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로 오자고 누가 정한 거야?”
“저요!”
해맑다. 너무 해맑아서 화도 안 난다.
‘에휴.’
보육원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곡에 도착한 카밀라는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물도 깨끗하고 햇살도 잘 드는 곳이었다. 계곡도 깊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어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도 딱이었다. 산속답지 않게 곳곳에 평지도 많아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좋았다.
문제는…….
‘왜 하필 물귀신이냐고.’
제법 깊은 계곡물 쪽에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물귀신들이 그녀의 눈에 너무 잘 보인다는 거다.
그것도 셋이나.
‘여기, 자살 명소냐?’
그게 아니고서야 물귀신이 왜 저리 많아! 아니면 사람 죽기 좋은 위험한 장소라도 있는 건가? 애들 놀게 해도 되는 거야?
“에휴.”
다른 귀신들에 비해 물귀신은 원한도 세고 장난기도 많다.
악령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귀신에 속했다. 평소라면 그냥 모른 척, 본 척도 하지 않았겠지만…….
“제노, 데린.”
[네, 아가씨.]
[저것들이 거슬리는 거지?]
지금은 애들이 있으니까. 괜한 위험 요소를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처리하죠.”
카밀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노와 데린이 물귀신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귀신들도 나름대로 급이 있다. 물속에 처박혀 악귀처럼 사는 이들에게 있어 제노나 데린 같은 이들은 제법 무서운 존재였다.
살아 있을 때의 무위를 귀신들에겐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니까.
[까아아! 이거 놔! 여긴 내 자리야! 내 공간이라고! 내가 여기서 뭘 하든 니들이 뭔 상관이야!]
두 명의 물귀신은 제노와 데린이 다가오는 순간 알아서 멀리 도망쳤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여자 귀신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항했다.
그래도 역시나 제노와 데린의 힘을 그녀 혼자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양팔을 붙잡힌 채 숲 쪽으로 번쩍 들려서 끌려갔다.
[니들 뭐야! 뭐냐고!]
“시끄러워요. 조용히 좀 하시죠.”
카밀라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그쪽으로 슬쩍 향했다.
[……! 너, 너! 내가 보여?]
“보이면 뭐요?”
[말도 안 돼! 살아 있는 사람이 우릴 어떻게 봐!]
“됐고.”
카밀라는 그녀의 말을 바로 끊었다.
“계속 시끄럽게 굴면 사신 부릅니다.”
[……!]
“내가 아는 사신이 한 놈 있거든요.”
도와도 줬는데 이 정도는 써먹어도 되겠지.
역시 사신은 무서운 듯 그제야 물귀신이 조용해졌다.
“그쪽 공간을 뺏어서 미안한데, 애들한테 장난칠까 봐 걱정이 돼서.”
[…애들만 안 건드리면 돼?]
“어른도 안 돼요.”
[…….]
“얌전히 있겠다고 하면 풀어 주고.”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물귀신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경고했다.
“저쪽에 시커먼 인간 보이죠?”
자신이 숲 쪽으로 향할 때부터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아르시안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물귀신의 존재를 파악한 듯 눈빛이 아주 살벌하다.
“쟤도 나처럼 널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 녀석은 성격이 뭐 같아서 그쪽 걸리면 바로 소멸이야.”
[……!]
“쟤한테 걸려 사라진 귀신이 셀 수도 없어요.”
아르시안 쪽에 고개를 돌렸던 물귀신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안 그래도 시퍼렇던 안색이 더 시퍼레지는 게 좀 신기하긴 했다.
[…알았어.]
카밀라는 제노와 데린에게 풀어 주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양쪽에서 물귀신을 잡고 있던 팔을 놓아줬다.
“내가 계속 감시할 거예요.”
[알았다고!]
입을 삐죽 내밀며 물귀신은 그대로 계곡 물속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뭐야? 저거.”
그 모든 상황을 멀리서 지켜본 아르시안이 다가와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물속에 있던 뭔가가 나와 카밀라와 함께 있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물귀신.”
“물귀신?”
“되도록 저쪽으로는 아이들 못 가게 해야겠어.”
다짐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다른 물귀신에 비해 성깔도 있어 보이고 자신들을 딱히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감시하겠습니다.]
[나도.]
데린과 제노의 말을 들으며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이라면 충분히 저런 물귀신 하나쯤은 제어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꺄아!”
“엄청 차가워!”
“리오! 저쪽으로 가 봐!”
“누나! 여기 물고기!”
어느새 아이들 대부분이 물속에 들어와 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낮은 곳에서, 수영에 자신 있는 큰아이들은 깊은 곳에서.
라일라와 페트로를 비롯해 다른 클럽 사람들 역시 이미 물속에 들어가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
“넌 안 들어가?”
“난 물 안 좋아해. 특히 저런 차가운 물은 딱 질색……."
촤아아악!
"……."
물벼락을 맞은 카밀라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마녀 누나!”
