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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45)화 (4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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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한번 들르라더라.”

“나? 왜?”

“그거 판매 곧 시작할 건데, 그전에 몇 가지 의논할 게 있대.”

마력석을 말하는 거다.

“알았어. 조만간 들르겠다고 전해 드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아르시안이 바로 돌아섰다. 카밀라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짧게 웃었다.

‘그래도 대화를 좀 하는가 보네?’

이런 말도 직접 전해 주고 말이야.

전에 세프라 공작이 집에 찾아왔을 때 떠나기 전,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시에르가 떠난 사실을 들었다며, 그 아이가 웃으며 떠난 사실을 아르시안을 통해 들었다면서, 세프라 공작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맙다.’

무척 짧은 한마디였지만 카밀라는 그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굳이 오늘 가문을 찾아온 이유가 신수 때문도 아니고 그저 이 한마디를 직접 전하고 싶어서였다는 걸 말이다.

“카밀라 영애!”

어디선가 밝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라일라였다.

언제나처럼 조르륵 자신에게 달려온 그녀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축하드려요! 1등이라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어요! 제 친구가 1등을 했다고!”

저게 진심이라는 게 무섭다. 그런데.

“친구?”

“아…….”

순식간에 라일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친구라.’

참 낯선 단어다.

저쪽 세계에서 학교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고 한 번도 내뱉어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그건 뭐야?”

“아, 이거요? 저번에 잘 드시는 것 같아서 버터랑 잼을 좀 만들어 왔어요.”

라일라는 웃으며 상자 하나를 건넸다. 안을 열어 보니 그녀의 말대로 버터와 딸기 잼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페롤이 좋아하겠네.’

저번에 라일라가 만들어 온 디저트들을 전해 줬더니 아주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했다.

오랜만에 음식을 먹어 봤다는 사실에 1차로 감동하더니, 그녀가 만든 그 풍미 가득한 맛에 다시 한번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 제이비 교수님이야!”

“돌아오셨네!”

“몸은 이제 괜찮으신 건가?”

그때 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여학생들이 꺅꺅거리며 좋아하는 소리가 퍼져 왔다.

“제이비 교수님이 돌아오셨나 보네요.”

옆에 있던 라일라 역시 미소를 지었다.

제이비 교수. 2학년 역사학을 담당하는 교수다.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았다.

일단 성격이 온화하고 학생들에게 무척 친절했다. 수업도 재미있게 잘했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잘생겼다는 거! 그에 여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며 학교에 며칠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만에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등장에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라일라 역시 그가 돌아온 것이 기쁜 듯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했다. 그런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카밀라 역시 제이비 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들 잘 지냈어요?”

“네!”

“교수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덕분에 이제 건강하답니다. 걱정 끼쳐 미안해요.”

학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한 명 더 늘었네.”

“네?”

라일라는 순간 나직하게 들려오는 카밀라의 음성에 그녀를 돌아봤다.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닌 듯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제이비 교수에게 향해 있었다.

뭔가 늘었다고 한 것 같은데? 뭐가 늘었다는 거지?

“…….”

하지만 카밀라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오라비, 바빠?”

“…안 바빠, 안 바빠!”

라비는 저번처럼 문을 빼꼼 연 채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카밀라를 지그시 노려봤다.

저번부터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바쁘다고 말해 봐야 들은 척도 안 하는 녀석이 묻기는 왜 묻냐고!

“또 왜.”

“있잖아.”

“있긴 뭐가 있어!”

“살인마가 있는데 말이야.”

“…뭐라고?”

“아니, 아니. 내 얘기가 아니라.”

“똑바로 말해! 정말 너랑 관련된 거 아니야?”

가볍게 말을 꺼냈던 카밀라는 조금 당황했다. 생각보다 라비의 반응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집안사람 중에서 내 일에 가장 관심이 없는 녀석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건데.

“너 또 뭐 본 거지?”

“어?”

“이상한 거 또 본 거 아니냐고!”

“아닌데.”

이 인간 은근히 감 좋아.

“진짜 아냐?”

“응.”

“…….”

아니라는 말에도 라비는 날카로운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진짜 의외네.’

그냥 가벼운 조언이 좀 필요했다.

살인마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좀 들어 보고 싶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봤다지만 살인마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으니까.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또 혼자 위험한 일 하지 마라. 이번에는 아버지도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테니까.”

저번 신수의 알을 찾아 호수에 뛰어든 일을 말하는 거다.

라비가 ‘혹시 이게 또 꿈에서 뭘 봤다며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이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 어린 눈빛을 연신 보냈다.

“아는 사람 얘기야.”

“아는 사람 누구?”

“말한다고 알아?”

“그래서 뭐? 그딴 거 왜 묻는 건데? 살인마라니. 그게 그냥 막 끄집어낼 소재냐.”

