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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43)화 (4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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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킹에게서 시선을 뗀 소르펠 공작의 시선이 세프라 공작에게 다시 향했다.

“최근 재미있는 소리가 들리던데.”

“재밌다니 다행이군.”

“사실대로 말해 봐. 대체 마력석을 어디서 구한 거야?”

소르펠 공작에 이어 제이빌런 공작 역시 바로 관심을 드러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오자고 옆구리를 찌른 것도 이 얘기를 같이 해 보려는 의도가 좀 더 컸다. 갑자기 그 귀한 마력석이 어디서 떨어진 건지 말이다.

“게다가 주인이 따로 있어?”

“다른 이도 아닌 자네가 남의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세프라 공작은 두 사람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카밀라에게 시선을 주는 짓도 하지 않았다.

“전 이만…….”

카밀라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더 있다간 표정 관리가 힘들어질 거 같아서 말이지.

신수들이 다 자신을 따라오려 했지만 눈빛으로 따라오면 혼난다는 경고를 한 뒤 서둘러 방을 나섰다.

* * *

고요하다.

세 사람이 정원을 걷고 있는데 너무도 조용하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발걸음 소리조차 다른 이들보다 거의 들리지 않아 마치 정원을 거닐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저쪽에서 잠깐 쉬었다 갈까요?”

결국 긴 침묵을 깬 건 페트로였다.

언제나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가 정원 한편에 마련된 의자를 가리켰다.

“싫어.”

거절의 말이 바로 날아든다. 이렇게 걷고 있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굳이 자리까지 잡고 앉아 침묵을 유지하자고?

“하하… 그런가?”

잠시 웃음을 터트린 페트로는 본인이 이곳에 왜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혀를 차고 있는 아르시안을 바라봤다.

“나 궁금한 거 있는데.”

페트로를 바라보는 아르시안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했다. 아마 이곳이 학교나 다른 곳이었다면 바로 욕설이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소란을 일으키는 건 아르시안 역시 껄끄러웠다.

‘…모르겠다.’

그냥 신경이 쓰였다. 이곳이 그녀의 집이라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 그녀의 오라비가 있다는 사실이 자꾸 입을 다물게 했다.

“최근 카밀라 영애와 꽤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 같던데.”

“네가 상관할 일 아냐.”

“그냥 좀 궁금해서.”

‘이 새끼가.’

오늘따라 빙글거리는 얼굴이 더 재수가 없다.

“카밀라와?”

내내 침묵을 지키던 루드빌의 음성이 그 순간 들려왔다.

“네, 최근 두 사람이 아주 친해 보이더군요. 학우끼리 친분을 쌓는 거야 좋은 일 아닙니까. 하하.”

그의 무심했던 시선이 어느새 날카로워져 아르시안에게 꽂혔다. 아르시안은 페트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고, 페트로는 이 상황이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저기요…….’

그 순간 세 사람 곁으로 다가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카밀라였다.

응접실을 탈출한 카밀라는 집사 루브를 통해 세 사람이 정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너무도 뜻밖의 조합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찾아온 카밀라는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뭔가요?’

살짝 당혹스러운 카밀라였다.

* * *

“저기… 아가씨.”

“왜?”

“저분들이 계속 따라오시는데요.”

오전에 계획한 대로 쇼핑에 나섰다. 만나야 할 손님은 다 만났으니 더 이상 저택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었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세운 계획을 굳이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자신의 시종이 되어 있는 도르만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짜증은 나지만 어쨌든 누구보다 자신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도르만과 움직이는 게 가장 속 편했다. 딱히 연기를 하거나 뭔가를 숨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저 인간들은 왜 쫓아오는 거냐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리를 구경하며 걷고 있는 세 남자. 아르시안과 루드빌, 그리고 페트로의 모습에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도 마침 시장 구경이 하고 싶던 차였습니다.”

카밀라의 시선에 페트로가 빙그레 웃는다.

“혼자는 위험해.”

저번 쥬이드와의 사건으로 유독 안전에 신경을 쓰는 루드빌이다.

‘저번에 보니 아버지도 알고 계시던데…….’

혹시 루드빌이 말한 건가?

어쨌든 카밀라는 그의 말에 시선을 돌려 도르만을 바라봤다. 헤실헤실 웃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 방금 없는 사람 취급당했거든.

“심심해서.”

뭐래?

제 시선을 피해 슬쩍 고개를 돌리는 아르시안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지가 언제부터 이런 곳을 좋아했다고? 심심하면 집에 가서 잠이나 자든가.

쯧, 혀를 찬 카밀라는 다시 걸음을 뗐다. 뒤에서 졸래졸래 따라오는 세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도 볼 만하네.’

매번 다니던 큰 번화가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구경할 게 참으로 많았다.

“그거 사시게요?”

“응.”

“음… 아무리 봐도 남자 물건 같은데…….”

“나도 알아.”

길거리 매대에 놓여 있는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은으로 만든 작은 여우 브로치였다.

눈이 있는 자리에 아주 작은 보석까지 박혀 있어 제법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싼 티도 나지 않고 검은 정장 같은 곳에 잘 어울릴 듯했다.

“공작님께 드리시게요?”

“아니.”

브로치를 계산하자 도르만이 다시 묻는다.

“라비 오라비 주게.”

“아, 도련님께 드리려구요?”

“응.”

