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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76)화 (7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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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소멸된대요.”

[…….]

“이대로 계속 버티시면 소멸 확정이랍니다.”

[알아요.]

“아는데 계속 이러고 계신다구요?”

[어쩔 수 없어요.]

이미 사신 하벨에게 들어 잘 알고 있던 사실인 듯 소멸이라는 단어에도 원장 할머니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 아이들에겐 제가 필요해요.]

“죽은 자가 뭘 할 수 있는데요.”

[…….]

“잠시 잠깐 아이들을 돌보는 거요?”

[전…….]

“그게 소멸보다 중요합니까.”

카밀라는 쯧 혀를 찼다.

“그 정도는 여기 계시는 선생님들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자기가 뽑아서 일을 시키고 있는 이들을 그리 못 믿으세요?”

원장 할머니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불안해서 그래요.]

“뭐가요?”

원장 할머니의 시선이 본 건물 쪽으로 향했다.

[제 아들이요.]

* * *

“네?”

“식비를 줄이라 했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원장을 대신해 새로 부임한 그녀의 아들은 30대 중반의 나름 젊은 남자였다.

그가 이곳 원장으로 부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보육원 장부를 모두 모아 확인하는 거였다. 그리고 오늘 보육원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지시를 내렸다.

“식비뿐만 아닙니다.”

그는 책상 가득 쌓여 있는 장부를 하나 집어 들며 연신 혀를 찼다.

“쓸데없이 지출되는 금액이 너무도 많더군요.”

책상에 도로 장부를 집어 던진 그는 눈앞에 서 있는 이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연신 쏘아봤다.

“여기가 귀족 가문입니까? 아이들이 먹는 식재료를 왜 이렇게 고급으로 준비하시는 거죠? 옷도 그래요. 이것보다 훨씬 저렴한 옷들도 많거늘. 쯧.”

“하, 하지만 이건 전 원장님께서 지시하셨던 상황들입니다.”

“맞아요. 아이들이 쓰고 먹고 하는 모든 것을 가장 좋은 걸로 사들이라고…….”

“그만.”

그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말을 잘랐다.

“그래서 바꾸자는 겁니다.”

새로운 원장 헤만. 그는 어머니가 그동안 해 온 운영 방침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선 사업도 정도껏 하셨어야지.”

헤만의 집안은 대대로 사업을 해 온 가문으로 남부럽지 않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만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이 부자라는 걸 제대로 체감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고? 부를 누려 볼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까.

‘대체 내가 고아와 다를 게 뭐야.’

어머니는 자신을 다른 보육원 아이들과 특별히 달리 키우지 않았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자신에게 제공했고 입는 옷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친자식이라는 이유로 순위가 더 뒤로 밀렸었지.’

그러니 다른 이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였을까?

다들 자신을 부모도 없는 고아로 취급했다. 아니라고, 난 고아 따위가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 봐야 소용없었다.

‘하물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친자식보다 보육원 아이들이 더 우선이었다.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물론이고 다른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금까지 대부분을 보육원 아이들에게 퍼부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을 때도 그랬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자신에게 하는 당부는 늘 하나였다.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

고작 그게 그분들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다른 보육원도 이러냐고? 그럴 리가. 국가에서 지급하는 지원금도 자신의 주머니에 넣기 바쁘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놈의 보육원은 가지고 있는 재산까지 아주 탈탈 털어 모두 갖다 바치고 있으니.

“오늘부터 사용되는 대금 하나하나 다 저에게 보고하십시오.”

“하지만…….”

“불만 있으십니까?”

“그게……!”

“그런 분들은 바로 나가시면 됩니다. 퇴직금은 정확히 계산해서 챙겨 드리지요.”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 대부분이 2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이들이다.

직장이기 이전에 자신의 삶을 평생 바쳐 온 공간이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곳이었다. 저 수많은 아이들을 두고 어찌 떠난다는 말인가.

다들 새로운 원장의 말에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 * *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하다니요.]

“저라도 싫었을 것 같은데.”

새로 부임한 아들에 대한 얘기를 듣던 카밀라는 연신 혀를 찼다.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원장 할머니의 모습이 오히려 답답했다.

“자기보다 다른 아이를 더 챙기는 부모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고아들의 입장에선,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분들이다. 어떻게 저리 선하고 덕이 많은 분들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봤을 땐?

‘최악이지 않나?’

어릴 때부터 고아들과 별다를 것 없이 자란 아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늘 고아들을 먼저 챙기는 부모를 바라보는 심정은?

“할머니가 잘못하셨네.”

부모의 정, 가족의 사랑 같은 걸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을 때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칭찬을 더 받았을 때, 쓰다듬을 한 번 더 받았을 때. 자신이 뭔가 특별하다고 느끼며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자존감이 올라가는 거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친부모에게서?

[전 제 아들을 사랑했어요.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사랑한 게 잘못인가요?]

대단한 분인 건 맞다. 어떻게 친자식과 남의 자식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지? 그게 가능하다니 신기할 정도다.

‘하긴.’

그러니 신으로 추대까지 받은 거겠지.

“아들도 알았을까요?”

[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는걸.”

[그야 당연히…….]

“글쎄요.”

카밀라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가족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가? 자신은 제대로 된 가족이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가끔은 말을 해야 알아먹을 때도 있지 않을까요?”

[…….]

원장 할머니는 더 이상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에게 충분히 부모로서 사랑을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다른 아이들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 준 것이 잘못된 일인가?

‘엄마! 저 이번 시험에서 백 점 받았어요!’

‘우리 아들, 정말 잘했구나.’

‘헤헤.’

‘오늘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줘야겠다.’

‘정말요?’

‘물론이지. 오늘은 일찍 같이 집에 가…….’

벌컥!

‘원장님! 제니가 드디어 글자를 다 익혔어요!’

‘세상에! 정말이니? 우리 제니, 정말 대단하구나!’

‘엄마, 저…….’

‘제니야, 오늘 원장 선생님이 아주 맛있는 걸 해 줄게. 헤만도 오늘 저녁 식사는 여기서 하고 가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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