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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52)화 (5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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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 좋은 곳으로 못 간 거지?]

에이미도 봤다. 제이비 교수가 죽는 순간 그의 영혼이 수많은 검은 손에 이끌려 처절한 비명과 함께 땅으로 꺼지는 모습을.

죽음이 행복이라더니, 그는 그 순간에 행복했을까?

“죄 없는 사람을 그렇게 죽였는데 좋은 곳으로 갔겠니? 그 인간이 좋은 곳으로 갔으면 세상에 지옥 갈 인간 아무도 없겠다.”

[그래도 죽은 사람 두고 너무하네.]

“꼴에 오빠라고 또 편드냐?”

동생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니?

[규우?]

주변을 서성이던 킹이 위로하듯 카밀라의 발을 툭툭 쳤다.

“그래, 킹. 네가 내 동생 하자.”

카밀라는 킹을 안아 들어 새끼 호랑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작은 생명체의 힘인가? 이러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안정되는 것 같다.

제이비 교수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죽은 여자들 역시 모두 지켜봤다. 그녀들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인사를 한 후 각자 흩어졌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이들을 찾아간 거겠지?’

구슬프게 울던 여자들의 모습에 조금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킹을 안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쨌든 다 끝났네.]

에이미가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긴 시간 오빠를 지켜보며 화도 나고 마음도 아팠다. 어떻게든 살인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나마 오빠가 이 이상으로 더 많은 죄를 짓기 전에 끝이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끝나긴 뭐가 끝나.”

[어?]

“이제 시작인데.”

카밀라는 킹을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 한쪽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바라봤다. 저번에 루브에게 부탁해서 받은 자료들이었다. 죽은 여자들에 대한 자료.

“저 사람들이 남았잖아.”

제이비 교수의 살인이 외부에 쉽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왜냐고?’

부모들이 감췄거든.

제이비 교수는 피해자들이 저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이게끔 상황을 조작했다. 그에 부모들은 딸의 사인을 숨기기 바빴다. 그녀들의 죽음을 사고사로 꾸민 것이다.

두려웠으니까.

자신들이 학대한 짓이 밝혀질까 봐. 딸이 자살한 게 알려지면 그녀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사람들이 파고들 테니까.

그런데 이번에 제이비 교수가 잡히며 모든 사실이 드러났다.

‘거짓말이 들통난 거지.’

딸의 죽음을 사고사로 꾸며낸 이들 모두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지금 난리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외부에 새어 나가지 않게 자신들이 가진 힘을 모두 쏟아붓는 중이라지.

‘그리고 난 그걸 방해할 생각이고.’

바로 여론으로.

여론만큼 무섭고 강한 힘을 가진 것도 없다. 연예인으로 살며 누구보다 그 힘을 확실히 느꼈던 그녀다.

물론 이곳에는 인터넷도 없고 휴대폰도 없지만 여론을 이끌 수단은 제법 많았다. 신문사도 있고 전단지나 벽보를 이용해도 된다.

카밀라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이용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전말을 상세히 적은 내용을 제국 곳곳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사에 다 뿌리기로 한 것이다.

‘이래서 권력과 돈이 좋다는 거야.’

카밀라는 아주 당당히! 소르펠 가문의 힘을 빌렸다.

소르펠 공작은 카밀라의 부탁을 선뜻 허락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녀가 하는 일을 도왔다.

아마 내일부터 제국 전체가 또 한 번 시끌시끌할 거다.

죽은 여자들의 양부모들은 어떻게든 소문을 막아 보려고, 자신들이 한 짓을 끝까지 감추려고 난리를 치겠지만 소르펠 공작이 움직인 이상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걸.’

사람들의 관심이야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귀족 사회에서 더 이상 예전처럼 자유롭게 어울리긴 힘들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뭐, 아쉽지만 그 정도로 됐고…….’

이제 남은 건 하나.

[음? 왜?]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 향하는 걸 본 에이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미.”

[응?]

“널 그렇게 만든 인간들은 어디 살아?”

[……!]

에이미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 * *

“으음…….”

깊이 잠들었던 빈터는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젠장.”

침대맡에 둔 물잔에 물이 하나도 없는 걸 본 빈터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잔에 물조차 채워 두지 않은 부인을 잠시 못마땅하게 바라본 그는 주방으로 향했다.

“하아.”

하품을 연신 내뱉으며 주방으로 들어선 그는 새로 물잔을 꺼내기 위해 찬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 이게 뭐…….”

