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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75)화 (7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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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났던 그들이라도 죽은 지금은 누구보다 무섭고 피해야 할 존재가 바로 저런 이들일 테니까.

‘제노는 몰라도 데린과 페롤이 끌려가는 건 좀 그렇지.’

제노가 들었다면 너무하다며 날뛰었을 생각을 하며 카밀라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하벨을 바라봤다.

“일단은 들어나 보자.”

“……!”

여전히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지만, 하벨은 카밀라의 말에 처음으로 표정이 밝아졌다.

* * *

“으음… 이잉…….”

토닥토닥.

잠결에 칭얼거리는 아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다독이는 손길이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천으로 감싸져 있는 두툼한 손, 바로 인형의 손이었다.

스륵.

이불까지 토닥거리며 덮어 준 후 침대에서 톡- 하고 뛰어내린 건 바로 연한 갈색곰 인형이었다.

[…….]

곰 인형은 매우 익숙한 동작으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 방에 다섯 명의 어린아이가 각자의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이불을 걷어찬 채 자고 있는 아이의 이불을 도로 올려 주고,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아이는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잘 정돈해 줬다.

한쪽으로 떨어질 듯 놓여 있는 베개도 도로 잘 놓아주고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책들도 차곡차곡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 지 한 번 더 확인한 곰 인형은 능숙하게 점프해 닫혀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걸음을 총총 옮긴 곰 인형은 바로 다른 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살피며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차근차근 살폈다.

한참 후, 창밖이 짙은 푸른색으로 변화며 동이 떠오를 때가 되자 곰 인형은 작은 발을 다시 바삐 옮겼다.

달칵. 스륵.

처음 자신이 뛰어내렸던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간 곰 인형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의 품으로 쏘옥 들어갔다.

“으음…….”

토닥토닥.

[…….]

마지막으로 칭얼거리는 아이를 다독인 곰 인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곧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 * *

“그게 원장이라고?”

“그렇다.”

하벨의 말에 카밀라는 오늘 낮에 보육원에서 보았던 한 아이를 떠올렸다.

제법 컸던 곰 인형을 품에 안은 채 도도도- 달려가던 아이.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지만 아이는 금세 균형을 다시 잡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달려갔다.

그때 카밀라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넘어지려는 아이의 중심을 대신 잡아 주던 곰 인형의 모습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곰 인형 속에 뭔가가 빙의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그게 보육원 원장이었단 말이지?”

2개월 전, 보육원을 운영하던 원장이 숨을 거뒀다. 65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녀를 대신해 현재는 그녀의 친아들이 보육원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떠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게 뭐?”

그런 귀신이 어디 한둘인가? 세상에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귀신이라고 해 봐야 특별한 것도 없었다. 자신의 주변에도 넘쳐나지 않은가.

“그분은 신으로 내정된 분이시다.”

“신?”

“다음 대 아이들을 돌보는 수호신 중 한 분으로 내정되신 분이지.”

“인간이 신도 돼?”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덕을 많이 쌓으신 분 중 간혹 하급 신으로 임명되는 분들이 계십니다.”

카밀라의 의문을 도르만이 슬쩍 끼어들어 풀어 줬다.

“그래서?”

“신이 되셔야 할 분이 계속 이렇게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무시면 임명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데리고 가면 되잖아.”

자신의 주변에 있던 귀신들이 왜 갑자기 다들 도망치듯 사라졌겠는가. 저 하벨이라는 놈과 마주치기 싫어서, 무서워서 도망친 거다.

영혼을 관리하는 이들에게 잘못 걸리면 본인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대로 끌려가야 하니까.

“신으로 내정된 분은 우리 마음대로 강제할 수가 없다.”

하벨이 답답하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 찾아가 설득해 봤지만 들어 먹질 않더군.”

아이들 곁에 계속 머물고 싶다면서.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대신 설득 좀 해 달라는 거다.”

“내가? 왜?”

카밀라는 답답하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안면 없기로는 내가 더 하잖아. 그냥 네가 계속 찾아가 설득해. 뜬금없이 내가 찾아간다고 설득이 되겠니?”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분이 계신 곳이 문제다.”

“계신 곳?”

카밀라는 하벨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육원이 뭐?”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지?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나 같은 사신과의 접촉을 계속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현상을 겪게 된다.”

카밀라처럼 갑자기 영의 눈이 열려 죽은 자들을 볼 수 있게 될 수도 있고 영혼이 타격을 받아 몸이 약해질 수도 있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사신이, 영(靈)이 불안정한 아이들과 자주 접촉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분이 들어가 있는 곰 인형을 늘 아이들이 품에 안고 다닌다. 내가 계속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카밀라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거였다.

