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땐 왜 그렇게 잘 먹었대?’
아르시안의 죽은 동생, 시에르에게 주려고 가져온 음식들을 결국 아이가 그냥 떠나 버려 아르시안에게 다 먹였었다.
그땐 맛있게 잘 먹더니, 이번엔 왜… 아.
‘우리 집 주방장 솜씨가 나쁘지 않긴 하지.’
하지만 라일라의 음식 솜씨도 그에 못지않다. 요리사 유령 페롤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려 인정할 정도인걸?
‘이상한 놈.’
입맛도 은근히 까다롭나 보네.
당장이라도 입에 들어온 쿠키를 뱉어 내고 싶어 하는 아르시안에게 물을 건네며 카밀라는 더 이상 그에게 라일라의 디저트를 권하지 않았다.
“흐음.”
그런 아르시안의 모습을 보며 라일라는 묘한 미소를 흘렸다.
“참! 얘기 들으셨어요?”
“무슨 얘기?”
잠시 후 라일라가 다른 화제를 꺼내들었다.
“사냥 대회요.”
“사냥 대회?”
“네! 황실에서 사냥 대회를 개최한대요!”
* * *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 인간을.
‘황태자 새끼.’
라비만큼 카밀라의 인생에 도움이 안 되던 놈! 실실 웃으며 사람 속을 있는 대로 긁던 재수 없는 새끼!
“아우.”
결국 그 인간과 마주해야 하는 건가?
이번 황실에서 열리는 사냥 대회의 주최자가 바로 에드센 드 페이블러, 이 제국의 황태자였다. 이번 그의 생일을 맞이해 사냥 대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타국에서도 귀한 손님들이 많이 참석한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 황태자라는 인간이 자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다는 거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써 황태자의 인장까지 꾹 찍힌 초대장이 현재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뭔 생각이래?”
그가 카밀라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대놓고 싫은 티를 팍팍 내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게다가 지금껏 단 한 번도 그가 카밀라에게 이런 초대장을 따로 보낸 적이 없었다. 소르펠 공작이나 루드빌, 라비에게는 매번 초대장이 발송되지만 카밀라의 이름은 쏙 빼놓기 일쑤였다.
“짜증 나.”
다른 인간이라면 무시라도 하지.
라비는 뒤통수라도 힘껏 때려 보기라도 했다. 하지만 황태자한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목이 댕강 잘리고도 남을 일이니까.’
그 더러운 성질머리에 황족 모독죄를 물어 당장 자신을 죽이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나마 최근 사망 엔딩에서 좀 멀어졌나 했더니…….’
갑자기 이런 복병이 출몰할 줄이야.
‘카밀라야, 카밀라야.’
넌 대체 인간관계가 왜 이 모양이니? 어찌 사방에 다 적뿐이냐!
똑똑.
“아가씨, 시원한 아이스티를 좀 만들어 왔…….”
마침 문을 열고 시종 도르만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흠칫했다. 자기를 지그시 노려보는 카밀라의 시선에.
“너 때문이야.”
“예?”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새삼 열이 뻗쳤다. 카밀라의 인간관계가 개떡 같은 게 다 저놈 때문인 것 같아 속이 부글거렸다.
‘아니지!’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저놈 때문이잖아! 사람들이 카밀라를 싫어하는 이유가 다 저 새끼가 영혼을 잘못 처넣어서잖아!
“아, 아이스티 말고 다른 거 갖다 드릴까요?”
“도르만.”
“넵!”
그래도 눈치가 있는 듯 바짝 군기가 든 대답이 들려왔다.
“이번 사냥 대회에 너도 간다.”
“예?”
“사냥 대회에 너도 나 따라 참석하라고.”
“저, 저도요?”
“방패 하나는 챙겨 가야지.”
“방패라 하시면…….”
“내가 황태자 새끼 때문에 열받아서 빡 돌면 어떡해?”
“예?”
“빡 돌아서 그놈 죽이겠다고 마구 설치다 오히려 그 새끼가 날 죽이려 들면 네가 방패가 되어 먼저 죽어 주는 거야. 그사이 난 정신 차리고 도망갈 테니까. 오케이?”
“하, 하하… 무슨 그런 농담을…….”
“…….”
“…농담이시죠?”
점점 울상이 되어 가는 도르만을 외면하며 카밀라는 말없이 아이스티를 쭉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