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신이 죽자고 이룬 일을 저 녀석은 너무도 쉽게 해냈다.
공부하기 싫다며 매번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이 늘 성적은 자신보다 좋았다. 검술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 없이 지껄여 대는 녀석의 곁엔 늘 사람이 넘쳐났다.
“왜…….”
아버지의 관심도, 어머니의 사랑도!
‘사람들의 칭송까지!’
모두, 모두 제노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수호의 검까지 그를 선택했다.
‘내가 형인데…….’
내가 장자인데!
자신의 손에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검을 보며 그는 다시 한번 절망했다.
“너만 없었으면…….”
“…….”
“너만 없었으면!”
순간 검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곳에 제노가 서 있다는 걸 알면서도.
푸욱!
검이 너무도 쉽게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미, 하이…….”
동생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은 미하이의 손이 벌벌 떨렸다. 한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서던 제노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미하이는 그대로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수호의 검이 들려 있었다.
주인을 잃고 이미 싸늘히 죽어 버린 수호의 검이.
* * *
“그때 죽은 사람, 형인 미하이가 아니라 동생인 제노였던 거죠?”
그래야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수호의 검을 찾은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검의 주인이 아닌 이유.
제이빌런가의 가주였던 이가 검에 찔려 죽은 모습으로 연무장을 돌아다니는 이유.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되는 거다.
[맞아.]
역시나 제노가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그때 죽은 건 나야. 형이 아니라.]
“어째서…….”
수호의 검을 찾으러 간 절벽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걸 본 자는 아무도 없다. 굳이 제노 행세를 해 가며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냥 미하이 본인이 검을 찾았다고 했어도 됐을 텐데?
‘그런데 왜?’
그는 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제노 행세를 했을까?
[스스로에게 내린 벌이지.]
“벌이요?”
[자기가 죽인 자의 이름을 평생 듣고 사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자기가 죽인 사람의 이름으로 부른다. 평생 자기가 저지른 죄를 잊지 못하게 말이다.
[그 녀석은 그걸 선택한 거야.]
찰나의 끔찍한 분노에 휩싸여 저지른 살인의 대가를 그는 그렇게 평생 짊어지고 살았다.
“그게 가능해요?”
아무리 쌍둥이라지만.
“어떻게 평생 다른 이로 살 수가 있어요?”
그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아버지는 아셨어.]
“……!”
역시나.
아무리 닮았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부모까지 자식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침묵하셨지.]
이미 한 아들은 죽었고 한 아들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제노의 아버지는 침묵했다. 분명 모든 상황을 짐작했겠지만 남은 아들마저 잃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1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잖아.]
제노와 미하이가 검을 찾겠다고 집을 떠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의 성격이나 행동이 조금 변했다 하여도 쉽게 눈치채는 이가 없었다.
[재밌지 않아? 죽은 내 이름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정작 살아 있던 미하이 이름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게.]
제노는 씁쓸하게 웃었다.
검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 제노… 아니, 미하이는 아주 좋은 가주였다.
인망도 두터웠고 사람들에게 늘 선의를 베풀었으며 가문을 누구보다 잘 이끌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칭송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만 미하이가 아닌 제노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얘기를 꺼내는 제노의 표정은 무척 담담했다. 분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야 억울하고 원통하고 화도 났어.]
카밀라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제노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냐며 미하이를 저주하고 쌍욕을 엄청 퍼부었지.]
하지만.
‘제노 님이 돌아오셨어!’
‘정말 다행이야! 제노 도련님이 살아오셔서!’
‘제노 님까지 잘못되셨으면 어쩔 뻔했어.’
미하이가 스스로를 제노라 밝히기도 전에 사람들은 홀로 살아 돌아온 이를 당연히 제노라 여기며 반겼다.
죽은 게 제노가 아니라 미하이라서 다행이라며.
‘네, 미하이는 죽었어요.’
[더 미워할 수가 없더군.]
그때야 알았다. 미하이가 평생 어떤 시선과 말에 둘러싸여 살았는지.
‘왜 또 너냐고!’
그가 수호의 검을 찾은 자신을 향해 왜 그토록 원망 어린 말들을 터트렸는지.
[난 그 녀석이 제 죗값을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해.]
자신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 미하이에게 더 이상 미움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연민을 느꼈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놈.]
자식에게조차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끝까지 거짓된 이름으로 죽은 녀석을 어찌 더 미워하겠는가.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그렇긴 했죠.”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라는 건 아주 많은 힘을 가진 녀석이니까. 커다란 분노도 사라지게 만들 만큼.
다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그러면 왜 아직 여기에 계세요?”
