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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58)화 (5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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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자신의 부름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수호의 검에 대해 알아본 적 있으시다면서요.”

“수호의 검?”

“네.”

루드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제이빌런가에 있어.”

“맞아요.”

“뭐가 알고 싶지?”

“책들을 다 읽고 난 오라버니의 소감?”

루드빌은 가만히 카밀라를 바라봤다.

“고서적까지 다 정독했다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어.”

“…….”

카밀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수호의 검이 있는 장소.”

맞다.

고대 문서와 수호의 검에 대한 자료들을 대충 조합해 보면 마지막으로 수호의 검이 사라진 장소를 쉽게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제국이 막 생겨났을 때, 대륙을 마구 뒤흔든 조직이 있었다.

에바라는 신을 따르던 종교 무리.

수많은 이들이 그들을 따랐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들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영원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이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에바 신을 따르는 이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았다.

영생을 얻는 힘!

당연히 사람들은 열광했고 기하급수적으로 에바 신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조금만 생각해 봐도 꺼림칙하고 이상한 일임을 알 수 있지 않나?

역시 그 힘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얻는 영원한 생명은 바로 다른 이들의 생명을 제물로 써서 얻는 힘이었다.

힘없고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이 그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때부터 전쟁의 시작.

에바 신을 따르는 이들과 그것을 악으로 여기고 탄압하는 사람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 에바 신의 신도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의 피를 이용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난세에는 언제나 영웅이 등장하는 법.

오랫동안 이어지던 전쟁을 종식시키고 악의 무리를 모두 몰아낸 자가 나타났으니, 마르스라는 남자였다.

‘그 남자가 쓰던 검이 바로 수호의 검이고.’

심장이 터져 나가도 죽지 않던 에바 신의 신도들이 수호의 검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에바 신을 따르던 교주의 목이 수호의 검에 걸리는 순간 길고 길었던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런데 전쟁이 모두 끝난 순간 마르스는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수호의 검도 그때 사라졌고.’

하지만 마르스의 행적을 좇다 보면 수호의 검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을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어.”

수많은 이들이 검을 찾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오랜 세월 아무도 검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제노 제이빌런, 유일하게 그만이 검을 찾아내어 가문으로 들고 온 것이다.

“수호의 검을 설명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말이 뭔지 알아?”

주인을 선택하는 검.

“수많은 이들이 같은 장소를 찾아 갔음에도 왜 제노, 그분만이 검을 찾을 수 있었을까?”

카밀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루드빌 역시 딱히 대답을 듣기 위해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역시 오라버니도 알고 계셨군요.”

제노 제이빌런이 검을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

“나만이 아니라 수호의 검에 깊이 관심을 가졌던 자라면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도 왜 다들 조용했을까?”

“…제이빌런 공작가니까요.”

루드빌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가문의 오래된 역사야.”

남이 함부로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카밀라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다만…….’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오래된 역사 속 인물이 현재 내 앞에 존재한다는 게 문제지.’

* * *

[넌 훈련 안 해?]

“안 해요.”

검술 수업이 한창인 연무장. 하지만 카밀라는 언제나처럼 나무 그늘 아래 퍼질러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제노가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전에야 그녀가 농땡이를 피우든 말든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은가. 현재 그가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그녀이거늘.

[날 볼 수 있는 이가 이렇게 검술 시간에 한가로이 노는 녀석이라니.]

“검술에 딱히 재능이 없어서요.”

이 더운 날,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은 검을 잡고 땀 뺄 생각 조금도 없다.

[신체 조건은 나쁘지 않은데?]

카밀라를 이리저리 잠시 살피던 제노의 평이었다.

“됐고요.”

신체 조건이 좋든 말든, 애초에 검에 관심이 없다.

원래 이곳에 있던 카밀라야 소르펠 가문의 일원이 되기 위해 죽자고 검술 수업을 받으려고 했지만 자신은 아니다.

재능이 없는 걸 알았으면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짓이지 않겠는가.

저번에 보니 소르펠 공작도 딱히 자신이 검술을 배우는 것을 강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재능도 없는 검술에 괜히 쓸데없는 힘 쓰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기를 바라고 있는 듯했다.

‘조만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여전히 자신이 뭔 짓을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검술과 사람들을 보며 카밀라는 최대한 빨리 과를 옮길 생각이었다.

‘더 이상 남의 세계가 아니잖아.’

자신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곳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 다른 이가 맘대로 싸질러 놓은 똥을 굳이 계속 묻히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근육량도 나쁘지 않고 골격도 좋고.]

