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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77)화 (7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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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책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케이스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작은 메모.

사랑하는 우리 아들 첫 이

다른 물건에도 메모지가 하나하나 붙어 있었다.

나의 소중한 아들이 처음 입은…

우리 아들 헤만이 가장 좋아했던…

자신이 어머니께 보냈던 편지도 있었고 어릴 때 좋아하던 장난감도 수두룩했다. 처음 백 점을 받아 왔던 시험지도 보였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희미해진 물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 하나하나 다 추억이 담긴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버린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이 낡은 물건들을 다 가지고 계셨다니.

한참 멍하니 상자 안 물건을 바라보던 헤만은 그제야 미처 보지 못한 문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 상자 한 귀퉁이에 새겨져 있는 작은 문구.

나의 첫 번째 보물

“…….”

헤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상자에 새겨진 그 짧은 문구를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 * *

[…….]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바뀔 거라면서요.]

“…….”

[제 사랑을 깨닫는다면 아들이 변할 거라면서요.]

원장 할머니는 조금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카밀라에게 부탁한 건 자신의 개인 공간에 숨겨져 있던 상자를 아들에게 전해 달라는 거였다.

아들이 어릴 때 아끼고 좋아했던 물건들을 모아 둔 상자였다.

그걸 본다면 자신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아들을 향한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카밀라는 도르만과 사신 하벨을 시켜 상자를 몰래 가져오게 했다. 그리곤 원장 할머니께 직접 부탁을 받아 상자를 맡아 두었다는 거짓말을 내뱉으며 원장인 헤만에게 그 상자를 건넸다.

그런데…….

“식재료를 좀 더 싼 걸로 구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절약하세요!”

“대체 이런 쓸데없는 물건을 왜 구하신 거죠?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다 사다 놓습니까? 재정이 그리 남아도나요?”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아들인 헤만은 근검절약을 외치며 그동안 자신이 행해 온 모든 방침을 뜯어고치고 있었다.

[하아.]

원장 할머니의 입에선 연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 아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떠나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아들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네?]

“지켜보시죠.”

[무슨…….]

“그냥 좀 지켜보시라고요.”

원장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신 한숨을 내쉬는 자신을 보면서도 오히려 희미한 미소를 날리는 카밀라의 모습이 무척 의아했다.

* * *

다다다- 철퍼덕!

“으… 으아앙!”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달려가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신발 끈이 풀려 거기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원장 헤만은 그런 아이를 무심히 쳐다봤다.

“으…….”

아이 역시 울먹이는 눈빛으로 헤만을 올려다봤다.

다른 선생님들이 늘 그랬든 당연히 그가 자신을 일으켜 줄 거라, 눈물을 닦아 주며 달래 줄 것이라 생각하며 그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

하지만 헤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일으켜 주지도 않았고 일어서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그저 처음 모습 그대로 말없이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아이가 눈물을 닦아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벅.

그제야 헤만은 아이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스윽.

그는 멀쩡히 잘 묶여 있는 본인의 구두끈을 풀더니 아주 천천히 다시 묶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아이는 멀뚱멀뚱 쳐다봤다.

뭐 하는 거지?

그 시선 속에서 헤만은 묶었던 끈을 풀더니 다시 묶었다. 그 동작을 계속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도 할래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더니 풀어져 있던 자기 신발 끈을 작은 손으로 움켜쥐었다.

하지만 역시 의욕만 앞설 뿐, 처음 해 보는 일에 아이는 제대로 동작을 따라 하지 못했다.

헤만은 그런 아이를 보면서도 도움을 주는 대신 자신의 신발 끈을 다시 풀었다. 그리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끈을 묶는 행동을 반복했다.

더욱 천천히, 천천히.

“와아! 됐어요!”

결국 한참 후에야 아이는 스스로 신발 끈 묶는 걸 완성했다. 무척 어설펐지만 어쨌든 리본까지 잘 마무리가 됐다.

“이제 저도 묶을 수 있어요!”

처음으로 끈을 묶었다는 사실에 아이는 스스로를 아주 대견해했다.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헤만은 그제야 그 자리를 떠나갔다.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헤만.]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그의 어머니는 사라져 가는 자신의 아들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밤에는 여기 복도 불은 다 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게…….”

“쓸데없이 왜 이렇게 환하게 불을 켜 놓는 거죠? 마법등도 쓰면 쓸수록 충전 기간이 짧아지는 거 몰라요?”

“아, 압니다.”

“알면서도 이럽니까? 마탑에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갖다 바칠 생각입니까! 혹시 마탑 관계자세요?”

“아, 아뇨.”