사신이 아니면서도 죽은 자를 볼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녀였으니까.

“굳이 그래야 해?”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이지?”

“본인이 싫다잖아.”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신이 되기도 싫고 떠나기도 싫고. 지금처럼 그냥 아이들 곁에 있고 싶다는데 굳이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뭐야?”

“소멸한다.”

“…뭐?”

“신으로 내정된 이가 그 직책을 끝까지 거부하면 소멸이다. 그래야 다음 신을 새로 정할 수 있으니까.”

…역시 뭐 같은 윗대가리들.

“자기들 맘대로 직책을 내려 주곤 그걸 또 거부한다고 소멸시킨다고?”

“그게 아니라…….”

“진짜 마음에 안 드네.”

순간적으로 표정이 살벌해지는 카밀라의 모습에 하벨이 움찔하며 뒤로 슬쩍 물러섰다. 다시 또 구두를 집어 드는 건 아닌지 계속 시선이 그녀의 발로 향했다.

“무, 물론 날 따라간다면 직책을 거부한다고 하여도 소멸까지 되지는 않는다. 거기선 여러 가지 선택 사항이 다시 주어지니까.”

하벨은 급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계속 현세에 머물면서 직책을 거부하는 건 소멸이다.”

“어쨌든 널 따라가야 한다는 거잖아.”

“맞다.”

카밀라는 작게 혀를 찼다. 뭔가 또 귀찮은 일을 떠맡는 듯한 기분에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와아.”

돈 좀 썼다.

“옷이 정말 고급지네요!”

좀 많이 썼다.

“이 장난감들! 그 유명한 샤이먼 공방 거 아니에요?”

…엄청 쓴 것 같다. 젠장.

“정말 고맙습니다, 카밀라 님!”

마차 가득 옷과 장난감을 실은 채 카밀라는 홀로 보육원을 다시 찾았다.

물질의 양만큼 자신을 아주 극진히 환대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카밀라는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왕 돈 쓴 거, 좋은 이미지라도 챙겨 가야지 않겠는가.

“아이들과 잠시 놀아 줘도 될까?”

“물론이죠!”

“아이들은 안 그래도 카밀라 님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보육원 관계자들의 열렬한 허락을 받은 카밀라는 선물을 둘러싼 채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아이들을 살폈다.

‘저기 있네.’

그리고 원하는 아이, 아니, 인형을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곰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새로운 장난감을 반짝이는 눈빛으로 살피고 있는 한 여자아이.

“너 이름이 뭐야?”

카밀라는 아이에게 슬쩍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처음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마녀 언니다!”

“…카밀라라고 부르렴.”

“네!”

저번에 보여 준 연기가 유독 인상 깊었던 듯 아이는 금세 자신을 알아봤다.

“인형이 귀엽네.”

“비토예요.”

“비토? 곰 인형 이름이야?”

“네!”

“너무 귀여워서 그러는데, 그 인형 언니가 잠시 살펴봐도 될까?”

“아뇨.”

“…….”

연신 웃던 아이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인형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너무도 즉각적인 반응에 카밀라는 잠시 당황했다.

“친구는 빌려주는 게 아니에요.”

…똑똑한데?

“언니도 비토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래.”

“으음…….”

“그동안 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있으면 안 될까?”

카밀라는 아까부터 아이가 눈여겨보고 있던 구체 인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진다.

“네!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비토도 좋아할 거예요.”

“그렇지.”

카밀라는 곰 인형을 건네는 아이의 손에 대신 구체 인형을 쥐여 줬다.

“…….”

순간 카밀라는 볼 수 있었다. 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곰 인형이 아이의 팔을 슬쩍 감싸듯 붙잡는 모습을.

“구체 인형한테 밀린 곰 인형님. 조용히 따라오시죠.”

[…….]

카밀라는 인형을 아이에게서 떼어 내며 소곤거렸다.

착각이겠지?

순간 인형이 부르르 몸을 떠는 것 같았지만 카밀라는 무시한 채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나오시죠.”

본 건물과 한참 떨어진 곳에 도착한 카밀라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역시나 곰 인형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기는커녕 사람처럼 중심을 잡은 채 혼자 바닥에 떡하니 섰다.

[…….]

“침묵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여전히 난 인형이오,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곰 인형을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신이 자꾸 들락거리면 아이들한테도 좋지 않다던데…….”

[…….]

“그냥 다시 사신 부를까요?”

스르륵.

그제야 곰 인형에 들어가 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긴 깔끔한 차림의 할머니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눈매도 선하고 주름도 거의 없는 것이 누가 봐도 참 고운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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