“내 친구가 이상한 사람을 봤대.”

“네가 친구가 어디 있어.”

“…….”

나쁜 놈.

하지만 반박을 못 한다는 게 더 서글프다.

“계속 말해 봐.”

“그 친구가 우연히 알게 됐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 살인마라는 거야. 그래서…….”

“신고하라 해.”

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라비의 대답이 바로 들려왔다.

“증거가 없대.”

“증거도 없으면서 그 사람이 살인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대?”

“음… 감이라고나 할까?”

“장난해? 감으로 살인마를 어떻게 알아봐?”

“물적 증거는 없는데 심적 증거는 너무 확실하다는 거지.”

“그래서?”

“사람이 계속 죽어 가는 것 같은데,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네.”

“그 살인자와 잘 아는 사이래?”

“아니.”

“그 살인자의 다음 목표가 될 가능성은?”

“딱히?”

“관심 끊으라 해.”

“어?”

“모른 척하라고.”

“그래도 살인자인데? 누가 또 죽으면 어떡해?”

“증거 없다며?”

“응.”

“그럼 신고도 못 할 거 아니야. 괜한 위험 감수하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최선이지.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면 경비대가 알아서 조사할 테니 그냥 내버려 둬.”

역시 그게 맞는 거겠지?

카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설령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고 해서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약 자신의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이 된다면, 혹은 살인자가 바로 잡힐 가능성이 있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신고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증거도 불충분하고, 괜히 살인자에게 신상만 털려서 찍힐 가능성이 있다면?

‘역시 가만히 있는 게 답이지.’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자와 엮일 수 있는 일이다. 카밀라는 결심을 굳혔다.

투욱.

“뭐야?”

“오다 주웠어.”

자리에서 일어서며 카밀라는 라비 책상에 작은 상자 하나를 던져 놓았다.

의아해하며 상자를 열어 본 라비는 한동안 멍하니 상자 안을 바라봤다.

작은 브로치가 담겨 있었다. 은색 여우 한 마리가.

“어때? 예쁘지?”

“…딱히 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이리 줘!”

카밀라가 브로치를 뺏으려고 하자 라비가 빠르게 브로치를 한쪽으로 치운다.

‘하여튼 말을 해도 꼭!’

그런 그를 보며 카밀라가 작게 혀를 찼다.

“그런데 왜 여우야?”

“어?”

“왜 여우냐고.”

라비의 물음에 카밀라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었다.

“난 이만.”

그녀는 곧바로 그 자리를 도망쳤다. 네놈이 여우 새끼라 그걸 골랐다고는 할 수 없잖아.

“왜 저래?”

그런 카밀라를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던 라비의 시선이 다시 선물 상자로 향했다.

“쓸데없는 짓은…….”

연신 투덜거렸지만 그런 자신의 입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어서 와요, 카밀라 영애.”

신의 장난인가?

‘나 안 그래도 당신한테 불만 많아!’

이 망할 놈의 신 새끼!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라비의 충고대로 절대 상관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런데…….’

그런데 왜 내가 지금 이 인간과 마주하고 있어야 하냐고.

“오늘 제가 카밀라 영애를 부른 건 다른 게 아니고요. 저번에 제출하셨던 과제 때문이에요.”

“과제요?”

교무실을 드나들고 있는 여학생들이 다 자신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 인자한 미소로 대화를 이끌고 있는 이가 바로 제이비 교수였기 때문이다.

“제 과제가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아뇨.”

카밀라의 물음에 제이비 교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네?”

“카밀라 영애가 제출한 역사 자료를 제가 좀 써도 될까 싶어서요.”

고서나 귀한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소르펠 공작과 라비 덕에 공작가 서재에는 귀한 책들이 무척 많았다.

그에 이번 역사학 과제─이전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국가나 도시, 혹은 종족을 조사해 오는 과제─를 아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익히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첨부해 과제를 마무리했더니 제이비 교수의 눈에 들었나 보다.

“네, 편할 대로 하시죠.”

“아! 정말 감사합니다.”

“용건은 그게 끝이신가요?”

“죄송하지만 과제에 첨부된 자료의 원본 책들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안 되겠는데요. 아버지가 아끼시는 책들이라.”

“아… 아쉽네요.”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처량해졌다.

“혹시 영애가 도움을 주실 순 없을까요?”

“도움이요?”

“네, 영애는 그걸 모두 보셨으니 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제가 알기론 그 책들, 이제는 대륙 그 어디에서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제이비 교수의 눈빛이 무척 간절했다.

“강요는 아니죠?”

“물론이죠.”

“그럼 거절할게요.”

“…네?”

“거절하겠습니다.”

“아…….”

제이비 교수의 얼굴에 당혹감이 맺혔다. 설마 거절할 줄은 몰랐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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