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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54)화 (5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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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더 문제는 그녀가 바로 페트로의 동생이라는 거다.

그 이유 하나로 카밀라가 유독 그녀에게 꼼짝하지 못했다. 엘리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늘 전전긍긍했다고나 할까?

‘아주 염병할 상황이었지.’

그 사실을 엘리샤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지라 카밀라를 대하는 엘리샤의 행동이 도가 지나칠 때가 아주 많았다.

물론 제이빌런 공작이나 페트로가 없는 곳에서 말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 오고 싶겠냐고.’

라비만큼은 아니었어도 이쪽 세계를 지켜볼 때마다 정말 머리채를 잡고 탈탈 털어 주고 싶었던 이 중 한 명이 바로 엘리샤였다.

“카밀라 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조르륵 자신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는 엘리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카밀라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엘리샤가 연신 눈웃음을 날렸다.

‘새끼 여우가 따로 없네.’

라비랑 아주 잘 어울리겠어.

“어르신, 세프라 공작님께서도 막 도착하셨습니다.”

그때 집사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네 왔다.

마침 홀 입구로 천천히 들어서는 이가 보였다. 검은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세프라 공작이었다.

‘아르시안은 안 왔구나.’

하긴, 페트로와 엮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가 제이빌런가에 일부러 찾아올 리가 없었다.

“어서 오게.”

“요즘 자주 보는군.”

그의 등장에 제이빌런 공작과 소르펠 공작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도 요즘 느끼고 있었다. 그가 최근 많이 변했다는 것을. 자신들이 초대한다고 하여 이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다.

남들은 모를 테지만, 어릴 때부터 함께한 소르펠 공작과 제이빌런 공작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 무표정에 숨겨진 그의 변화를!

‘갑자기 표정이 확 밝아졌어.’

‘내 말이.’

최근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늘 온갖 불행은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는 분위기를 풍겼던 녀석이거늘.

궁금했지만 두 사람 다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상대가 세프라 공작이지 않은가.

아무리 날고 긴다는 자신들이라도 그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상황을 조사하는 건 어려움이 있었다.

“왔구나.”

두 공작의 인사에도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이던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상대는 다른 이도 아닌 바로 카밀라였다.

그녀를 본 세프라 공작은 성큼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넸다.

“네, 잘 지내셨죠?”

카밀라는 어느새 자신의 주변을 뱅뱅 돌고 있는 검은 늑대, 루나의 머리를 다른 이들 모르게 슬쩍 쓰다듬었다.

소환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세프라 공작뿐이었다.

[뭐야? 둘이 왜 갑자기 친한 척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앉아 있던 붉은 독수리 신수 제티가 불만을 토해냈다.

자기가 날아왔을 땐 아는 척도 안 하더니 루나에겐 반갑게 손길로 응답해 주는 게 불만인 듯했다.

‘왜긴 왜겠어?’

도움을 받았으니까. 빈터 부부가 넋을 놓고 스스로 죄를 고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게 다 루나 덕이지 않은가. 이 녀석이 없었다면 일이 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자넨 나보다 우리 딸이 더 반가운가 보군.”

“그러게 말이야. 오늘 파티 주인공은 나인데 말이지.”

두 공작이 피식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세 공작 사이에 끼어 버린 카밀라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저런 사람들의 시선이야 익숙하지.’

그 시선에 질투와 선망이 뒤섞여 있다는 것도 너무도 익숙하다. 탑배우로 살던 자신에겐 늘 따라다니던 시선이니까.

다만, 이렇게 자신이 주목받는 걸 아주, 정말 아주 고깝게 여기는 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언니!”

어느새 다시 자신에게 바짝 붙어 서며 엘리샤가 방긋방긋 웃어댔다.

하지만 그녀와 딱 붙어 서 있던 카밀라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아버지, 언니 좀 데리고 가도 되죠? 언니, 저쪽에 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저리로 가요.”

제이빌런 공작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엘리샤가 힘껏 카밀라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런 엘리샤의 손길을 카밀라는 부드럽게 뿌리쳤다.

“잠시만.”

“네?”

“그래도 생신이신데 선물은 드리고 가야지.”

빙그레 웃으며 등을 돌리는 카밀라의 모습을 보며 엘리샤는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그게 무엇이든 저렇게 단번에 거절한 적이 없는 카밀라였기 때문이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제이빌런 공작에게 다가간 카밀라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가지고 온 선물을 그에게 건넸다.

“고맙구나.”

카밀라에게 선물까지 받을 줄은 몰랐던 제이빌런 공작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밀라가 내민 건 붉은빛이 도는 작은 상자였다.

달칵.

상자를 열어 본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브로치였다. 활짝 날개를 편 독수리 모양, 눈동자 부분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고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고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다.

“마력석으로 만든 브로치지.”

“마력석?”

슬쩍 끼어드는 소르펠 공작의 말에 제이빌런 공작의 눈이 더욱 커졌다.

“방어 마법이 담겨 있어요.”

“무슨……!”

카밀라의 이어지는 설명에 안 그래도 뭔가 얻어먹을 정보가 없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라움을 표했다.

