귀한 마법 서적을 받고 그냥 모른 척하기가 그래서 마법 수업을 며칠 해 줬더니 매일같이 자신을 찾아오는 라니아였다.

“이거요.”

바로 거절의 말을 내뱉지 않는 라비의 모습에 라니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역시 이 집에서 가장 공략이 쉬운 인간이 그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그녀는 한쪽에 놔둔 무언가를 들고 와 라비에게 건넸다.

“이거…….”

“선물이에요!”

“선물?”

마법 서적이었다. 그것도 대륙에 몇 권 남지 않은 아주 귀한 마법 서적.

“이걸 어디서…….”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아는 분이 저에게 남겨 주신 거라고.”

“대체 그분이 누구기에.”

다른 사람은 한 권도 갖고 있기 힘든 이런 책들을 어찌 이리 많이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런 귀한 걸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에게 그냥 준다는 게 말이 돼?

“절 딸처럼 여겨 주셨던 분이에요. 멀리 떠나시면서 제게 주신 책들이죠.”

라비는 자신의 손에 들린 책과 그녀를 연신 번갈아 봤다.

스윽.

“어?”

라니아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라비가 자신이 준 책을 도로 내밀었기 때문이다.

“왜…….”

“부담스러워서.”

“네?”

“그런 귀한 책을 내가 함부로 받기 좀 그렇지.”

“아니에요!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라니아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왜?”

“네?”

“이걸 왜 나한테 주고 싶은데.”

라니아의 입가에 언제나처럼 예쁜 미소가 걸렸다.

“라비 님과 친해지고 싶으니까요."

두 손을 꼭 모은 라니아의 눈가가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해 보였다.

“제가 여기에 와서 가장 많이 의지하고 있는 건 라비 님이거든요.”

그녀의 고개가 처량하게 아래로 살며시 내려갔다.

“아버지도, 루드빌 오라버니도 너무 어렵고 무서워서……. 하지만 라비 님은 다르셨어요.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잖아요.”

“그건…….”

“저와 가족이 되어 주세요.”

라니아는 양손을 기도하듯 꼭 맞잡으며 간절한 눈빛을 라비에게 보냈다.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눈가에 눈물이 그렁하고 맞잡은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역시 못 받겠다.”

“…네?”

“이 책, 도로 가져가.”

“……!”

라비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비 님!”

그런 그를 라니아가 급히 붙잡았다.

“아니, 왜…….”

라니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리 단번에 거절을 해? 저 귀한 서적을 눈앞에 두고도 그냥 돌아선다고?

당황하는 라니아를 보며 라비는 간단히 말을 이었다.

“그 녀석에게 가족은 나 하나니까.”

“뭘 당연한 걸 물어.”

“넌 내 오빠잖아.”

“넌 내 가족이니까.”

“나 두 번 다시 고아 되는 거 싫어.”

“너 죽으면 나 진짜 고아 되는 거 알지?”

“그러니 죽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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