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흐흐.”
“제발 그렇게 좀 웃지 마.”
세프라 공작이 마력석을 판 첫 달 수입금을 보내왔다.
전표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고작 한 달 판 금액이 이 정도라니!
‘아직 마법 아이템은 제대로 팔지도 않았는데!’
저번 제이빌런 공작의 생일 파티에서 선보인 마력석 브로치는 현재 문의가 쇄도 중이었다. 아직 판매를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즉, 마력석만 판 금액이 이 정도라는 거다! 마력석 아이템까지 팔기 시작하면 얼마나 큰돈이 들어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으흐흐흐.”
“그렇게 좋냐.”
“그럼 좋지, 싫냐?”
“그깟 돈이 뭐라고.”
“어디 가서 뒤통수 세게 맞을 소리하고 앉아 있네. 하긴. 돈이 없어 본 적이 없으니 저딴 소리를 하지.”
“누가 들으면 넌 가난하게 산 줄 알겠다.”
“나? 어릴 때 엄청 가난했는데?”
“뭐?”
“까먹었어?”
카밀라는 피식 웃었다.
“내가 공작가에 들어온 건 일곱 살 때야. 그전까진 엄청 가난했는데?”
거짓이 아니다. 카밀라의 어머니가 소르펠 공작을 만나기 전까지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소르펠 공작과 그녀의 어머니가 연이 닿았다.
가난한 상황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뻗은 어머니의 고운 마음씨와 아름다운 외모에 소르펠 공작이 홀딱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소르펠 공작이 돈 좀 있어 보여서 도와준 것 같지만.’
가족들 먹일 음식 살 돈도 없던 상황에서 비싼 약까지 구해 와 그를 치료한 걸 오로지 순수한 선의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가 남루한 차림새로 길가에 쓰러져 있었어도 그렇게 도왔을까?
어쨌든 어머니의 선택은 옳았다. 가난에서 벗어났으니까.
“4일 동안 물만 먹은 적도 있어.”
이건 카밀라가 아니라 이시아로 살 때의 일이다.
그 망할 놈의 아버지라는 인간이 가출해서 두 달 가까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엄마도 다니던 공장에서 잘리고 정말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던 시절. 그때 배고픔을 물로 채우며 버텨야 했다.
“그…….”
아르시안은 당황한 듯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소르펠 공작의 의붓딸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에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뭘 당황해? 이젠 난 갑부인걸.”
카밀라는 전표를 보며 다시 히죽 웃었다.
“자.”
“어?”
잠시 후 그녀는 전표를 도로 아르시안에게 건넸다.
“공작님께 드려.”
“이걸 왜? 그 인간이 너 주라고 한 거라니까.”
“일단 들고 계시라고 해. 나중에 찾아뵐 테니까.”
카밀라는 새로운 계획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마력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았고 계속해서 세프라가에 판매를 맡기는 건 문제가 있었다.
지금이야 세프라 가문에서 운영하는 상회를 통해 마력석을 공급하고 있지만, 수요자들이 더 늘면 관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에 세프라 공작이 의견을 하나 냈다. 따로 마력석만 파는 상회를 만들어 카밀라가 직접 운영해 보는 건 어떠냐는 것이었다.
물론 장사에 경험이 없고 여전히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 카밀라를 대신해 믿을 수 있는 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를 가짜 상회 주인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냐면서.
‘나쁘지 않아.’
한동안 그 제안을 고민하던 카밀라는 결국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집사 유령 데린의 도움이 무척 컸다. 이런저런 정보가 많은 그의 결론도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충고를 해 줬기 때문이다.
‘이건 기초 자금.’
아르시안에게 다시 건넨 저 자금이 상회를 만드는 기초 자금이 될 것이다.
아마 돈을 돌려받게 된 세프라 공작은 바로 카밀라의 뜻을 알아챌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아르시안의 시선이 카밀라 옆으로 향했다.
“어찌 넌 나보다 저런 것들을 더 자주 달고 다니는 것 같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카밀라 옆을 아까부터 서성이고 있던 유령 제노가 있는 곳이다.
유령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기이한 존재가 카밀라 옆에 붙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볼 수 있기에 아르시안은 못마땅한 시선을 제노에게 보냈다.
[뭐야? 저놈도 날 볼 수 있는 거야?]
“그러게 제가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카밀라는 쯧 혀를 차며 제노를 타박했다. 루드빌과의 대련 후 이젠 연무장이 아니라 카밀라 곁을 연신 맴도는 그였다.
다시 또 검을 쓸 기회가 오지 않을까 계속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미쳤냐?’
내가 그 짓을 또 하게!
지금도 근육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조금만 힘을 줘도 찌릿찌릿하다. 그러니 제노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 곱겠는가.
“뭐야? 네가 싫다는데도 따라다니고 있는 거야?”
“어?”
카밀라의 대답에 따라 당장이라도 제노를 없애 버릴 것처럼 아르시안이 은근한 살기를 흘렀다.
“아냐. 잘 아는 유령이야.”