저 작은 브로치가 그럼 마법 아티팩트라는 건가? 사람들은 쉽게 믿지 못했다.

이미 시중에 유통되는 아티팩트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아무리 저급한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도 저렇게 작게 만들기는 힘들었다.

마법 수식을 새겨 마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력석이 갖고 있는 마력이 커야 했다.

당연히 강력한 마법 수식을 새기기 위해서는 마력석의 크기 또한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최상급 마력석이라도 일정 이상의 크기가 아닌 이상은 형편없는 마법밖에 새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카밀라가 선물로 건넨 마법 아티팩트는 너무도 작았다. 도저히 마력이 유지되고 있는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내 저 브로치에 담긴 마법이 아주 저급할 거라 쉽게 예상했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무마시켜 줄 거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세프라 공작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막아 낸다고? 그 말은 저 작은 브로치 안에 담긴 방어 마법이 엄청나다는 뜻이지 않은가.

“정말로?”

“내가 직접 수식을 새겨 넣었으니 보장하지.”

“자네가 직접?”

세프라 공작의 말에 다시 한번 주변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세프라 공작이 가진 마법적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설마, 이게……!”

“맞아. 최근 우리 가문에서 취급하는 최상급 마력석으로 만든 거다.”

마력석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마력은 어마어마했다. 고급 마법 수식을 새겨 넣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 마력석을 구하기 위해 현재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저게…….”

“그 소문의 마력석?!”

“저렇게 장신구로도 만들 수 있군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한층 더 커졌다.

“그런데 이걸 왜 저 아이가…….”

제이빌런 공작은 여전히 의문이 가득 담긴 눈빛을 카밀라에게 보냈다.

세프라 공작이 만든 이 마법 아티팩트를 어떻게 카밀라가 받아 자신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건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또한 현재 이 마력석이 얼마나 가치가 높고 귀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력석을 브로치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저 아이니까.”

그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란 눈빛을 카밀라에게 보냈다. 반면 소르펠 공작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득의양양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받았지.”

그러고 보니 소르펠 공작의 가슴 쪽에도 호랑이 현상을 한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결국 호랑이…….’

끝까지 호랑이 모양을 포기 못 한 소르펠 공작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건 카밀라는 제이빌런 공작에게 줄 브로치도 여기 가문의 신수인 독수리 모양으로 제작했다. 쪽팔림은 함께하면 그나마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내 브로치에도 보호 마법이 걸려 있다네.”

소르펠 공작은 뿌듯한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이 브로치를 직접 가슴에 달아 준 게 그녀였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요?”

카밀라는 기다렸다는 듯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중한 분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다 같은 마음이잖아요.”

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특히 연인을 두고 있는 이들은 새로운 선물 아이템을 발견한 것처럼 두 공작이 착용한 브로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래, 그래. 곧 판매 시작하니까 많이들 사 주세요.’

자신이 굳이 저 비싼 브로치를 왜 제이빌런 공작에게 선물로 줬겠는가. 딱히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나 뒤끝 엄청 길거든.’

그동안 저 인간에게 받은 무시만 모아도 배가 터져 나갈 지경이다. 그런 인간이 뭐가 예쁘다고!

그런데도 저런 귀한 선물을 한 이유는 딱 하나다.

‘홍보 효과.’

두 공작이 저걸 착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는 확실하니까.

‘루드빌에게도 줬고.’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유행을 끌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로도 의미가 있고 멀리 떠나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주기에도 안성맞춤인 선물이다.

“고맙구나.”

“마음에 드시면 좋겠네요.”

“아주 마음에 든다.”

진심인 듯 제이빌런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껏 한 번도 카밀라 앞에서 보여 준 적이 없는 미소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샤였다.

늘 파티장의 중심에 서 있던 그녀는 현 상황이 영 못마땅했다.

카밀라의 이름만 들어도 미간부터 찌푸리고 보던 아버지였는데, 요즘 들어 영 이상하시다. 아버지가 카밀라에게 직접 초대장을 보냈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다.

선심 쓰는 척, 자신이 카밀라에게 초대장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이미 보냈다는 말을 듣곤 얼마나 놀랐던지. 언제부터 그녀를 그리 챙겼다고!

“아버지.”

“음? 아! 그래, 그래. 우리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나.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놀아야지. 어서 가 보렴.”

“네!”

엘리샤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밝게 웃으며 카밀라의 팔을 잡아끌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장소에 그녀를 두고 싶지 않다는 듯 잡아끄는 힘이 장난 아니다.

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에 카밀라는 못 이기는 척 따라가 주기로 했다.

‘오늘은 또 뭔 짓거리를 하려나.’

은근히 기대되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귀찮고 짜증 났는데, 막상 그녀와 마주하고 보니 뭔가 속에서 꿈틀했다.

‘뭐가 꿈틀하냐고?’

처음 이곳 세계에 제대로 들어오게 되었던 날, 라비와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던 그날!

그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때렸던 그때의 기분이 꿈틀거렸다.

“언니, 빨리 가요!”

“…그래. 나도 빨리 가고 싶네.”

카밀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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