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를 내려다보니 익숙한 존재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킹.”
카밀라는 다른 이들이 보기 전에 얼른 킹을 안아 들었다.
저택에 두고 오려 했지만 낑낑거리며 계속 울어서 결국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언제 나왔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르펠 공작의 안주머니 속에 있었는데.
“갑갑해도 좀 참아.”
[규우!]
“다른 사람들한테 으르렁거리면 안 돼. 혼낼 거야.”
[규…….]
알겠다는 듯 살짝 풀이 죽은 킹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밀라는 사선으로 메고 있는 작은 가방에 킹을 쏙 집어넣었다. 입구를 살짝 연 채.
“오랜만이군.”
…젠장. 엿 됐다.
그사이 곁으로 다가선 한 사람을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쌍욕을 날렸다. 물론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자신의 곁에 다가온 이가 바로 1황자 에드센이었으니까.
‘재수 없는 놈이 얼굴은 잘생겨서.’
황금빛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그는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끄는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선한 눈매와 웃음기가 가득한 입가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존재했다.
‘그럼 뭐 해? 성격은 외모랑 완전 딴판으로 노는데.’
아르시안과 페트로를 반씩 섞어 놓은 놈이라고나 할까?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성격은 아주 지랄 맞다.
자기 눈에 거슬리는 인간을 절대 그냥 못 본다. 실실 웃으며 사람 뒤통수를 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
“얼굴 보기가 참 힘들군. 저번 황실 파티에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몸이 좀 좋지 않았던지라.”
“난 또, 뭔가 재미있는 사고를 치고 또 외출 금지를 당했나 했지.”
“…….”
사고는 뭔 사고! 내가 맨날 영애들 머리채 잡고 싸우는 인간인 줄 아니!
‘…좀 싸우긴 했지.’
그렇다고 내가 매번 방에 갇히는 건 아니, …좀 자주 갇히긴 했나?
에이씨. 카밀라야, 카밀라야! 너 대체 왜 그러고 산 거니!
“아니면… 내가 보기 싫어 안 왔던 건가?”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알면 좀 꺼져 주면 안 되겠니?’
이게 문제다. 내가 그를 싫어하고 그도 날 싫어한다는 사실을 둘 다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
다만, 난 그걸 대놓고 표현할 수 없다는 거! 반면 저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그걸 표현해 댄다는 거!
‘이래서 저 인간과 마주치는 걸 꺼렸던 거라고.’
이런 속 터지는 상황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요즘 영애에 대한 재미있는 소문이 돌던데.”
“소문이요?”
“예지 능력이 생겼다지? 점괘로 사람의 과거도 볼 수 있고.”
“그건…….”
“어때? 나한테서도 뭐가 보이나?”
에드센이 지그시 카밀라를 바라봤다.
“매번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전하. 아주 가끔 특정 사건이나 인물이 예고 없이 보일 뿐이지요.”
“흐음.”
에드센의 표정이 심드렁해졌다.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이라고나 할까? 표정 하나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도 참 재주다.
“그래도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한 가지?”
“이번 사냥 대회 우승자가 전하는 아니라는 것이죠.”
이때 열린 사냥 대회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라일라를 괴롭히던 때라 소르펠 공작에게 엄청 혼이 난 후 수도에서 쫓겨났었기 때문이다.
수도를 떠나 있으니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들도 없고 거의 고립된 생활을 했었다.
다만 한 가지, 사냥 대회에 참가한 황태자가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소식은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어쩌다 다쳤는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소식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아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자신을 매번 긁는 그가 다쳤다는 소식에 오히려 카밀라는 속으로 무척 기뻐했었다.
어쨌든 사냥 대회에 1등을 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다친 인간이 무슨 수로 우승을 하겠는가.
너도 약 좀 올라 보라는 듯 카밀라가 빙그레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에드센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침묵이 길어져 가는 걸 보며 카밀라는 속으로 살짝 떨었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표정만은 최대한 여유를 부렸다.
“그거 아나?”
“네?”
“전에는 말이야.”
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한층 낮췄다. 입가에는 언제나처럼 천사 같은 미소를 띤 채.
“이유 없이 내 앞에서 벌벌 떠는 그대를 보고 있으면 괜히 검을 뽑고 싶은 충동이 일거든.”
야. 이 미친놈아!
“그런데 이상하지?”
그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지금은 그래도 굳이 검까지는 들고 싶지 않아. 왜지? 영애는 그 이유를 아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친놈이다. 미친놈!
‘도르만! 도르만, 이 자식 어디 갔어!’
나 아무래도 저놈 뒤통수 한 번 칠 것 같은데! 내 방패 어디 갔니?
