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꾸신 거예요?”
“뭐, 그냥. 딱히 마음에 드는 수업도 없고.”
다른 클럽도 대충 살펴봤는데 끌리는 게 없었다. 귀족들이 많은 곳답게 다들 고급스러운 주제로 클럽을 만들어 놔서 선뜻 문을 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왕 뭔가를 해야 한다면 그래도 아는 이가 있고 저리 간절히 들어오기를 바라는 이가 있는 곳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부탁도 받았고.”
“부탁이요?”
“…그런 게 있어.”
젠장… 정말, 진짜로! 먼지 한 톨만큼의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원장 할머니의 부탁을 완전히 무시하기가 영 께름칙했다.
신으로까지 추대받은 이와 척을 지어 좋을 게 없으니까. 그리고 뭐, 꼬맹이들과 한 번씩 놀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리오라 했나?’
자신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달려오던 네 살 꼬맹이가 아주 살짝 눈에 밟혔다.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려야겠어요.”
“알려? 누구한테?”
“저희 클럽분들에게요.”
“아.”
“다른 클럽보다 유독 인원수가 적어서 다들 고민이 많거든요.”
그렇겠지.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봉사 같은 데 관심을 가지겠는가.
‘이러다 들어가자마자 폐쇄되는 거 아냐?’
인기가 없는 클럽은 당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일정 인원수가 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운영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서 지원금을 딱 끊어 버리니까.
“그리고 저희 클럽에 들어올 예정인 분에게도 알려야죠.”
“예정?”
“네!”
“그런 사람이 있어?”
카밀라의 물음에 라일라의 미소가 짙어졌다.
“있어요!”
아주 확실하게 들어올 이가.
* * *
“…무슨 클럽?”
“봉사 클럽이요.”
“거기에 카밀라가 들어갔다고?”
“네!”
아르시안은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자신을 홀로 찾아온 라일라를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녀가 뜻밖의 말을 전해 온 것이다.
검술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카밀라가 다른 전공 수업 대신 클럽에 가입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봉사 클럽이라니.
‘전혀 안 어울려.’
어디 아픈가? 저번에 쓰러졌을 때 머리라도 다친 걸까?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전에 자신이 전해 준 은행 전표를 들고 괴상한 웃음을 터트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가 자기 돈까지 쓰며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의외로 저희 클럽이 인기가 많아요.”
“그런 클럽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어머, 정말요?”
라일라는 태연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페트로 님도 저희 클럽에 들어오셨는데요.”
“…누구?”
“페트로 님이요.”
라일라가 유독 페트로의 이름을 또박또박 외쳤다.
“저번에 보육원 갈 때도 카밀라 님과 페트로 님이 함께해 주셨어요.”
“둘이 같이 갔다고?”
“네! 아주 즐거워하셨죠.”
“…….”
“두 분이 같이 사탕도 나눠 주고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 주면서…….”
“…있어?”
“네?”
“거기 클럽, 아직 자리 있냐고.”
라일라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물론이죠!”
추가 회원 한 명이 확보되는 순간이었다.
* * *
“흐음,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창고라고 함부로 버려둘 수는 없으니까요.]
카밀라가 창고를 찾은 이유는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카밀라가 어릴 때 쓰던 물건부터 루드빌과 라비가 쓰던 물건까지. 그것들을 정리해 보육원에 가져다줄 계획이다.
비록 쓰던 물건들이지만 하나같이 새것처럼 깨끗했고 무엇보다 최고급 제품들이었기에 그냥 창고에 묵혀 두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돈은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아끼라고 있는 거지.’
이시아로 살 때도 그랬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건 딱 질색이다. 저번에 보육원을 찾아가며 쓴 돈이 대체 얼마였더라? 더 이상은 사절이었다.
루드빌과 라비에게도 사정을 얘기하니 바로 허락해 줬다. 두 사람 다 과거의 물건에 딱히 정을 붙여 두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보육원?’
‘어.’
‘네가?’
‘어!’
‘…가서 뭐 하는데?’
‘애들이랑 놀아.’
‘…….’
‘그 눈빛은 뭔데?’
‘보육원 아이들은 뭔 죄인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