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제노 제이빌런이라는 인물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딱히 블랙 쉐도우의 수장인 루브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나에겐 전직 수장인 집사 유령 데린이 있으니까!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알아내긴 힘들어도 소르펠 공작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는 데린도 똑같이 알고 있었다.
지금도 루브와 소르펠 공작이 새로운 정보를 두고 대화를 나눌 때 슬쩍 그 얘기를 옆에서 들으며 여전히 정보를 캐치하고 있는 데린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제노 제이빌런에 대한 정보는 데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데린에게서 들은 제노의 죽음은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그냥 나이 들어 제 수명을 다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게 데린의 말이었다.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암살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더 궁금하잖아.’
평범하게 죽은 사람이 왜 저러고 있냐고. 저 검은 또 뭐고?
제노 제이빌런은 수호의 검을 찾아낸 사람이었다.
수많은 예언자가 언급하고, 동시에 고대 문서에 그림으로만 전해져 오던 물건.
주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수호의 검.
<어둠에 잠식된 세상을 구할 유일한 빛>
그리고 지금, 그 검을 가슴에 꽂은 제노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눈빛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신기하네. 내가 보여?]
귀신들과 만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라 딱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다만 석상처럼 표정 없이 앉아 있던 모습과 달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그는 생각보다 무척 밝았다.
[열나 신기하네.]
…생각보다 말투도 아주 자유분방하다.
[내가 제노인 건 어떻게 알았어? 제이빌런 가문을 알아?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들 잘 살고 있지?]
…생각보다 말도 엄청 많다.
“네, 뭐…….”
대충 대답을 내뱉으며 카밀라는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왠지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넌 이름이 뭐야?]
“카밀라 소르펠.”
[아! 소르펠 가문의 사람이구나. 그쪽 인간들도 잘 있지? 어릴 때 그 집에 참 많이 놀러 갔었는데. 집이 더럽게 크더라고. 어릴 때 종종 길을 잃곤 했지. 정원에 있던 분수는 여전히 잘 있나? 내가 예전에 거기에 말이야…….]
그는 더욱 반가운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이러고 계세요?”
카밀라는 그의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급히 질문을 던졌다.
[여기? 연무장이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왜 계시냐고요.”
다른 이도 아닌 제이빌런가의 가주였던 이가, 그것도 역대 제이빌런 가주 중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그가 왜 이런 곳에 짱 박혀 있냐고.
‘그러고 보니 또 이상하네.’
듣기로 제노 제이빌런이 죽은 나이가 67세라고 들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는 아무리 많이 봐줘도 20살을 갓 넘었을까?
‘죽으면서 회춘이라도 한 건가?’
가끔 젊은 시절이 그리운 이들이 죽어서 그때의 모습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던데, 아마 그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검이 좋아서.]
“네?”
[난 검이 너무 좋거든.]
“…….”
뭐, 그럴 수 있다. 검에 미친 인간이 죽어서도 연무장을 떠나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하필 학교 연무장이에요?”
세상에는 연무장이 쌔고 쌨다. 그런데도 굳이 학교 연무장을 왜?
딱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제이빌런가의 연무장에도 기사들이 언제나 검을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 다닐 때가 제일 재미있었거든.]
“여기 출신이세요?”
[응! 선배님이라고 불러.]
그건 됐고요.
[연무장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야.]
아무도 없는 연무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이내 멍해졌다. 옛 추억을 꺼내는 그의 눈에는 텅 빈 연무장 안에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땀을 흘리고 있는 듯했다. 그 안에는 그도 있겠지?
“제노 님.”
[그냥 제노라고 불러.]
잠시 후 카밀라의 부름에 그가 다시 그녀를 돌아봤다.
언제 멍해 있었냐는 듯 그의 입가에 다시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그 검이요.”
[…….]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제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수호의 검, 맞나요?”
질문이 던져진 후에도 잠시 말이 없던 그가 곧 다시 빙그레 웃었다.
[맞아.]
그의 시선이 자신의 왼쪽 가슴에 박혀 있는 검으로 향했다.
[내가 찾은 검이지.]
그리고.
[날 죽인 검이고.]
* * *
[오늘은 지도가 아니네?]
도서관에 앉아 있는 카밀라 곁으로 다가선 요리사 유령 페롤은 그녀가 보고 있는 책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수호의 검?]
“오.”
카밀라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책은 고대어로 모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그저 오랫동안 공작가에서 음식을 만든 페롤이 고대어를 읽어 내는 것이 놀라웠다.
[고대에는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조사를 하면서 아주 조금 익혔지.]
페롤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카밀라가 감탄 어린 눈빛을 보내는 걸 보니 한때 고대어를 익힌다고 밤을 새웠던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고대어를 잘 아나 보군.]
“고대어는 고급까지 다 뗐죠.”
