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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64)화 (6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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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사람들은 사냥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거지?”

살아 있는 생명체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건 생각보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포기.

몇 번 토끼나 작은 새를 향해 활을 들었다가 그대로 다시 내려놓기를 수십 번. 카밀라는 결국 깔끔히 사냥을 포기하기로 했다.

[신기하네.]

“뭐가요?”

활을 아예 바닥에 내려놓는 카밀라를 보며 유령 제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같은 유령을 상대할 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간이 큰 녀석이 저딴 걸 못 죽여?]

“이미 죽은 것을 상대하는 것과 살아 있는 걸 죽이는 건 완전 다르죠.”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칼이나 활을 던져 주고 닭이나 작은 생명체를 죽이라 명한다고 그걸 쉽게 바로 행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쪽 세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카밀라가 오랫동안 살았던 현대 사회에선 진저리를 치며 물러서는 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런가?]

“그렇죠.”

“…영애가 정신줄을 놓았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정말이었군.”

“내가 언제 정신줄을 놓았……!”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버럭 소리치며 돌아선 카밀라는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놓긴 했죠. 지금처럼 제가 가끔 정신줄을 놓는답니다.”

“…….”

삿대질이라도 하듯 사나운 눈빛으로 돌아보던 카밀라가 순식간에 표정과 말투를 바꾸었다.

그 모습에 황태자 에드센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당연한 거 아냐?’

쪽팔리지 않냐고? 쪽팔림도 살아 있을 때나 느끼는 거다. 일단 사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카밀라는 더욱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선 어쩐 일로 이곳에…….”

여긴 말 그대로 초보자 구역이다. 사냥 대회에 제대로 참가할 의지가 있는 자라면 당연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쳐야 할 장소라는 뜻이다.

“영애가 그러지 않았나. 내가 이번에 우승하기는 글렀다고.”

“그 말을 믿으십니까.”

“그럼 내게 거짓을 고했다는 건가.”

“아뇨!”

눈빛이 순간 달라지는 그를 보며 카밀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전하는 절대 우승 못 하십니다! 우승은 고사하고 크게 다치실……!”

“…….”

“…….”

…젠장.

미친놈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안 해도 될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다쳐? 내가?”

“그냥 정신줄 놓은 인간이 내뱉은 헛소리라 여겨 주십시오.”

“내가 다친단 말이지.”

이 자식이! 언제부터 내 말을 그리 잘 들었다고! 헛소리였다고 하잖아!

“재미있군.”

난 하나도 재미없어!

“뭐가 날 다치게 하는 거지?”

“헛소리였…….”

콰아앙!

그때였다.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카밀라와 에드센은 동시에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쾅! 콰앙!

그러는 사이에도 폭발음은 끊이지 않았다.

“저쪽은…….”

사냥터 중간 지점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을 만한 곳!

잠시 서로를 마주 본 카밀라와 에드센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렸다.

* * *

쾅!

“으아악!”

"커억!”

여기저기 폭발음이 계속 들려온다. 미리 폭발물을 심어 둔 듯 끊임없이 산속에서 크고 작은 폭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발에 휩쓸린 사람들의 고통 어린 비명과 그걸 수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고함으로 사냥터는 순식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어디야?’

그런 사람들 속을 헤치며 카밀라는 달리고 또 달렸다.

‘어디 있는 거야!’

모르겠다. 자신이 왜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건지.

도망쳐야 하는데, 오히려 이곳에서 더 멀리 도망쳐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럴 수가 없다.

현재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현장에 있을 한 사람의 얼굴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라비!”

있는 힘껏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디선가 응답이 들려오기를 바라며.

모르겠다. 그놈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게 정상인데.

폭발음이 들리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곳에, 폭발이 일어난 곳에 라비가 있다는 사실에 그냥 달렸다.

“라비!”

다시 이름을 불렀다.

빌어먹게도 진짜 나의 오빠인 그의 이름을!

“라비! 라비!”

카밀라는 목이 터져라 그를 부르고 또 불렀다.

“카밀라?”

“……!”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처 입은 이들을 마법으로 치료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한 카밀라는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여길 왜 와!”

보자마자 소리부터 지르는 그를 향해 카밀라는 성큼 다가섰다.

“정신 나갔냐! 폭발 소리 들었으면 도망부터 쳐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

와락!

짜증 어린 잔소리를 해대던 라비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달려오던 그대로 자신을 끌어안는 카밀라의 행동에.

“야.”

자신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연신 안도의 한숨을 토해 내는 카밀라를 라비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싫어.”

“뭐?”

“싫다고!”

“…….”

“나 두 번 다시 고아 되는 거 싫어.”

