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들이!’
아니,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그걸 억지로 왜 먹어?
“하.”
카밀라는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 * *
똑똑.
“오라버니.”
문을 빼꼼 열고 들어서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는 루드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지금 막 씻고 나온 듯했다.
“들어가도 돼요?”
“응.”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열린 문을 마저 열어 줬다.
“…….”
그러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밀라가 들고 있는 접시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간식을 준비해 온 그녀였다.
그런데.
“맛있어 보이죠?”
루드빌의 눈을 사로잡은 건 아주 시커먼 덩어리였다. 먹지도 않았거늘 진득진득한 초콜릿 향이 그대로 코를 자극했다.
“오늘은 아주 달콤한 초콜릿케이크를 준비했어요. 오라버니를 위해서 초콜릿 시럽도 잔뜩 집어넣었죠.”
“…그래.”
“음료도 설탕을 왕창 넣은 바나나 스무디로 준비했답니다. 바나나랑 초콜릿이 은근히 잘 어울리거든요.”
흔들린다. 저 무심한 인간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는 걸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나 세프라 공작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루드빌 또한 단 음식을 싫어한다는 게.
‘왜 미처 몰랐을까.’
그동안 간식을 순식간에 해치운 건 맛있어서가 아니라 싫은 걸 빨리 해치우겠다는 일념이었던 건가?
“드세요.”
“…응.”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내보이며, 언제나처럼 포크를 집어 들어 케이크를 먹으려는 그의 모습에 카밀라는 못 말리겠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거 말고 이거 드세요.”
초콜릿케이크를 자신의 앞으로 당긴 카밀라는 커다란 케이크의 위세에 가려져 있던 작은 푸딩 접시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홍차로 만든 푸딩이에요. 단맛이 전혀 없긴 한데 쌉쌀한 풍미가 아주 제법이더라고요.”
“…….”
“왜요? 초콜릿케이크가 더 좋으세요? 이걸로 다시 바꿔 드릴까요?”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카밀라는 최대한 웃음기를 감추며 초콜릿케이크의 맛을 봤다. 자신이야 단 음식을 딱히 싫어하지 않아 제법 입에 맞았다.
물론 머리가 띵할 정도의 단맛에 한 조각 이상은 자신 또한 사양이었지만 말이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저기…….”
라니아였다.
“어! 카밀라! 여기에 계셨네요.”
카밀라를 본 그녀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돌아오신 것도 몰랐어요. 죄송해요.”
카밀라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뒤쪽에 시선을 날렸다. 라니아를 따라 방으로 들어선 이가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사 유령 페롤이었다.
[몰랐기는! 네가 주방에서 나오는 거 몰래 다 지켜보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간식을 만들어 루드빌에게 갔다는 사실까지 다 알고 온 거야.]
“라비 님과 같이 마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마법?”
“네! 요즘 라비 님께 마법을 배우고 있어요! 얼마나 친절하신지 몰라요. 제가 재능이 있다면서 자꾸 치켜세워 주시는 거 있죠.”
라비가? 다른 이도 아닌 그 라비가 친절하다고?
카밀라는 실소가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자신이 질투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건가?
그렇다면 상대를 잘못 골랐다. 자신이 아는 라비는 대놓고 친절함을 베푸는 이가 절대 아니었으니까.
‘선천적으로 닭살 돋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는 인간이거든.’
선물을 줘도 오다 주웠다 말할 스타일이라는 거지. 그런데 뭐? 재능이 있다고 마구 칭찬의 말을 날려?
“여긴 어쩐 일이야?”
“아! 훈련하고 오셔서 혹 출출하실까 봐 준비해 왔어요.”
라니아의 손에는 작은 접시가 들려 있었다. 거기에도 손수 만든 듯한 간식이 놓여 있었다.
막 구운 듯 따끈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팬케이크였다.
[네가 간식을 만들어 갔다는 소리에 바로 저걸 준비하더라.]
“따뜻할 때 드셔야 맛있어요.”
라니아는 카밀라가 들고 온 접시를 한쪽으로 슬쩍 치우며 자신이 만든 음식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맛은 보장해요! 젤라드가 도와줬거든요.”
카밀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녀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게 자꾸 눈에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족과의 관계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다. 이 자리를 곱게 넘기지 않겠다는 거지, 저들의 관계까지 망쳐서 뭐 하겠는가. 무엇보다.
‘친오빠잖아.’
자신이 라비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그녀 또한 느끼고 있지 않을까? 평생 몰랐던 존재이지만 피가 이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경이 쓰이는…….
“전 이만 가 볼게요.”
“데려다주마.”
“네?”
그런데 루드빌이 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지금 네가 날 배웅해 주면 어쩌자는 거야?’
결국 혼자 뻘쭘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꼴이 되어 버린 라니아 역시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야만 했다.
“따뜻할 때 드셔야…….”
라니아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슬픈 눈빛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앞으로 힘들게 이런 거 만들어 오지 않아도 돼.”
그런 그녀를 잠시 말없이 응시하던 루드빌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카밀라가 만들어 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카밀라를 데리고 밖으로 향하는 루드빌을 바라보는 라니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