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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79)화 (7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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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작 부인.’

루드빌의 어머니.

선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는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를 향해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고라고 들었는데.”

루드빌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휴식차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공작 부인이 타고 있던 마차가 전복됐다.

하필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시신조차 찾지 못했단다.

“저런 분이셨구나.”

카밀라는 영상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보는 다정한 ‘엄마’라는 존재에 낯설면서도 뭔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아가씨, 카밀라 아가씨.]

“아, 네.”

영상이 모두 끝난 뒤에도 한참 멍하니 서 있던 카밀라는 데린의 부름에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정리는 대충 된 것 같네요. 그만 나가죠.”

[네.]

카밀라는 영상 구슬을 도로 상자 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런데 왜 이게 여기에 있는 걸까요?”

돌아가신 공작 부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라면 아주 귀한 것일 텐데.

“아버지께서 배려하신 걸까요? 저희 어머니를 위해?”

재혼하면서 전 부인에 대한 물건을 치우는 건 나름 예의였으니까. 데린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글쎄요.]

어라?

그런데 그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왜 저러시지?’

조금 전에도 저러더니. 영상 구슬이 발견된 후 계속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눈치였다. 언제나 자신이 궁금해하는 일에 막힘없이 대답해 주던 그였거늘.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며 안절부절못하는 데린의 모습에 카밀라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데린이 연기를 무지 못한다는 거.

‘저리 표정 관리를 못 해서야…….’

블랙 쉐도우 수장직은 어떻게 했을까? 현 블랙 쉐도우의 수장인 집사 루브는 그 속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을 감추는 것에 탁월한데 말이지.

‘모르겠다.’

뭔가 무척 곤란한 듯한 데린을 보며 카밀라는 더 깊게 파고들지 않고 조용히 창고를 나섰다.

* * *

“와! 카밀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어요.”

“그럼 다행이고.”

“전혀 쓰던 물건으로 보이지 않아요.”

“쓸 만한 것만 골라 왔으니까.”

카밀라가 타고 온 마차에서 수많은 물건이 내려졌다. 그걸 본 라일라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의 천재인 루드빌과 마법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라비가 쓴 물건이라는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

부적처럼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이들의 손길을 말리느라 클럽 부장의 눈이 매서워졌다.

“…….”

그런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에 대충 호응해 준 카밀라는 조금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

“말을 해.”

아르시안이 그곳에 서 있었다.

“할 말 있으면 하라고.”

“…네가 여기 왜 있는 건데?”

“있으면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이런 기분이구나.

자신이 봉사 클럽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라비와 소르펠 공작이 보였던 이상한 반응이 이제야 좀 이해가 갔다.

지금 아마 자신도 딱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이 클럽에 들어오는 거야?”

“어.”

“…네가 봉사활동을 한다고?”

다른 이도 아닌 네가?

남들이 부탁이라는 걸 하는 순간 주먹과 살기를 날려 보내는 이가 바로 너인데?

“뭐지? 그 반응은?”

“…좋아서.”

그렇게 살벌한 표정을 지으면 내가 할 말이 없잖니? 카밀라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아르시안의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자! 다들 모였으면 들어갈까?”

“네!”

클럽 부장의 말에 라일라가 가장 밝게 대답했다. 다른 이들은 그녀가 꼬셔서 데리고 온 아르시안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들어가죠.”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페트로가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말을 건네 왔다.

“또 오셨네요.”

“가입했으니 열심히 활동해야죠.”

니들 안 바쁘니?

카밀라는 검술부의 최고 인재들인 두 사람의 뜬금없는 클럽 활동에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검술 선생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어? 우리 말고 다른 분들도 와 계시네요.”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온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의 이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거나 함께 놀아 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 오셨어요?”

잠시 후 자신들을 발견한 몇몇 선생들이 다가왔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네요?”

“네! 저분들도 자주 오세요. 근처 신전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자주 찾는다는 말이 맞는 듯 아이들이 저쪽 팀 사람들 역시 잘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어! 마녀 누나다!”

“정말?”

“와! 마녀 언니!”

이것들이.

“이렇게 예쁜 마녀 봤어?”

“마녀는 예쁘면 안 돼요?”

…여기 보육원 아이들은 다 천잰가? 매번 핵심을 마구 찔러대네.

“오늘도 책 읽어 주세요!”

순식간에 카밀라의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마녀?”

그런 아이들과 카밀라를 잠시 번갈아 바라보던 아르시안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단한데?”

“뭐가?”

“너의 본성을 바로 알아보잖아.”

“내 본성이 어때서?”

