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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65)화 (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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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빌이 휘두른 검에 팔이 잘리고 배가 꿰뚫리고, 아르시안의 마법에 온몸이 불타는 와중에도 적들은 끝까지 손에서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비명은 고사하고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은 채 공격만 죽어라 퍼붓고 있었다.

서걱!

결국 목이 잘리고 나서야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모든 행동을 멈춘다.

‘뭐지? 저 좀비 같은 것들은?’

인간 같지 않은 그들의 괴이한 모습에 카밀라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적들의 모습에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검에 찔려도 별 반응이 없군.”

“목을 공격하시죠. 조용해집니다.”

“화염 마법에도 멀쩡한가 보고 싶네.”

“양팔이 없으면 공격을 못 하겠죠?”

에드센 황태자와 루드빌, 그리고 아르시안과 페트로는 여전히 침착하게 적들을 계속 상대해 나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미 잔뜩 겁을 먹은 상태. 검은 들고 있지만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적들의 수가 너무도 많아.’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들은 사람들을 질리게 하기 충분했다. 대체 저 많은 사람이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난 걸까?

“크윽!”

“으윽!”

여기저기서 고통 어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적들의 검에 상처를 입는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카밀라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무슨 수로 적들을 상대하겠는가. 토끼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데, 사람을 어찌 죽이겠어.

하지만.

“제노.”

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주 정도는 감수할게요.”

[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자신이 며칠 앓아눕는 게 낫지 않겠는가.

“마음껏 날뛰어 보시죠.”

[…….]

카밀라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야, 너 뭐 해?”

라비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자신에게 다가서는 제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사양하지 않으마.]

* * *

감각이 사라졌다. 언제 두려움을 느꼈냐는 듯 온몸에 기쁨과 흥분이 가득 차올랐다.

자신의 검에 적들이 죽어 나가도 끔찍하다는 생각 따윈 전혀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미쳐 날뛰는 제노에게 모든 걸 맡긴 채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경악 어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저 모든 걸 제노에게 맡긴 채 이 상황을 즐길 뿐이다.

‘정말 맘껏 날뛰시네.’

카밀라는 실소를 흘렀다.

‘나쁘지 않아.’

후에 닥칠 고통은 잠시 잊기로 했다.

“카밀라 영애가 어떻게…….”

현재 가장 놀라고 있는 이는 당연히 페트로였다. 제이빌런 가문의 검술을 너무도 능숙하게, 자신보다 더 강렬하게 펼치고 있는 카밀라의 모습은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이미 그런 카밀라의 검술을 경험한 적이 있는 루드빌 역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련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뭐야?”

아르시안 역시 카밀라를 명하니 바라봤다.

모든 검술 선생들이 포기한 검의 둔재인 카밀라와 지금 자신들 눈앞에 있는 이가 같은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맙소사.”

“카, 카밀라 영애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넋을 놓은 채 적들을 거침없이 베어 가는 카밀라의 모습을 바라봤다.

“뭐 하는가!”

그 순간 에드센 황태자의 음성이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멍해 있던 이들은 그 소리에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겁을 먹었던 이들도 눈빛이 달라졌다.

여린 영애도 저리 싸우는데! 하물며 기사인 우리가!

엄청난 무위로 주변을 압도하는 카밀라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이들이 앞다투어 적들을 향해 검을 뻗었다.

“미친!”

유일하게 그런 카밀라를 보며 욕설을 내뱉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라비였다.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카밀라 주변으로 다가서는 적들에게 마법을 퍼붓느라!

사소한 공격은 신경도 쓰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는 카밀라의 모습이 그리 위태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저러다 몸에 상처라도 입으면 어쩌려고!

서걱!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에 라비는 급히 돌아섰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언제 다가선 것인지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적의 목이 댕강 잘린 뒤였다.

천천히 기울어지는 적의 시신 뒤로 피가 묻은 검을 든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넌…….”

“이런, 이런.”

작게 혀를 차며 말을 건네는 이는 바로 카밀라의 시종인 도르만이었다.

“이렇게 끼어들면 안 되는데 말이죠. 또 벌점이 추가되었겠네요.”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빙긋 웃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라비 님께 문제가 생기면 아가씨께서 무척 슬퍼하실 것 같아서요. 역시 피의 끌림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도르만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더 이상 전투엔 끼어들 생각이 없는 듯 라비의 곁에 서서 가만히 카밀라를 응시했다.

“…….”

라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지? 이놈은?

수많은 의문이 밀려들었지만 현 상황에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게 라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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