“무슨 소리야? 네가 언제 고아였던 적이 있다고.”

“너 죽으면 나 진짜 고아 되는 거 알지?”

“…….”

“그러니까 죽지 마.”

카밀라는 그의 옷자락을 더욱 꼭 쥐었다.

“죽으면 평생 원망할 거야. 저주할 거라고. 죽어서도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아서 해.”

“…아주 악담을 해라.”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라비는 결국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걱정 마. 너보다 훨씬 오래 살 테니까.”

“어? 그건 아니지.”

“뭐?”

“살기는 어린 내가 더 오래 살… 아아아아!”

라비가 카밀라의 볼을 쭈욱 늘어트렸다. 고통을 호소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카밀라의 머리를 가볍게 툭 친 그는 다시 환자들에게 향했다.

“내려가 있어. 위험하니까.”

두 사람이 그러는 사이에도 사냥터 곳곳에서 폭발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대체 폭발물을 얼마나 많이 심어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내려가다 폭발에 휘말리면 어떡해?”

“…그냥 여기 있어라.”

“응.”

카밀라는 라비 곁으로 조르륵 달려가 팔을 걷어붙이고 그가 환자를 치료하는 걸 옆에서 도왔다.

“흐음.”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녀와 함께 이곳으로 달려온 에드센 황태자는 재미있다는 듯 그런 카밀라를 지그시 바라봤다.

* * *

‘이거였나?’

에드센 황태자가 사냥 대회에서 크게 다쳤다는 얘기가 나돌았던 이유가 아마도 이런 상황 때문이었나 보다.

‘이건 뭐, 황태자 혼자 다친 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잖아?’

아무리 수도를 오래 떠나 있었다고 하지만 매번 일어난 일이 분명한데 이 사건에 대해 카밀라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게 신기했다.

단지 사냥 대회에 참가한 에드센 황태자가 크게 다쳤다는 말을 우연히 전해 들은 게 전부다.

‘역시 왕따도 이런 왕따가 없었던 거구나.’

하긴, 친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어야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 듣기라도 하지.

하인이고 시녀들이고 하나같이 카밀라를 애물단지로 취급했으니. 뭔 제대로 된 소식이 그녀의 귀에 전해졌겠는가.

“폭발은 멈춘 것 같아.”

더 이상 폭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신음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치료 마법을 시전하는 라비 곁으로 환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에드센 황태자를 중심으로 폭발에 휩쓸리지 않은 이들이 흩어져 생존자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루드빌과 페트로, 심지어 아르시안까지 손을 보탰다.

아르시안 역시 치료 마법을 쓸 수 있었기에 환자를 데려오면서 치료도 함께했다.

“이상해.”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카밀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왜 아무도 안 오지?”

“뭐?”

“이런 큰 폭발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안 오잖아.”

사냥터 아래쪽에 수많은 병사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치료사들이 여러 사고를 대비해 이른 아침부터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있는 곳을 찾아오는 이가 현재 아무도 없다.

심지어 상처를 입지 않은 이들 중 일부가 도망치듯 초입 지역으로 향했음에도 말이다. 그들이 소식을 전해도 벌써 전했을 시간이지 않은가.

[크르르…….]

“킹?”

카밀라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자신이 메고 있는 가방에 시선을 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얌전히 있는 듯 없는 듯 있던 신수 킹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윽.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오라버니?”

루드빌. 방금까지 생존자를 찾는 일을 돕던 그가 갑자기 자신의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도 하던 일들을 멈추며 동시에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지?”

“검을 드셔야 할 듯합니다, 전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많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기이한 모습이었다. 검은 바지에 하얀색 윗옷을 똑같이 차려입은 이들은 이미 온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검에도 이미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상태였다.

‘뭐야?’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로 피 칠갑을 한 수많은 이들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저것들 뭐야?”

언제 온 것인지 아르시안이 카밀라 곁으로 다가섰다.

“딱히 좋은 이들은 아닌 것 같군요.”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페트로의 음성도 들려왔다.

“라비. 카밀라 곁을 지켜라.”

루드빌은 그 말을 끝으로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아르시안과 페트로가 따랐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전투가 시작됐다.

그 모습을 카밀라는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을 죽이고 죽이는 모습을 코앞에서 보게 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땅에 못이 박힌 것처럼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야, 괜찮아?”

공격 마법을 간간이 퍼부으며 사람들을 돕던 라비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하지만 카밀라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끔찍한 장면에 온몸이 그냥 얼어붙어 버렸다. 순식간에 퍼져오는 피 냄새에 머리가 어질했다.

[저놈들 이상한데?]

그때 유령 제노의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반응이 없어.]

“반응?”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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