그러다 그의 걸음이 뚝 멈췄다. 주방 구석에 꿈틀하며 움직이는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바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놈이!’

분명 그 녀석이다. 얼마 전에 새로 데리고 온 아이.

‘어떤 놈이야!’

자물쇠까지 채워 뒀는데! 어떤 새끼가 방문을 열어 준 거야!

“이 쥐새끼 같은 놈!”

빈터는 성큼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멈칫!

그런 그의 걸음이 순간 다시 멈췄다. 주방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육원에서 데려온 건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는 단발머리에 체구가 무척 작았다. 누가 봐도 여자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구?’

무엇보다 기괴한 건 아이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창문조차 없는 어두운 주방에서 왜 저런 빛이? 그가 의아해하는 순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 너, 넌!”

아이의 얼굴을 본 빈터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고파요.]

“으…….”

[아저씨… 너무 배고파요.]

“으… 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기며 최대한 아이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는 그 역시 너무도 잘 아는 아이였다.

문제는 저 아이가 작년에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다는 거다.

“마… 말도 안 돼!”

보육원에서 데려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죽었다. 애초에 몸이 약했던 것인지 며칠 굶기고 일 좀 시켰다고 바로 시름시름 앓더니 죽어 버렸다.

당연히 치료사를 부르지도 않았고 특별히 약을 먹이지도 않았다. 그딴 곳에 쓸 돈 있으면 좋은 술이라도 한 병 더 사서 먹었을 거다.

그렇게 아이가 죽고 나서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세상에 이런 손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한동안 열이 뻗쳐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지금 저 아이가 자신의 눈앞에 있단 말인가!

[아저씨, 너무 배고파요…….]

“으… 으아아악!”

그제야 빈터는 비명을 지르며 주방을 뛰쳐나갔다.

[아저씨…….]

여전히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당탕!

“으아아악!”

뭔가에 걸려 넘어진 그는 더욱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다.

그는 기듯이 자신의 부인이 있는 2층 방으로 향하려 했다.

까드득, 까드득-

“히익!”

그 순간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기어가던 것을 멈추며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 만들어 놓은 창고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까득, 까드득-

창고 문을 긁는 소리.

그 소리에 빈터의 몸이 얼어 버렸다. 창고로 다가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저 창고가 자신이 늘 아이들을 벌주는 장소라는 사실에 더욱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끼이익.

“허억!”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빈터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천천히 뻗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손을.

[아저씨, 추워요……. 여기 너무 추워…….]

또 다른 아이였다. 3년 전에 그가 창고에 가뒀던 아이. 그 아이가 자신을 슬프게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프다고, 너무 아프다고 우는 아이를 시끄럽다고 더 혼을 냈었다.

[아파… 너무 아파요. 제발 꺼내 주세요.]

“으… 으……!”

그는 다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데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질 않았다.

[머리가, 머리가… 아파. 아파…….]

창고에서 나와 자신에게 조금씩 기어 오는 아이를 보며 빈터는 다시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다.

“으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올랐다.

쾅!

“여, 여보!”

침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급히 들어선 그는 다시 멍해졌다.

“커… 어, 커억!”

누군가 침대에 누워 있는 부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자의 몸에서도 푸르스름한 빛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구슬픈 목소리로 부인의 몸을 누르고 있는 이를 본 빈터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소리에 침대에 올라가 있던 이의 목이 천천히 돌아갔다.

“너… 넌!”

그녀 또한 익히 아는 얼굴이다. 저 얼굴을 어찌 모르겠는가. 8년이나 자신들이 키운 아이인 것을!

“에, 에이미……!”

[왜 그랬어.]

“히익!”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에이미를 보며 빈터는 급히 뒷걸음질 쳤다.

[날 왜 죽였어!]

“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정말이야!”

[왜 그랬어! 왜!]

빈터에게 다가선 에이미는 빈터의 목에 손을 올렸다.

“커억!”

꿈이 아니다! 이건 절대 꿈이 아니었다! 빈터는 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압박에 결국 정신을 놓았다.

타악.

그렇게 부부가 정신을 잃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검은 늑대를 타고 방 안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카밀라였다.

“생각보다 담이 약하네.”

카밀라는 침대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빈터 부부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 이들이기에 귀신을 봐도 아주 태연할 줄 알았더니.

“잘했어.”

카밀라는 자신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검은 늑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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