“마녀 언니!”

“마녀 누나!”

“…….”

때맞춰 들려오는 아이들의 환호 섞인 외침에 카밀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큭.”

“하하하.”

아르시안과 페트로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책을 찾아보자.’

선한 인물들이 잔뜩 나오는 책을! 내가 오늘 그래서 마녀 타이틀을 기필코 벗어던지고 만다!

“안녕하세요.”

그때 카밀라 곁으로 누군가 다가섰다.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자신들보다 먼저 와 있던 신전 쪽 사람이었다.

“…….”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카밀라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카밀라 영애 맞으시죠?”

“…날 아나?”

낯선 이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카밀라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여자는 밝은 미소를 머금으며 한쪽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아이들에게 들었어요.”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곱게 휘는 게 저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갔다.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에 더욱 반짝이는 은빛 머릿결과 푸른 눈동자.

카밀라는 그 예쁜 모습을 보면서도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너무 반가워요.”

표정이 점점 굳어 가는 카밀라와 대조적으로 그녀는 더욱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이름은 라니아예요.”

“…라니아?”

“네, 앞으로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친하게 지내요.”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왤까?’

왜 저 말이 유독 귀에 거슬릴까?

카밀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으니까.

다른 걸 다 떠나서 카밀라의 시선을 유독 잡아끄는 게 하나 있었다.

라니아가 차고 있는 팔찌. 저 팔찌, 이미 본 적이 있다.

‘창고에서…….’

루드빌이 쓰던 물건이 담긴 상자를 정리할 때 발견한 영상 구슬에서 저 팔찌를 봤다. 다른 이도 아닌 공작 부인이 차고 있던 팔찌였다.

비슷한 물건이지 않냐고?

아니다. 장담컨대 자신의 눈썰미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영상을 볼 때도 유독 저 팔찌가 눈에 확 들어왔었다.

루드빌의 푸른 눈동자를 그대로 빼서 박아 넣은 듯한 푸른 보석이 어찌나 신비롭게 보이던지.

“예쁘죠?”

그런 자신의 시선을 느낀 듯 라니아가 팔찌를 찬 팔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가 주신 거예요.”

“…어머니?”

“네!”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라니아 자매님! 이만 가죠.”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던 라니아가 같이 온 이들의 부름에 벽에 세워져 있는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다음에 또 봐요.”

그녀는 무척 아쉽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손까지 흔들며 사라지는 라니아에게서 카밀라는 쉬이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좀…….”

옆에 서 있던 아르시안과 페트로의 의아한 눈빛이 날아들었지만, 카밀라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카밀라는 자신이 그녀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은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을 수 있었다.

‘…닮았어.’

아버지, 소르펠 공작과.

* * *

[아가씨, 이 영상을 왜 자꾸 보시는 겁니까?]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라니아와의 만남이 있고 난 뒤 카밀라는 다시 창고로 향했다. 그때 보았던 영상을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혹여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영상을 몇 번 돌려본 카밀라는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영상 속 팔찌와 라니아가 차고 있던 팔찌가 같은 거라는 걸 말이다.

“데린.”

[네, 아가씨.]

“저 팔찌요.”

[저 푸른 보석 팔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마님께서 무척 아끼시던 팔찌죠.]

데린도 잘 아는 물건인 듯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공작님께서 루드빌 님이 태어나셨을 때 기념으로 선물하신 팔찌입니다.]

“귀한 보석이겠네요?”

아이의 탄생을 기념해 소르펠 공작이 직접 주문한 거라는데 싸구려를 하진 않았겠지.

그녀의 예상대로 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라는 유명한 장인이 만든 보석입니다. 오래전에 숨을 거두었지요. 듣기론 저 팔찌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들었습니다.]

“저런 디자인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보통 귀족들을 상대하는 공방에선 똑같은 디자인의 물건을 여러 사람에게 판매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뇨. 다른 세공사들도 그렇지만 저분은 유독 더 특별함을 추구하던 분입니다. 비슷한 것도 절대 만들지 않는 분으로 유명했죠.]

역시나 데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 푸른 보석도 무척 귀한 거랍니다. 루드빌 님의 눈동자와 똑같은 색을 내는 보석을 일부러 찾은 거지요. 대륙 전체를 다 뒤졌다고 들었습니다.]

즉, 똑같은 팔찌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카밀라는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죽은 공작 부인의 팔찌를 들고 있는 또래의 여자.

‘게다가 너무 비슷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와 소르펠 공작의 외모나 분위기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같이 길을 걷고 있으면 누가 봐도 부녀지간이라 믿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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