여우 모양을 보니 바로 라비가 떠올랐다. 저번에 팔찌 선물을 받은 것도 있고 이 정도 선물은 하나 해 줘도 좋을 듯했다.

‘음?’

브로치를 잘 챙겨 돌아서던 카밀라는 뭔가 싸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세 남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루드빌의 시선이 가장 강렬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뚫어져라 보는데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왜 저래?’

자신이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루드빌이 바로 고개를 돌려 버린다.

“형제분과 사이가 무척 좋으시군요.”

페트로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 왔다. 뭔 헛소리냐고 소리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선물 하나 샀다고 사이가 좋은 거냐.

“가족한테 선물을 왜 해?”

“…….”

말을 말자.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아르시안의 질문을 무시한 카밀라는 다시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 * *

“여기 예쁜 장신구들이 있어요! 어서들 구경 오세요! 거기 예쁜 언니! 이것 좀 보고 가세요!”

이미 저번에 충분히 감을 잡았었다. 저 녀석이 가진 천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에 새삼 놀라울 것도 없지만.

“너 여기서 뭐 해?”

“카밀라 영애!”

길 한쪽 가판대에 서서 장사를 하고 있는 라일라를 발견한 카밀라는 다시 한번 느꼈다.

“여기서 뭐 하냐고.”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 보이셔서요. 도와 드리고 있어요.”

가판대 뒤쪽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한 할머니가 자리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는 할머니야?”

“아뇨.”

“…….”

보다 보다 이런 호구는 정말 처음이다.

‘호구질을 당하면서도 저리 밝은 인간도 처음이고.’

해맑다.

“카밀라 영애도 한번 보실래요? 예쁜 거 정말 많아요!”

해맑다 못해 돌아 버리겠다.

“재밌니?”

“네!”

“그래.”

많이 팔아라. 자기가 재밌다는 데 내가 뭘 더 말하겠냐.

카밀라는 바로 돌아섰다. 아무리 보험을 들기 위해 친해져 보려고 했지만 역시 아닌 것 같다.

‘피곤하다.’

저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같이 피곤해진다.

“어? 바로 가시게요?”

“응.”

카밀라는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짓는 라일라를 뒤로한 채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저분…….”

그때 도르만이 아는 척을 했다. 카밀라의 반복되는 삶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라일라였으니까.

그 또한 그녀의 존재에 대해 무척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아는 사이가 되셨군요.”

“이제부터 모르는 사이 하려고.”

“그게 가능할까요? 매번…….”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라일라에게 시선을 주려는 도르만을 말렸다. 지금이라도 손절하고 모른 척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콰앙!

“꺄악!”

“……?”

하지만 그 순간 들려오는 소리.

고개를 돌리니 아주 식상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딱 봐도 건달 포스가 다분한 다섯 명의 남자가 라일라가 서 있는 가판대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이미 주변 다른 상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자릿세도 안 내고 누가 장사하라고 했어!”

“벌써 두 달이나 밀렸잖아!”

“어이, 늙은이! 보호세도 밀린 거 알지?”

가판대를 거의 부수다시피 한 그들은 당장이라도 노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만 하세요!”

역시나.

노인에게 다가서려는 남자들의 앞을 라일라가 떡하니 막아섰다. 그 모습을 본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전개가 될 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너무 피곤하다.

‘그러고 보니…….’

루드빌과 라일라의 첫 만남이 시장이었지.

아마도 지금처럼 라일라가 다른 이들을 돕다가 사건에 휘말리고 그걸 루드빌이 우연히 도와주며 친분이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자릿세라니요! 여기서 장사하는 분들은 이미 나라에 돈을 내고 있어요! 대체 무슨 자릿세를 또 내라는 거죠?”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고.”

“여긴 여기에 맞는 법이 있는 거거든!”

“이건 뭔데 아까부터 바락바락 끼어드는 거야?”

노인에게 향했던 남자들의 거친 음성이 바로 라일라에게 향한다. 당장이라도 뭔가 사달이 날 것 같은 분위기다.

‘흐음.’

하지만 카밀라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누군가. 제국 안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이들이다.

남 일에 끼어들기 싫어하는 아르시안을 제쳐두더라도 루드빌과 페트로가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저벅.

‘저것 봐.’

예상대로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성큼 남자들에게 향하는 발걸음의 주인공은 역시나 만인에게 인자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페트…….

촤아악! 데구루루-

순간 무언가가 발밑으로 굴러왔다.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파악을 못 해 눈조차 감지 못한 사람 머리 하나.

“으… 으아아악!”

“뭐, 뭐야!”

순간 커다란 비명이 들려왔다. 방금까지 라일라와 노인을 겁박하던 남자들의 비명 소리다.

하지만 그 소리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아악! 도망……!”

촤아악.

“역시나 악인들은 무척 시끄럽군요.”

몇 번의 움직임으로 바닥에 남자들의 시신이 나뒹굴었다.

“이런, 혹시 피가 튀지는 않았나요? 괜찮으십니까?”

피가 묻은 검을 집어넣던 페트로가 아차 하며 다급히 카밀라를 바라본다.

그녀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은 걸 확인한 그가 언제나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네요. 고운 옷에 더러운 게 묻지 않아서.”

카밀라는 그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저 새끼는 사람 죽일 때도 웃네.”

옆에서 아르시안의 말이 들려왔지만 카밀라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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