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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81)화 (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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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뭐랬냐니까.”

테라스로 나오자마자 그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아르시안.”

“왜?”

“난 오래 살 거야.”

“갑자기 뭔 소리야?”

죽고 싶으면 혼자 죽으라고! 황족 모독 발언은 제발 나 없을 때 해!

“오늘 내 생일이야.”

“나도 알아. 내가 여기 왜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고 치지 마라.”

“내가 무슨 사고를 친…….”

“…….”

“…알았어.”

에드센 황태자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끝까지 말해 주지 않는 게 불만인 듯 아르시안이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카밀라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의 모습이 그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

아르시안의 깔끔한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늘 눈을 가리듯 추리하게 내려와 있던 머리를 자연스럽게 뒤로 넘겼고 올블랙으로 맞춘 연회복이 무척 잘 어울렸다.

조금 마른 체형이 오히려 그의 신장을 더욱 길게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역시 남자는 수트핏이지.’

저 마른 체형 속에 숨어 있는 잔근육을 이미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 봐서 잘 알고 있는 카밀라는 연신 속으로 감탄했다.

“잘 어울리네.”

카밀라의 칭찬에 아르시안의 표정이 더욱 어색해졌다. 이런 정장 차림이 영 불편한 듯 연신 미간을 찌푸려댔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카밀라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공작님은?”

“그 인간 바빠. 대신 내가 온 거야.”

“뭐야? 공작님이 오셨으면 넌 안 오는 거였어?”

“아, 아니, 내 말은……!”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짓자 그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모습에 카밀라는 다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인간이 주래.”

“공작님이?”

아르시안이 건네는 상자를 열자 보석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작은 티아라가 나왔다.

“와아…….”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인다.

“고맙다고 말씀드려.”

“그딴 인사도 해야 해? 고작 이런 선물에?”

“…그냥 내가 나중에 직접 인사드릴게.”

미안.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그만 들어가자.”

주인공이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카밀라는 다시 홀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뒤를 조금 전처럼 아르시안이 조용히 따랐다.

“오늘 내 생일.”

“알았다고.”

한 번 더 주의를 준 카밀라는 앞서 걸음을 옮겼다.

“음?”

그런데 잠시 후, 홀 안에 들어선 카밀라는 그대로 다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홀 안의 분위기가 무척 이상했다.

“왜…….”

조금 전까지 흐르던 음악도 멈춰 있었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찾기 힘들었다. 다들 모든 행동을 멈춘 채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카밀라 역시 그 시선을 쫓았다. 그리곤 그녀 역시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어? 카밀라 영애!”

그 묘한 침묵을 깨트리며 자신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서는 이가 있었다. 바로 라니아였다.

저번 보육원에서 만났던.

“오늘 영애 생일이라면서요? 축하드려요! 전 그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정말 죄송해요.”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예뻤다.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손을 흔드는 그녀의 손목에는 여전히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전 공작 부인의 팔찌가.

“라…니아라고 했나?”

그리고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이는 바로 소르펠 공작이었다. 그의 시선 역시 라니아가 차고 있는 푸른 보석 팔찌에 고정되어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 많이 놀라셨죠?”

라니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태연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것도 잠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두 손을 꼭 맞잡은 그녀는 소르펠 공작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카밀라는 홀 안의 분위기가 왜 이따위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카밀라 역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그녀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라…….’

하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찜찜하고 거슬리게 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희한하네.’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다.

“라니아.”

카밀라는 잔뜩 표정이 굳어 있는 소르펠 공작을 대신해 라니아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네.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겠어? 보다시피 지금은 상황이 좀 그래서 말이야. 괜찮지?”

“아! 죄송해요! 파티가 있는 줄도 모르고…….”

라니아의 표정이 또 변했다.

“제가 분위기를 망친 건가요? 어쩌죠?”

참으로 표정이 다양한 아이였다. 세상 끝난 것처럼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달려왔던 거라… 정말 죄송…….”

“루브.”

사과하려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카밀라는 바로 집사 루브를 불렀다.

“응접실로 안내해.”

“네, 아가씨.”

평소와 달리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그에게 라니아를 맡겼다.

아마 그 역시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집사로서든 블랙 쉐도우의 수장으로서든.

“딸이라니…….”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 공작 부인께서…….”

“그분은 마차 사고로 돌아가셨잖아요.”

“그때 시신은 찾지 못했죠.”

“아! 맞아요. 그랬어요.”