“절약하세요! 절약!”

“죄송합니다.”

관리자 한 명이 서둘러 건물 곳곳에 켜 놓은 마법 등을 끄기 시작했다.

“잠시만!”

“네?”

“계단 불까지 끄면 어찌합니까?”

“아니, 방금…….”

“밤에 아이들이 돌아다니다 굴러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치료비가 더 들지 않겠습니까! 계단 불은 켜 놓으세요.”

“아, 네!”

“쯧- 여기 좀 보세요. 여기 삐죽 튀어나온 못 보이세요, 안 보이세요?”

“보, 보입니다.”

“쓸데없이 비싼 가구들 살 시간에 이런 못이나 제대로 박으십시오! 이런 거에 걸려 아이들이 다치는 거 몰라요? 치료비는 어디 땅 파서 나옵니까!”

“시정하겠습니다.”

다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구두쇠 포스가 마구 풍기는데, 그렇다고 또 아이들을 완전히 외면하는 건 같진 않고.

다들 새로 온 원장인 헤만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

그리고 그건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 * *

“이게 그자의 책상 위에 있었다고?”

“네.”

원장 할머니가 부탁한 상자를 가지러 갔다 온 도르만과 사신 하벨은 다른 것도 함께 들고 왔다.

혹시 몰라 원장인 헤만의 약점이 될 만한 게 보이면 들고 오라고 했더니 뭔가를 갖고 오긴 했다.

‘정 안 되면 협박이라도 해야지.’

그렇게라도 해서 헤만을 보육원 원장직에서 내려오게 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원장 할머니가 지금 걱정하는 건 보육원과 원생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도르만과 하벨이 들고 온 건 제법 두꺼워 보이는 서류 뭉치였다.

“음?”

서류 뭉치를 읽어 내려가던 카밀라는 잠시 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할머니, 안 되겠네.”

자식에 대해 정말 너무 모르시는데?

계획서였다. 도르만과 하벨이 들고 온 서류에는 헤만이 앞으로 보육원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주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보육원 싫어하는 거 맞아?”

“싫어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지 않았을까요?”

“그러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이상한 일이다. 그리 싫어하고 지긋지긋해하는 보육원을 본인 스스로가 맡아 운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흐음.”

분명 전보다 절약을 외치는 게 눈에 확 보이는 계획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는 손을 댄 곳이 없었다.

지나치게 사용된 부분에 대해선 아주 과감하게 손을 댔지만, 카밀라가 보기에는 합리적인 계획서였다.

“이거, 다시 돌려놓고 와.”

“알겠습니다.”

서류를 대충 다 훑은 카밀라는 도로 그걸 헤만의 책상에 가져다 놓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자신을 조금은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원장 할머니에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그냥 좀 지켜보라고. 아들을 믿어 보라고.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흘렀을 때.

[그대의 말이 맞았어요.]

카밀라를 다시 찾아온 원장 할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만의 방침이 있더군요.]

일주일 동안 곰 인형에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아들만 쫓아다니며 지켜본 그녀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처럼 아이들에게 무작정 친절하고 정을 주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마워요.]

카밀라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그녀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사신 하벨을 바라봤다.

[폐를 끼쳐 미안해요.]

“바로 떠나셔야 합니다.”

[네.]

더 이상 그의 말을 거부할 생각이 없었기에 원장 할머니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카밀라를 향해 다시 한번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 잘 부탁드려요.]

“…네?”

[그럼 이만…….]

“아니, 잠깐……!”

나한테 애들을 왜?

자신의 부름에도 빙그레 웃으며 원장 할머니는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사신 하벨 역시 별다른 말 없이 카밀라를 한 번 쳐다본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아.”

그렇게 둘이 사라진 공간을 보며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르만.”

“네, 아가씨.”

“쟤, 네 윗대가리 아니지?”

“…예?”

“널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정중하던데? 가끔 존댓말도 쓰는 것도 같고.”

“제 상관이 원래 예의가 무척 바르…….”

“…….”

“…죄송합니다.”

지그시 자신을 노려보는 카밀라의 시선에 결국 도르만은 고개를 숙였다.

“쯧.”

짧게 혀를 찬 카밀라는 다시 하벨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다시 볼 일은 없겠지?”

그러면 됐지, 뭐. 영혼 하나도 잘 보냈고.

하지만 며칠 후.

“너 뭐야?”

“하벨이다.”

“누가 이름 물어봤어! 왜 또 왔냐고!”

“내 말을 듣지 않는 영혼이 또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도와 달라는 뜻이지.”

“…….”

“자, 잠깐. 구두는 벗지 마라. 말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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