카밀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넌 저런 것들 보는 게 아무렇지 않아?”
카밀라의 말에도 아르시안은 쉬이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제노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전히 곱지 않았다.
“딱히.”
카밀라는 슬쩍 제노가 있는 곳을 가리며 말을 이었다. 제노가 아무리 얄밉긴 해도 소멸은 좀 그렇지.
“이런 이들은 괜찮아.”
어릴 때부터 귀신들이야 늘 보던 거라 딱히 무섭거나 불편하다 여긴 적은 없다. 귀찮거나 짜증을 일으키게 한 적은 많지만 말이다.
“힘들었던 적은 없어?”
“없을 리가.”
딱 한 번, 자신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무척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큰 사고가 있었거든.”
“사고?”
“응, 폭발 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촬영을 위해 급히 차를 타고 움직였을 때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도로를 달리던 가스차가 폭발한 것이다.
‘하필 폭발이 일어난 주변에 버스들이 즐비했던지라.’
다행히 자신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당연히 죽음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귀신들이 거리를 가득 매웠다.
아비규환.
검은 손에 이끌려 땅 밑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질러대는 처절한 비명 소리. 스스로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울부짖던 수많은 사람들.
손발이 터져 나간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 슬피 울던 아이와 머리가 반쯤 사라진 채 그런 아이를 찾아 거리를 헤매던 엄마.
그렇게 수많은 귀신들을 보며 카밀라는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저주했다.
“정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어.”
“…….”
[…….]
아르시안과 제노 둘 다 입을 꾹 다물었다.
가볍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눈빛이 아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들이 쉽게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카밀라 영애!”
그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라일라다. 그녀가 언제나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총총 달려왔다.
“여기 계셨, 아…….”
반갑게 카밀라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녀는 아르시안을 발견하곤 멈칫했다.
“안녕하세요.”
라일라의 인사에도 아르시안은 별다른 말이 없다. 아니, 아예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성질머리하고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싸가지 만땅 포스를 풍기는 아르시안을 보며 카밀라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라일라와는 이미 몇 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거늘,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리 죽고 못 살더니.’
예전 삶에선 매번 라일라에게 목을 매던 인간 중 한 명이 바로 아르시안이다.
세프라 공작이 죽고 난 후 미친 듯이 폭주하던 그를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었던 진정제 같은 존재가 바로 라일라였다.
‘역시 세프라 공작을 죽인 게 저놈 같지?’
전의 삶에선 지금이 세프라 공작이 죽고도 한참 지나 있을 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세프라 공작은 멀쩡하게 살아 있고, 아르시안과 세프라 공작의 관계도 나름 잘 유지되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체스를 두게 하길 잘한 것 같아.’
관계가 더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으니 말이야.
솔직히 세프라 공작과 아르시안 사이가 나쁘든 말든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단지 사업이 고달파질 뿐.
과거처럼 아르시안이 세프라 공작을 죽이기라도 하면? 그럼 내 사업도 올 스톱이 되는 거잖아!
‘그건 안 되지.’
그래서 체스를 권했다. 둘 사이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바람 덕인지 세프라 공작이 여전히 잘 살아 있었다. 그럼 된 거지, 뭐.
‘혹 그게 원인인가?’
라일라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르시안을 보며 카밀라는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폭주하지 않으니 라일라라는 진정제도 필요 없는 게 아닐까?
“짜잔.”
아르시안이 그러거나 말거나 라일라 역시 그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그의 냉대에 익숙한 그녀 또한 카밀라에게만 방긋방긋 웃어 주며 자신이 들고 온 것들을 펼쳐 보였다.
“카밀라 영애가 좋아하는 디저트들이에요!”
오늘도 먹음직한 케이크와 파이, 쿠키들이 자리에 쫙 깔렸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디저트 중에 사과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마치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카밀라가 사과를 싫어하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많이 드세요.”
“너 때문에 살찌겠어.”
“카밀라 영애는 좀 찌셔도 돼요.”
매니저였던 현석 오빠가 들었음 기절할 소리를 잘도 해댄다. 하긴, 이젠 연예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좀 찌면 어때?
그리고 지금껏 본 카밀라는 살이 잘 찌지 않는 축복받은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었다.
“먹을래?”
파이 하나를 입에 넣던 카밀라는 다른 디저트를 들어 아르시안에게 건넸다.
“단거 안 좋아해.”
뭐래?
“전에 내가 싸 온 거 너 혼자 다 먹었잖아.”
“그거야 네가 싸……!”
“어?”
“…됐어.”
“되긴 뭐가 돼.”
그땐 잘만 먹더니. 답지 않게 뭔 체면치레래? 너야말로 살 좀 쪄야 한다고!
“자! 아, 해.”
“뭐? 됐… 읍!”
쿠키 하나를 그의 입에 쏙 집어넣었다.
‘어라?’
정말 싫어하나?
쿠키를 씹으며 오만상을 찌푸리는 아르시안의 모습에 카밀라는 눈을 연신 끔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