“우리랑 놀아요!”
아이들이 자신에게 물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난 이런 물놀이 별로 좋아하지 않…….”
촤아악!
…싸우자는 거지?
카밀라는 그대로 신발을 벗고 무릎까지 오는 물속으로 들어섰다. 치마 끝자락이 그대로 물에 잠겼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 죽었어.”
“꺄아아!”
그 후는 아이들과의 전쟁이었다.
“신났네, 신났어.”
물놀이 싫어한다더니.
온몸을 던져 아이들과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카밀라를 보며 아르시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 *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카밀라의 온몸이 젖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세례 폭격을 받은 카밀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은 채 밖으로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난 차가운 물이 싫어.”
입술이 시퍼렇게 질린 채 오들오들 몸을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아르시안은 작게 혀를 찼다.
“잠시만요.”
그 모습을 본 페트로가 급히 마른 수건을 찾으러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아르시안의 손길이 더 빨랐다.
후우욱-
그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그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이 순식간에 그녀를 감쌌다. 카밀라의 몸을 적셨던 물기가 사라졌다.
“오…….”
카밀라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다. 참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녀석이라는 걸 새삼 느끼면서 말이다.
“꼬맹이들이랑 아주 죽자고 싸우더라.”
“물놀이에 애 어른이 어디 있어.”
말 그대로 전쟁이었고 승패는.
“젠장.”
자신의 완패였다.
쪼그만 것들이 단체로 덤비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결국 항복 선언을 외치며 장렬하게 퇴장해야만 했다.
“하…….”
진심으로 분개하는 카밀라의 모습을 잠시 어이없이 바라보던 아르시안과 페트로는 결국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 엉망이다.”
아르시안이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러게.”
카밀라도 피식 웃었다.
“저희가 이겼어요!”
“언니가 항복했어!”
“다음에는 저랑 같은 편해요, 누나!”
“나도!”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놀아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단 한 번도. 어릴 때도 그렇고 커서도 누군가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아 본 적이 자신의 기억에 없다.
자신을 보고 저리 해맑게 웃어 준 이는? 그 또한 없었다.
‘나쁘지 않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또 놀자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카밀라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어?”
[카밀라!]
그런데 그때 누군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섰다.
‘페롤?’
요리사 유령 페롤이었다. 공작가에 있을 거라며 따라오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여긴 왜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페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페롤을 발견한 제노와 데린 역시 급히 다가왔다.
[공작가에 일이 생겼어!]
[일? 무슨 일?]
안색이 굳어 있는 페롤의 모습을 보며 데린 또한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음을 바로 직감한 것이다.
[공작님께서 쓰러지셨어!]
* * *
“독입니다.”
“그럴 리가!”
집사 루브는 치료사의 말에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독에 대해 유독 예민한 곳이 바로 여기 소르펠 가문이다. 오래전에 헤르셀 가주가 독으로 사망한 뒤 무엇보다 경계하는 영역이 바로 독이었다.
모든 식기에는 독을 감지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고, 가주들은 어릴 때부터 미량의 독을 섭취하며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워 왔다.
그러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소르펠 가주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라니아와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던 그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래도 내성이 있어 바로 피를 토하거나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은 지 벌써 1시간이 넘었다.
“독의 종류는?”
“그게…….”
“모르는 건가?”
“죄송합니다.”
“독에 특징이 없어요.”
“독에 중독되신 건 분명한데……. 어떤 독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처음 접하는 독입니다.”
가문의 치료사부터 수도 안에 기거하는 독 전문가들을 모두 불러 모았지만 다들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아버지!”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온 라비와 루드빌은 그런 치료사들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정녕 방법이 없단 말인가.
“저기…….”
그렇게 사람들이 절망감에 점점 잠겨들 때 조용히 말을 내뱉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라니아였다.
소르펠 공작이 쓰러질 때 유일하게 그 자리에 있던 이가 바로 그녀였다.
치료사들이 소르펠 공작을 살피는 내내 두 손을 꼭 모은 채 울고 있던 그녀가 간절하게 외쳤다.
“제가 해 보면 안 될까요?”
“뭐?”
“아시잖아요. 제가 치료 마법에 능한 거.”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해독 마법을……!”
타앙!
그 순간 문이 세차게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카밀라.”
거친 숨을 연신 내뱉고 있는 이는 카밀라였다.
그녀의 옆에는 아르시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계곡에서 여기까지 이동 마법을 시전해 준 이가 바로 그였다.
“독이라고요?”
그녀의 물음에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
카밀라는 빠르게 소르펠 공작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그게 뭐야?”
“해독제.”
“뭐?”
라비의 물음에 카밀라는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치료사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변했다.
“잠시만요, 카밀라 아가씨! 무슨 독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약이나 쓰시면……!”
“함부로 쓰시면 안 됩니다!”
“독이 더 번질 수도 있어요!”
안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려고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