“그런데 공작님과 너무 닮지 않았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당연히 그 후의 파티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해 소르펠 공작의 딸이라 주장하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도 땡이네.’

운명인가? 이번 해 생일은 무조건 엉망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게?

카밀라는 속으로 연신 혀를 차며 최대한 밝게 웃었다.

여기서 표정이 굳어지는 순간 내일부터 사교계에 자신에 대한 어떤 말들이 돌지 너무도 잘 아니까.

진짜 공작 영애의 등장에 충격을 받고 울먹이던 가짜 영애!

…이런 소문이 돌고도 남을 것이다.

“또 저런 미소군.”

그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던 황태자 에드센이 작게 혀를 찼다.

반면 그의 옆에 함께 서 있던 페트로는 걱정이 가득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 * *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버지!”

파티는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하지만 다들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라니아와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 전에 먼저 소르펠 공작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라비의 물음에 소르펠 공작은 쉽게 입을 잇지 못했다.

“딸이라니, 대체……!”

“오라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라비를 카밀라가 조용히 불렀다.

“차 안 마셔?”

“지금 차나 마실 때야.”

“차 싫으면 다른 음료라도 준비할까?”

“필요 없……!”

자꾸 쓸데없는 말을 건네는 카밀라에게 짜증을 내던 라비가 멈칫했다.

자신을 차분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젠장.’

오늘 그녀의 생일 파티가 엉망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보다 더 황당해하고 열을 내야 할 녀석이 오히려 자신을 달래고 있으니.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 그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자신의 옆자리로 향했다.

사실 제일 어이없는 건 루드빌이 아닐까? 오래전에 죽은 어머니의 딸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

하지만 그는 언제나 다름없이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자신들을 찾아온 이가 친동생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카밀라.”

“네, 아버지.”

잠시 후 소르펠 공작이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저 아이를 만난 적이 있는 거냐.”

“얼마 전에 방문한 보육원에서 봤어요.”

“보육원?”

“네, 봉사하러 왔더라구요.”

카밀라는 라니아와의 첫 만남을 간단히 들려줬다.

더불어 그녀가 차고 있던 팔찌와 자신이 창고에서 발견한 영상 구슬에 대해서도 말했다.

“카밀라, 그건…….”

“아버지.”

굳어진 표정으로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소르펠 공작의 입을 그녀가 먼저 막았다.

요 며칠 자신이 본 모든 정황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안나… 그분, 사고로 돌아가신 거 아니죠?”

안나. 전 공작 부인의 이름이다. 루드빌의 친어머니이고 현재 라니아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루드빌이 다섯 살 때 마차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분.

그런데 죽은 그분의 딸이 나타났다.

‘사고로 죽은 공작 부인이 차고 있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팔찌를 들고…….’

그리고 팔찌 얘기를 꺼냈을 때 보인 집사 유령 데린의 반응.

[40대 여자분이셨나요!]

40대.

카밀라는 그 말에 가장 많은 생각을 집중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공작 부인이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 나이대일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추론으로 카밀라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살아 계셨던 거죠?”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사실 공작 부인은 죽지 않았다는 것.

그거 말고는 이 상황이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반응은 라비에게서 먼저 튀어나왔다. 카밀라의 너무도 황당한 말에 그는 연신 미간을 찌푸려댔다.

“그분이 살아 계시다니, 그게 무슨……!”

“미안하다.”

하지만 한숨과 함께 내뱉어진 소르펠 공작의 말에 라비는 입을 급히 다물어야만 했다.

“아버지…….”

“카밀라의 말이 맞아.”

사과의 말로 시작된 그의 얘기는 다들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전 공작 부인은 귀족 가의 여식이 아니었다. 집시 출신으로 무희였다고 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춤 솜씨와 외모에 소르펠 공작이 한눈에 반해 버린 거다.

‘아이고, 아버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카밀라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매번 그런 분들만 좋아하시는 건지.

솔직히 카밀라의 어머니 역시 출신이 딱히 좋지 못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돈을 벌던, 제이빌런 공작의 말을 빌리자면 천하기 짝이 없는 집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 공작 부인 역시 집시 출신에 무희였다니…….

“우린 아무 문제가 없었단다.”

제이빌런 공작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녀에게 푹 빠진 소르펠 공작은 단숨에 결혼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걱정과 달리 소르펠 공작과 안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았다. 결혼을 반대했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하지만 그 행복은 길지 못했다.

“그녀가 떠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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