“그게 눈으로 본다고 알아요?”

[나 정도 되면 다 알지.]

“아, 예.”

자기 잘난 걸 너무 잘 아는 귀신님이시네.

다시 연무장에 시선을 주는 제노에게서 카밀라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검술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또다시 멍해진다. 자기가 이곳에 있던 오래전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거겠지?

“그 검.”

카밀라의 시선이 그의 가슴으로 향했다. 왼쪽 가슴에 꽂혀 있는 수호의 검에.

“찾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힘들었지. 거진 1년이 걸렸을걸? 안개가 자욱하게 낀 절벽 끝자락에 꽂혀 있는 검을 내가 딱 발견했거든.]

“역시 그 검, 제노가 찾은 게 맞네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뭘 새삼.]

히죽 웃는 그를 보면서도 카밀라는 웃지 않았다.

“수호의 검이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시죠?”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그 오랜 세월 사람들이 검을 찾지 못한 이유도 아세요?”

[그거야…….]

술술 대답을 해 주던 제노가 멈칫했다.

“주인으로 인정받은 자만이 검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

“그런데 검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제노 님은 검의 주인이 아니었어요.”

너무도 큰 오류.

검을 찾아서 가져왔는데 그 검을 들고 온 이가 검에게 주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애초에 인정을 받지 못했으면 찾지도 못했을 텐데?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검은 더 이상 수호의 검이 아니었지요.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수호의 검은 그저 커다란 쇳덩어리일 뿐이었어요.”

고대 문서에 나온 것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제노의 얼굴에선 더 이상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이 선택한 주인이 죽어 버렸으니까.”

[…….]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제노의 가슴에 꽂혀 있는 검으로 향했다.

“형이 있으시더군요.”

카밀라는 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죽은.”

[…….]

“쌍둥이 형.”

* * *

“제노, 여기가 맞아?”

“분명 여기야. 너도 말했잖아. 고대 문서에 아주 대놓고 찾아오라는 듯이 단서들이 즐비하다고.”

“그런데도 다들 찾지 못한 건 뭔가 위험한 게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위험하면 어때? 난 수호의 검을 꼭 찾을 거야.”

20대 초반의 두 남자가 깊은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자욱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앞서 걷는 제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고 신이 나 있었다.

“제발 조심 좀 해.”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형 미하이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수호의 검을 찾겠다면서 집을 나서는 그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검이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동생의 성격을 다들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 가지 말라고 막았다면 가출을 해서라도 분명 검을 찾아 혼자 나섰을 것이다.

결국 미하이가 그를 따라나섰다. 혼자 보내기에는 영 불안했으니까.

이 안개산에 들어와 헤맨 지도 벌써 일주일째다. 산에 들기 전에 근처 마을에서 준비한 식량도 거의 바닥난 상태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미하이는 빨리 제노가 검을 찾는 걸 포기하기를 바라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정 안 되면 강제로라도 끌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미하이!”

“응?”

“저기 봐!”

그런데 그때 앞서 걷던 제노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제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미하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딱히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가파른 절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검이야!”

“뭐?”

“검이라고! 우리가 드디어 수호의 검을 찾았어!”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방방 뛰는 그를 보면서도 미하이는 동조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으니까.

“이거 보라니까!”

스릉!

“……!”

보였다. 제노가 땅에서 검을 뽑아내는 모습이! 그제야 미하이도 검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책에서 본 거랑 똑같아!”

그의 말 대로였다. 책에 그러져 있던 수호의 검과 조금의 차이도 없는 모습이다.

우우우-

“우와!”

순간 검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에 움찔 몸을 떠는 미하이와 달리 제노는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검에선 은은한 빛까지 뿜어져 나왔다.

“…나도…….”

“어?”

“나도 들어 봐도 돼?”

“물론이지!”

제노가 바로 수호의 검을 미하이에게 넘겼다.

우-

미하이가 검을 잡는 순간, 방금까지 빛을 내고 소리를 내던 검이 잠잠해졌다.

“뭐야? 안 우네?”

“…….”

“하하- 검이 미하이, 넌 싫은가 보다.”

또 다.

또, 또 저 녀석만 선택받았다.

‘역시 제노 님이세요.’

‘어떻게 저런 검술을 만들 수 있죠?’

‘천재예요! 천재!’

‘그에 비하면 미하이 님은…….’

‘미하이 도련님이 장자인데.’

‘아무래도 다음 대 가주가 될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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