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카밀라는 공작가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뛰었다. 그곳에 놓아둔 물건 하나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이전에 신수를 잃어버렸던 전대 가주인 헤르셀이 자신에게 남겨 준 선물이 있었다. 그가 죽은 무덤가에서 발견된 씨앗처럼 생긴 열매.
‘분명 모든 독을 다 해독해 준다고 했어.’
소르펠 공작이 독에 중독되어 쓰러졌다는 말을 페롤을 통해 듣는 순간 바로 이 씨앗 열매가 떠올랐다.
스윽.
“아가씨!”
“잠시만……!”
카밀라가 알 수 없는 약을 소르펠 공작의 입가로 가져가는 모습에 치료사들은 다시 한번 다급히 외쳤다.
“조용.”
그런 그들의 앞을 루드빌이 막아섰다. 그의 나직한 한마디에 치료사들 모두 입을 굳게 다물어야만 했다.
루드빌은 아무런 말 없이 카밀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허락에 카밀라는 더 망설이지 않고 헤르셀이 남긴 열매를 소르펠 공작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냥 삼키면 된다고 했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저걸 삼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녀의 염려와 달리 딱딱한 질감을 갖고 있던 씨앗 열매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녹아 안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르펠 공작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그의 온몸을 감싸던 빛은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고, 공작님께서……!”
그리고 다음 순간 다들 알 수 있었다. 소르펠 공작의 안색이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치료사들은 앞다투어 소르펠 공작의 몸을 살폈다. 그런 그들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맙소사!”
“해독된 듯합니다!”
“카밀라 님의 해독제가 효과를 보였어요!”
맥박과 호흡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체온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카밀라는 그제야 참고 있던 긴 숨을 토해 냈다.
“카밀라!”
“…괜찮아.”
순간적으로 다리가 후들거려 비틀거리는 그녀를 아르시안이 급히 부축했다.
“좀 긴장해서…….”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저 약을 사용하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검증이 되지 않은 약이니까.
오로지 헤르셀의 말만 믿고 사용을 하는 것이었기에 혹여 잘못되면 어쩌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약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치료사들의 말에 불안감이 극에 달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행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조금 전과 안색이 확연하게 달라진 소르펠 공작을 보며 카밀라는 다시 한번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다 침실 한쪽에 세워져 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하.”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카밀라의 입에서 순간 실소가 터져 나왔다.
‘완전 미친X 꼴이네.’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옷 또한 물놀이를 하며 여기저기 걷어붙인 상태 그대로였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도저히 공작 영애로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 차림새가 어떤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작이 쓰러졌다는 말을 페롤에게서 듣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말에 최대한 빨리 자신이 가진 약을 그에게 먹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공작가에 도착해 방으로 향하며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아르시안이 붙잡아 줘서 다행이지, 그가 아니었으면 무릎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행동을 떠올리며 카밀라는 다시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왜 그랬지?’
너무도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으…….”
“아버지!”
소르펠 공작이 작은 신음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루드빌과 라비가 순식간에 그에게 다가섰고 카밀라 역시 그의 안색을 다시 살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굳어 있던 표정을 애써 풀며 소르펠 공작의 입에서 마른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다녀…왔니.”
그 한마디에 카밀라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돌아올 때마다 마중 나와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 네, 아버지…….”
아버지. 오늘따라 이 단어가 왜 이리 벅차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그를, 아버지를 보며 카밀라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