이곳에 원래 있던 카밀라가 유일하게 재미있어하고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게 바로 고대어다.
덩달아 자신 또한 고대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이 정도의 고서적은 번역본이 없어도 충분히 해독이 가능했다.
“카밀라 님.”
그때 카밀라의 곁으로 낑낑거리며 한 사람이 다가섰다. 도서관 지기인 지미였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들고 온 그는 카밀라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책들을 내려놓았다.
“부탁하신 책들입니다.”
“이게 다 수호의 검에 대한 책이야?”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포기할까?’
자신이 이렇게 깊이 파고들어서 뭐 하겠는가? 그것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가문의 일인데.
하지만 곧 카밀라는 지미가 가지고 온 책에 바로 손을 뻗었다.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모를까.’
의문이 더 깊어진 지금에 와 손을 놓는 건 영 찜찜했다.
“아가씨도 수호의 검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응?”
아가씨도?
가장 위에 놓여 있던 책을 펴 첫 페이지를 막 넘기려던 카밀라의 손이 멈칫했다.
“나 말고 또 이 책을 본 사람이 있어?”
지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드빌 님이요.”
* * *
‘그러고 보니 처음이네.’
카밀라는 기사들이 훈련하는 연무장을 바라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카밀라가 이곳에 발걸음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카밀라가 소르펠 공작보다 더 무서워하고 어려워했던 존재가 바로 루드빌이었다.
늘 무심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걸어 주는 법이 한 번도 없는 그와 마주하는 걸 카밀라는 무척 두려워했다. 그가 당연히 자신을 싫어한다고 여겼고,
‘부러워서.’
라비만큼은 아니었지만 카밀라 역시 루드빌을 부러워했다. 그가 소르펠 공작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 집의 가족이 되어 있는 루드빌을 카밀라는 무척 부러워했다.
쫓겨날 걱정도 하지 않고 소르펠 공작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들킬까 또 두려워했고.’
그에 더더욱 루드빌과 마주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가 무섭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그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하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루드빌이 어떤 사람인지.
카밀라는 기사들의 훈련을 봐주고 있는 루드빌을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기사들의 훈련을 아주 꼼꼼하게 돕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절대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는 그이지만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게 루드빌이다. 훈련장에 서 있는 그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먼저 다가가 충고는 해 주지 않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이에겐 끝도 없이 가르침을 내려 주고 있었다.
“어?”
“저기…….”
“카밀라 아가씨?”
자신을 발견한 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루드빌 역시 고개를 들어 카밀라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살짝 눈이 커지는 그의 모습에 카밀라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쩐 일이야?”
순식간에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오라버니 보려고요.”
“…….”
…뭐지?
그녀의 가벼운 대답에 그가 연신 눈을 끔벅인다. 1초에 한 번씩?
‘전에도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새벽에 꽃을 꺾으러 갔다가 그를 갑작스레 만나 자신이 안개꽃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때 딱 저런 반응이었는데?
“혹시 지금 제가 훈련을 방해한 건가요?”
“아니.”
“그럼 지금 시간 괜…….”
“괜찮아.”
대답이 아주 바로바로 날아들었다. 그에 카밀라는 본격적으로 용건을 말하려 했다.
“루드빌 님, 다음 훈련을 지시해 주셔야…….”
아까부터 주변을 서성이던 기사 하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바쁘시면 다음에…….”
급한 일이 아니었기에 카밀라는 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해산.”
“예?”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예에?”
“모두 해산.”
훈련장에 있던 기사들이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추고 입을 쩍 벌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훈련 시간을 어기는 걸 단 한 번도 허용한 적이 없던 그 루드빌이!
“저쪽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멍해 있는 기사들을 뒤로한 채 루드빌은 카밀라와 함께 훈련장 한쪽에 마련된 자리로 향했다.
“물 줄까?”
“아뇨.”
“뭐 먹을래? 저쪽에 기사들이 먹던 간식이 있는데.”
“괜찮아요.”
뭔가를 자꾸 주려고 하는 루드빌의 모습에 카밀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여기를 찾아온 게 불편한가?
“앉으세요.”
카밀라가 오히려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꾸 서서 뭔가를 하려는 그가 이상해 보였으니까. 루드빌이 그제야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
하지만 그 후 루드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용건이 뭐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만도 한데 말이다.
‘역시.’
카밀라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나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 자기에게 다가온 이에 대해서 전혀 밀어내는 법이 없다. 궁금해하지도 않고 상대가 무엇을 하든 그냥 내버려 둔다.
‘왜 진작 몰랐을까?’
그가 이런 사람인걸.
‘화가 난 게 아니었어.’
카밀라를 미워하고 싫어했던 게 아닌데.
이곳에 원래 있던 카밀라도 이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그리 안절부절, 이 집에 전혀 정을 붙이지 못한 채 매번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