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다 영혼이 바뀌어서 그런 거였잖아.’
그땐 그런 사실을 몰랐기에 그냥 스스로가 재수 없는 아이인 줄 알았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매번 하던 말이었으니까.
‘너만 보면 재수가 없어! 퉷!’
그래서 다른 이들도 그런 거라 생각하며 입양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로 인해 열다섯 살, 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계속 지내야 했고 당연히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여기나 거기나…….”
아이들의 모습은 별다를 게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주 어린아이들은 정에 굶주린 걸 그대로 표하며 자신들을 찾아온 이들을 그저 반긴다.
반면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봉사활동을 하러 온 이들에게 선뜻 다가서지 않았다.
‘가까워져 봐야 상처받는 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니까.’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살피던 카밀라의 시선이 잠시 후 한 곳에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 몸만 한 곰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걷고 있었다.
카밀라는 아이와 곰 인형에게서 쉬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총총 걷던 아이가 순간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아니, 넘어질 뻔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아이가 그대로 다시 균형을 잡으며 바로 선다.
“헤헤.”
아이는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곰 인형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페트로의 의아한 시선이 날아들자 카밀라는 아이에게서 눈을 뗐다. 속으로 연신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어디를 가나 귀신들 천지네.’
* * *
간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아이들은 클럽 사람들과 흩어져 원하는 놀이를 했다.
라일라는 몇몇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고 페트로는 나무 검을 들고 덤비는 아이들을 상대해 주고 있었다.
다다다다.
“음?”
그때 한 아이가 카밀라를 향해 달려왔다. 조금 전에 페트로에게서 사탕을 제대로 못 받아 울음을 터트렸던 그 아이였다.
“책!”
“…읽어 달라고?”
“네!”
아이의 손에는 동화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루루 공주』. 아이에게서 책을 받아 대충 내용을 훑어본 카밀라는 피식 웃었다.
공주의 이름만 달랐지, 저쪽 세계에서 너무도 유명했던 동화 『백설 공주』와 별다를 게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설정이 똑같았다.
잠시 후.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지?”
카밀라는 책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를 연기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그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 루루 공주님이십니다.”
동화가 중반에 이르렀을 때 카밀라의 주변에는 리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덩달아 아이들과 놀아 주던 이들까지 동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네.’
너무도 유명한 동화였기에 그 내용을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다들 카밀라에게서 귀와 눈을 돌리지 못했다.
이 동화가 원래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내용이었나?
분명 아는 내용임에도, 다음 대사가 뭐가 나올지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카밀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뭣이!”
“……!”
순간적으로 살기등등한 카밀라의 음성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당장 루루 공주의 심장을 파내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카밀라는 무대에 설 때 배웠던 발성법으로 한 번에 대사를 쭉 내뱉었다. 표정까지 악독한 왕비 그 자체였다.
“으…….”
“으… 으…….”
“으아아앙!”
어라? 다음 페이지를 읽기 위해 다시 책에 시선을 주던 카밀라는 순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멈칫했다.
“무서워!”
“으앙!”
“왕비 너무 무서워요.”
“왕비 나빠!”
“왕비! 마녀야!”
…오랜만에 하는 연기에 내가 너무 오버했나?
카밀라는 볼을 슬쩍 긁적였다.
“와아…….”
그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일라는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카밀라가 연기를 펼치는 내내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카밀라는 정말 대단해요.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하죠?”
그녀 또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 적은 많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카밀라가 읽어 주는 동화는 자신들이 어설프게 하는 연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동화책이 아니라 한 편의 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게요.”
페트로 역시 조금은 감탄한 눈빛으로 카밀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말 요즘 들어 예상 밖의 모습을 자주 보여 주는 그녀다. 전에 자신이 알던 카밀라와 너무 달랐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너무 잔인해! 으앙!”
“원래 동화는 잔인한 거야.”
아이들의 울음에 답지 않게 어쩔 줄 몰라 하는 카밀라의 모습을 보며 라일라와 페트로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