이미 미하이는 오래전에 죽었고 딱히 그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아직 이곳에 남아 저러고 있는 걸까?
[검이 좋아서.]
그가 다시 히죽 웃었다.
[검이 너무 좋아서 못 떠나겠어.]
그의 시선이 어느새 다시 연무장으로 향했다.
[제대로 휘둘러 본 적이 없거든.]
“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검의 천재라 불렸던 그다. 제이빌런가의 검술을 만든 당사자가 바로 그이지 않은가.
검을 잡은 이후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인물로 유명한 그가 제대로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없다니.
[적수가 없었으니까.]
그가 히죽 웃었다.
[날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이 없었거든.]
“와…….”
…재수 없어.
반박을 할 수가 없어서 더 재수 없다.
검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마스터 자리를 열아홉 살이라는 믿기 힘든 나이에 이룬 그는 정말로 적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도 마스터가 아니었기에 제노의 말대로 적수가 없어 제대로, 맘껏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소드마스터가 그리 흔한 존재도 아니… 음?’
잠깐만.
‘흔한 존재가 아닌 게 맞나?’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하나, 둘, 셋… 어라?
‘많은데?’
같이 살고 있는 인간 중에도 둘이나 있잖아?
“…….”
카밀라는 여전히 검을 휘두르는 이들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제노를 쳐다봤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잘생김이 묻긴 했지.]
“웃기지도 않은 아재 개그는 그만 하시고요.”
카밀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 후회할 행동인 건 알지만…….
“제노.”
[응?]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실래요?”
[…뭐?]
* * *
“대련?”
“네.”
“…너와?”
“네, 저랑요.”
대련을 신청했다. 누구에게? 루드빌에게.
물론 주변에 마스터들은 넘쳐났다. 소르펠 공작도 있고 세프라 공작도 있고 게다가 마스터에 거의 근접한 아르시안까지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카밀라가 루드빌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라면 내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어떤 말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는 그이니까.
지금도 다른 이라면 비웃음을 날리거나 어이없어했을 일인데 루드빌은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네?”
“나와 대련을 하려는 이유가 뭐야?”
“제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요.”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바로 대답을 내뱉었다.
'한계는 개뿔.’
내 한계야 루드빌이 휘두르는 검 한 방에 날아갈 수치지.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루드빌은 진지하게 그 말을 들어줬다.
“다칠 수도 있어.”
“검을 잡은 자가 다치는 걸 두려워하면 쓰나요.”
“…….”
아우, 그렇게 진지하게 쳐다보면 양심이 콕콕 찔리는데. 속이야 어쨌든 카밀라의 표정만은 태연했다.
“…그래.”
결국 루드빌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훈련이 모두 끝나 텅 비어 있는 연무장이었다.
카밀라가 자신의 검을 들고 연무장으로 들어섰을 때 이미 루드빌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연무장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검을 자연스럽게 늘어트린 채 연무장에 서 있는 루드빌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미쳤지, 미쳤어.’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거야, 그치?
‘내가 퇴마사도 아니고.’
뭔 귀신의 한을 풀어 주겠다고 이딴 짓을 저지를 생각한 건지.
‘내가 이렇게 기분파였던가?’
아련하게 연무장을 바라보던 제노의 눈빛을 끝까지 외면했어야 했거늘!
“제노.”
카밀라는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제노를 불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것도 자신이 좋다고 엎지른 물이다. 주워 담긴 늦었다.
“준비됐어요?”
[…거절하지 못하겠다.]
스으윽.
제노의 영혼이 몸으로 들어왔다.
“…아!”
순간 강렬한 어지러움이 밀려들었다. 동시에 온몸의 감각도 사라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이게 귀신이 들린다는 건가?’
카밀라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요리사 유령 페롤의 도움을 종종 받긴 했지만 그땐 그의 손만 빙의 되었던 것이고 이렇게 온몸이 잠식된 건 처음이었다.
‘…기뻐하고 있구나.’
자신의 몸에 들어온 제노가 기뻐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시 검을 잡았다는 기쁨.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가 마스터인 것에 대한 희열.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루드빌에게로 달려간 카밀라… 아니, 제노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콰앙!
한 번의 부딪침으로 루드빌의 표정이 바뀐다. 물론 카밀라도 놀랐다.
‘이게 나한테서 나온 힘이라고?’
귀신 들린 사람은 성인 남자 여럿이 붙들어도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더니,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이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 네가 이 검술을…….”
제이빌런가의 검술을 바로 알아본 그는 놀라움과 의아함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 후 연무장 안에는 검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난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