카밀라는 급히 주변을 휙휙 살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저 멀리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있는 도르만이 보였다.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너 당장 안 와?’
도리도리.
카밀라의 눈빛을 읽은 그가 거세게 고개를 젓는다.
“뭐, 자네의 예언이 맞나 안 맞나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군.”
에드센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갔다.’
미친놈이 갔다!
‘아우.’
뭐 때문에 다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크게 다쳐라!
카밀라는 속으로 연신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행여 다시 마주칠까, 그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도르만.”
“헉!”
잠시 추격전이 벌어졌다.
* * *
“혼자 괜찮겠니?”
“걱정 마세요.”
“오라비들과 같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라버니들은 더 큰 사냥감을 찾으러 가셔야죠. 저처럼 초입 부분에 계실 분들이 아니잖아요.”
“흐음.”
사냥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식이 끝난 후 두 공작은 사냥터를 떠나야 했다. 그들이 참가하는 순간 대회 우승자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젊은이들에게 우승을 양보하기 위해 소르펠 공작과 제이빌런 공작은 따로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었다.
“조심하거라.”
“네.”
소르펠 공작은 사냥 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카밀라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영 불안한 듯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킹은 네가 데리고 있어야겠구나.”
소르펠 공작이 데리고 가려고 하니 가방 속에서 발톱까지 세워 가방을 놓지 않았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소르펠 공작은 피식 웃으며 카밀라에게 킹을 맡겼다.
아직 성장 중이라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신수다. 킹이라도 카밀라 옆에 있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소르펠 공작이 사냥터를 떠나갔다.
“호오.”
홀로 남은 카밀라는 주변을 잠시 살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수많은 영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들이 보였다. 루드빌과 라비, 그리고 페트로가 영애들에게서 뭔가를 잔뜩 건네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본 카밀라의 입꼬리가 자꾸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아주 좋아.’
최근에 판매를 시작한 마력석 브로치.
보호 마법과 그 외 각종 마법이 새겨진 마력석 브로치를 영애들이 자신이 흠모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수요가 아주 어마어마했다.
비록 세 사람이 영애들의 선물을 독식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다른 영식들이 부러워하든, 질투를 하든 말든, 영애들이 마력석 장식물을 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저게 다 얼마야?’
마력석 자체도 비싼데 가공을 한 마력석 브로치는 무척 고가의 물건이었다.
“저기…….”
“음?”
그때 누군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섰다. 고개를 돌리니 그리 낯설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
카밀라는 이내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그녀가 아르시안에게 주전자 물을 있는 대로 다 퍼부었던 날, 눈이 확 돈 아르시안에게 두들겨 맞고 있던 그 학생이었다.
‘백작가의 아들이라고 했던가?’
그 이후로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걸 것처럼 다가오다 급히 돌아서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영애,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그때 정말 고마웠……!”
퍼억!
‘퍽?’
말을 내뱉던 이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동그래진 카밀라가 시선을 내리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남자의 몸을 잘근잘근 밟고 있는 이.
“…너 뭐 하니?”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게 있어서.”
아르시안이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급히 도망치듯 사라졌다.
“…….”
카밀라는 어이없는 눈빛을 아르시안에게 보냈다. 성질 좀 죽었나 했더니 여전하다.
“네가 이러니까 인기가 없지.”
“내가 뭐?”
“저 사람들 보며 뭐 느끼는 거 없니?”
카밀라는 여전히 수많은 영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두 오라비와 페트로를 가리켰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아주 깨끗한 옷 상태, 브로치는 고사하고 손수건 하나 영애들에게서 받지 못한 아르시안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어찌 이리 도움이 안 될까.”
“뭔 도움?”
“마력석 브로치를 하나라도 받을 정도의 인기는 좀 가지고 있으면 안 되니?”
“그딴 거 받아서 뭐 해?”
“뭐 하긴!”
카밀라는 나무라듯 소리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가리켰다.
“저게 다 돈이잖아.”
내 돈!
“…받을 걸 그랬나.”
“뭐?”
“아냐.”
영애들에게 브로치를 받는 세 사람을 보며 흐뭇해하는 카밀라의 모습에 아르시안은 피식 웃었다.
특히 페트로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카밀라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났다.
“그런데 너, 사냥은 할 줄 알아?”
“그럼!”
카밀라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럼은 무슨 그럼!’
카밀라는 활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계속 반복하는 중이었다.
현재 그녀가 잡은 사냥감은 제로.
‘미친 거 아냐? 대체 저걸 어떻게 쏴?’
사실 활을 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에 배웠던 실력이 남아 있어 움직이는 물체를 겨냥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잘하면 맞출 수도 있을 듯했다.
‘다만…….’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를 쫓아 활을 들었다가도 도저히 활시위를 놓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